|
9일 관가와 업계에 따르면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최근 발표한 ‘무역장벽보고서(NTE)’에서 한국의 온플법 제정 추진을 대표적인 비관세 장벽 후보로 재차 지목했다. 이에 따라 한·미 간 통상 마찰 우려도 한층 커지고 있다.
NTE 보고서는 USTR이 60여 개 교역국의 무역 관행을 점검하고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매년 발간하는 자료다. 특히 올해 보고서는 미국이 최근 ‘무역법 301조’를 근거로 한국을 포함한 16개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 조사에 착수한 시점과 맞물려, 향후 조사 과정에서 기초 자료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보고서는 온플법을 직접 겨냥해 △자사우대 금지 △데이터 활용 제한 △사전지정 방식 규제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그러면서 구글, 애플 등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차별적 규제’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전규제는 네이버·쿠팡·구글 등 거대 플랫폼을 미리 규제 대상으로 지정해 자사우대·끼워팔기·최혜대우 요구·멀티호밍 제한 등 경쟁 제한 가능성이 있는 행위를 사전에 금지하는 방식이다.
업계에선 이번 지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온플법이 현실화할 경우 인공지능(AI)·GPU 협력은 물론 반도체·자동차 등 주력 산업까지 보복 조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통상 갈등이 특정 산업에 그치지 않고 전방위로 번질 수 있다는 의미다. 아울러 현실적으로 글로벌 빅테크 플랫폼 기업에 대한 정확한 매출액을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실제 규제 적용이 어려운 글로벌 빅테크만 생존할 것이란 ‘해외플랫폼과의 역차별’ 문제도 거론된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관계자는 “NTE보고서가 한국의 비시장 정책·관행을 지속적으로 지적하는 만큼, 국내의 미국 빅테크 규제는 미국의 대한(對韓) 핵심산업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국익 중심의 실리적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정 역시 통상 마찰 우려에 속도 조절에 나선 모습이다. 온플법을 주도해 온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미국이 자국 기업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외교 채널을 통해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힌 상황”이라며 “통상 문제 때문에 현재로선 법 제정이 사실상 보류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독과점뿐만 아니라 갑을 관계를 규율하는 법안도 업계 반발과 특정 기업의 미 의회 로비 등으로 입법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온플법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미국과의 통상 마찰 우려를 고려할 때 당장 입법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온플법은 문재인 정부에서 플랫폼 기업의 ‘갑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 추진됐으며, 이후 윤석열 정부에서도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사태 등을 계기로 재부상했다. 이재명 정부 들어서는 ‘온플법 제정’을 주요 공약으로 내 걸기도 했지만, 통상 마찰 우려와 업계 반발이 겹치며 입법 논의는 번번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별도 법 제정보다는 기존 경쟁법 체계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유럽연합(EU)처럼 사전규제 중심의 특별법을 도입하기보다는,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사후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것이다.
심재한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존 법 체계를 활용해 집행력을 높이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접근”이라며 “EU 디지털시장법(DMA)처럼 사전 규제를 그대로 도입하기보다는 한국의 경쟁법 체계와 통상 환경을 고려한 점진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