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이 가입자 4000만명에 이르는 대표적인 민간 안전망으로 자리 잡았지만, 지금의 구조는 지속 가능성 자체를 흔드는 수준에 이르렀다. 보험료보다 보험금 지급이 더 많은 구조가 고착된 데다, 보험금이 일부 가입자에게 집중되는 왜곡까지 겹치며 제도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특히 비급여 중심 의료 이용이 급증하면서 손해율 악화와 보험금 누수가 동시에 확대되는 양상이다. 보험료는 오르고 보장은 체감되지 않는 가운데, 일부 가입자의 반복 청구 부담이 전체 가입자에게 전가되는 구조도 고착되고 있다.
정부가 비급여 통제와 5세대 실손보험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책 지연과 현장 혼선이 이어지며 제도 개편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실손보험이 '국민 보험'을 넘어 구조적 전환의 갈림길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 "보험이 아니라 의료비 보전 구조"…손해율 120% 넘긴 실손보험
실손보험의 구조적 문제는 수치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실손보험 가입자는 약 4000만명에 달한다. 그러나 보험금 지급 구조는 극단적으로 쏠려 있다. 대형 손해보험사 기준 가입자의 65%는 보험금을 한 번도 받지 못한 반면, 상위 9%가 전체 보험금의 약 80%를 가져가는 구조다.
손해율 역시 정상 범위를 벗어났다. 보험업계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1~4세대 실손보험 손해율은 120.7%로, 보험료 100원을 받아 120원 이상을 지급하는 상태다. 같은 기간 4세대 위험손해율은 147.9%에 달했다. 이 영향으로 올해 실손보험료는 전 세대 평균 7.8% 인상됐고, 4세대는 20%대, 3세대는 16%대 인상이 적용됐다.
비급여 항목에서의 비용 확대는 더욱 가파르다. 9일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주요 손보사 7곳(삼성화재·DB손해보험·현대해상·KB손해보험·메리츠화재·한화손해보험·흥국화재)의 지난해 체외충격파 치료 관련 실손보험금 지급액은 5123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2021년 3936억원 대비 30.2% 증가한 규모다. 같은 기간 손보사들은 실손보험에서 최근 3년간 연평균 1조71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잉 이용 사례도 확인된다. 60대 가입자가 8년간 2086회 체외충격파 치료를 받고 약 2억8000만원 규모의 보험금을 수령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구조적 문제로 본다. 한 손보사 관계자는 "실손보험은 사실상 의료비를 보전해주는 구조로 변질된 측면이 있다"며 "일부 가입자의 반복 청구가 손해율을 끌어올리고, 결국 보험료 인상 부담이 전체 가입자에게 전가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비급여는 의료기관 판단 영역이 커 명확한 가격 기준이나 치료 기준이 없어 과잉 이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5세대 실손 또 연기…비급여 통제 정책, 현장 혼선 커져
정부는 이 같은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비급여 통제를 중심으로 한 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2025년 실손보험 개혁 방안을 통해 이용량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 부과하는 구조 전환을 제시했고, 그 핵심으로 5세대 실손보험 도입을 추진해왔다.
5세대 실손보험은 비중증 비급여에 대해 본인부담률을 기존 30%에서 50%로 높이고, 대신 보험료를 기존 대비 절반 수준으로 낮추는 구조다. 4세대 실손보험료가 40대 기준 월 1만~2만원대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5세대는 이보다 낮은 수준으로 책정될 전망이다.
다만 정책 추진 과정은 순탄하지 않다. 5세대 실손보험은 당초 2025년 도입이 목표였으나 의료계 반발과 정책 조율 문제로 연기됐고, 이후 2026년 4월 시행이 거론됐다가 다시 5월 초로 미뤄졌다.
이 과정에서 현장 혼선도 커졌다. 한 손보사 관계자는 "실손보험은 재가입 시점이 중요한데 출시 일정이 흔들리면서 고객 안내 자체가 어려워졌다"며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일정이 반복적으로 바뀌면 고객 신뢰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책과 시장 간 괴리도 여전하다. 정부는 비급여 통제를 통해 손해율을 낮추겠다는 입장이지만, 의료계와의 이해관계 충돌로 제도 적용 속도는 제한적인 상황이다. 실제로 도수치료 일부가 관리급여로 편입된 이후 체외충격파 치료로 수요가 이동하는 '풍선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실손보험은 국민 대다수가 가입한 민간 안전망이지만, 현재 구조에서는 형평성과 지속 가능성 모두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료 인상과 보장 축소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한 만큼, 비급여 관리와 의료 이용 구조를 포함한 근본적 제도 정비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특히 일부 가입자의 과잉 이용과 보험금 누수 구조가 유지되는 한, 사고 없이 보험을 유지하는 다수 가입자가 비용을 분담하는 구조 역시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제도 신뢰 회복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폴리뉴스 권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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