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칼럼] 기업 주저 앉히는 상속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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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칼럼] 기업 주저 앉히는 상속세

이데일리 2026-04-09 18:11:5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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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정훈 논설실장] 정수기를 비롯한 가정용 전자제품을 만들며 33년 간 흑자를 이어온 중견기업인 청호나이스가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수천억원에 이르는 상속세를 내야 하는 대주주 일가가 그 부담을 이기지 못해 해외 사모펀드(PEF)에 회사를 팔기 위해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이전에도 락앤락이나 한샘, 쓰리세븐 같은 탄탄한 중견기업들도 상속과정에서의 막대한 세금 부담에 회사를 넘겼다. 실제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승계 부담으로 제3자 매각을 고려하는 중소·중견기업이 국내에만 약 21만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에 이르고, 대주주라는 이유만으로 보유한 주식에 20% 할증까지 부담해야 하는 걸 감안하면 상속시 내야 하는 세금 부담은 최고 60%에 이르고 있다. 이는 일본(55%), 프랑스(45%), 미국·영국(40%) 등 주요 선진국을 크게 웃도는 것은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특히 최근 주가 상승으로 잠재적인 상속세 부담은 더 커졌는데, 세 차례에 걸친 상법 개정으로 경영권 방어에는 어려움이 커졌으니 기업들은 이래저래 죽을 맛이다.

대한민국 최대 자산가인 삼성그룹 오너 일가가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의 유산에 대한 12조원 규모의 상속세를 완납하기 위해 5년 간 온갖 사투를 벌였던 일만 봐도, 중소중견기업들에게 상속세가 얼마나 큰 부담일지는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정부가 지난해 최고세율을 40%로 낮추는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부자 감세’ 프레임에 갇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상속세 산정 방식도 마찬가지다. 현행 상속세는 피상속인의 상속재산 전체를 합산한 후 세율을 적용해 상속세를 매기는 유산세 방식을 따르고 있는데, 이는 OECD국가들 중 우리가 유일하다. 각자 상속받은 재산만큼만 세율을 적용하는 유산취득세를 대부분 국가들이 적용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부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비판으로 입법이 불발됐다.

경제규모도 커지고 자산가치도 뛰었지만 이렇게 상속세는 2000년 이후 무려 26년째 제자리다. 이렇게 상속세 제도 자체를 시대에 맞게 바꾸지 못하면서, 땜방식으로 가업상속에 따른 공제만 계속 늘리다보니 주차장이나 주유소, 베이커리 카페 등 상속세를 편법적으로 줄일 수 있는 루프홀(허술한 구멍)만 양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지금의 상속세는 형평성도, 효율성도 모두 놓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젠 상속세 자체를 시대상에 맞게 재설계해야 할 때다.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와 유산취득세로의 전환 등 그동안 정부가 입법을 시도했던 부분들을 최우선적으로 법 개정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조세 회피 유인은 낮추면서,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과 인공지능(AI)이 이끄는 산업 대전환으로 인해 막대한 자본 투자가 필요한 기업들에게 상속세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

대주주 주식에 붙는 20% 할증도 폐지해야 한다. 대주주에게 세제상 불이익을 주다 보니 일반주주과 달리 대주주는 주가가 오르면 상속세 부담을 먼저 걱정해야한다. 대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관계를 일치시켜 형평성도 높이고 기업 가치도 끌어 올릴 수 있도록 하는 일석이조가 될 수 있다. 아울러 “주차장이 가업이라니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고 했던 이재명 대통령의 지적처럼, 가업상속공제를 이용한 꼼수 절세와 같은 상속세 루프홀을 메워 나가는 일도 속도를 내야 한다.

상속세는 기업을 개인의 소유물로 보고, 그 소유자가 사망할 때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기업은 단순히 개인 자산이 아니라,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요한 사회적 자산이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혁신하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돕는 쪽으로 상속세를 리모델링하는 일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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