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해 온 한국 산업에서 문화예술은 새로운 성장 축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술, 콘텐츠, 브랜드 등 다양한 영역과 결합하며 산업의 외연을 넓혀가는 예술의 중심에는 예술성과 사업성을 함께 고민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길을 개척하는 예술기업들이 있다. [K-아트 비즈니스]에서는 다양한 국내 예술비즈니스 기업들을 소개하며 한국 예술 산업이 가진 미래와 가능성을 함께 확인하고자 한다. 예술과 비즈니스가 교차하는 현장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길을 만들어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예술이 산업으로 확장되는 흐름을 조망한다.
【투데이신문 전세라 기자】 “전통은 충분히 트렌디할 수 있습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전시장에서 만난 조인선 모던한 대표는 전통예술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의 확장 가능성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국악 연주자 출신인 조 대표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한복 차림으로 등장했다.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과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낸 조 대표는 “전통이 낡은 것이 아니라 이걸 풀어낼 무대와 방식이 부족했을 뿐”이라며 “전통을 동시대의 언어로 풀어내면 충분히 대중적인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 그의 예술 비즈니스 기업, ‘모던한’을 하나의 단어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한국 고유의 미감과 콘텐츠를 동시대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공연, 전시, 한복 등 여러 영역을 아우르며 예술과 비즈니스를 결합한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을 기반으로 다양한 예술 장르를 하나의 경험으로 기획·연출하는 모던한은 현재 아트코리아랩 입주기업으로 활동하고 있다.
투데이신문은 전통예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조 대표를 만나 모던한의 방향과 전통문화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아래는 조 대표와의 일문일답.
Q. ‘현대적인’이라는 뜻을 가진 MODERN(모던)과 한국의 ‘한(韓)’이 합쳐진 기업명이 인상적이다. 모던한(MODERN韓)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모던한’은 국내 유일의 전통문화 플랫폼으로 희석돼 가는 한국 전통문화를 동시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헤리티지 문화 콘텐츠 브랜드다. 전통주·한식, 시각·공연예술을 아우르며 ‘경험’을 매개로 한국의 미감(美感)을 현재의 언어로 풀어내고자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Q. 국악 연주가 출신이라는 이력이 눈길을 끌었다. 전통 예술가가 아닌 사업가의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부터 사업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아쟁을 전공한 후 국악 연주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아쟁을 들고 라운지 클럽 무대에 설 기회가 생겼다. 처음에는 전통 악기인 아쟁이 클럽이라는 현대적인 공간과 어울릴지 확신이 없어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막상 무대에 서니 예상이 뒤집혔다. EDM이 흐르는 공간에서 아쟁의 소리가 울려 퍼지자 분위기가 단숨에 달라졌고 음악에 맞춰 자연스럽게 춤을 추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 순간 ‘전통이 낡은 것이 아니라 그저 자유로운 무대가 없었던 것뿐이었구나’를 깨달았다.
이를 계기로 약 12년 전에 전통을 콘셉트로 한 ‘모던韓 파티’를 기획했다. 클럽 속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DJ 세트 속 판소리와 한국무용의 즉흥 공연과 어울리는 장면을 보며 전통 역시 충분히 동시대적인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Q. 예술기업이 시장에서 겪는 가장 큰 한계는 무엇이며, 모던한은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전통 자체는 훌륭하지만 이를 제공하고 소비하는 방식이 수십 년째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 한계라고 본다. 공연장에 앉아 무대를 감상하거나 박물관 유리 너머로 작품을 바라보는 방식에 머무른다면 전통예술 시장은 앞으로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미 다양한 콘텐츠가 넘쳐나는 환경에서 전통이 기존의 틀에 갇혀 있다면 자연스럽게 경쟁력을 잃게 된다. 여기에 AI 기술의 등장으로 창작자와 향유자의 경계가 흐려지며 전통의 정의 자체도 재해석되는 시대가 됐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계를 돌파하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기술과의 결합이다. 전통주를 경험하는 과정에 증강현실 기반 디지털 레이블을 더하거나 아쟁 연주가 공간 음향 기술과 결합하는 순간 전통은 전혀 다른 감각으로 전달된다. 공간, 음식, 소리, 기술이 하나의 경험으로 연결될 때 전통은 현재의 언어로 다시 살아난다. 둘째는 시장을 읽는 태도다. 예술가 출신이지만 사업가로서 소비자의 흐름과 트렌드를 꾸준히 학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사람들이 무엇에 가치를 느끼고 지갑을 여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전통도 결국 과거에 머물게 된다. 전통을 지키는 일과 시장을 읽는 일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지속 가능한 전통문화 사업이 가능하다. 모던한 역시 이 두 가지를 균형 있게 추진하며 시장성과 예술성을 아우르는 전통문화 브랜드로 성장해가고 있다.
Q. 현재 예술경영지원센터 산하 아트코리아랩 입주기업으로 활동 중이다. 입주를 통해 공간·네트워크·투자·컨설팅 등 어떤 지원을 받고 있는지 들어볼 수 있나.
모던한의 대표콘텐츠 중 하나인 ‘대한민국 어린이 한복 모델 선발대회’의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트코리아랩의 공간을 지원받고 있다. 이 대회는 전통문화의 미래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출발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일본의 ‘시치고산’, 인도의 ‘전통 의상 축제’ 등 어린 시절부터 전통을 ‘축제’로 경험하게 하는 구조가 있다. 이러한 경험은 강요가 아니라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세대를 넘어 문화를 지속시키는 힘이 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전통문화 산업에서 젊은 세대에 대한 논의는 많지만 정작 가장 어린 세대를 위한 접근은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그래서 모던한에서는 ‘대한민국 어린이 한복 모델 선발대회’를 통해 사(私)교육이 아닌 사(史)교육에 힘쓰고 있다. 개인의 역량을 키우는 교육이 아닌 자신이 어떤 문화와 역사 위에 서 있는지를 교육하기 위해 한복을 입고 무대에 서보는 등 전통문화를 몸으로 경험하는 과정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트코리아랩의 연습실 공간 제공 덕분에 50여 명의 어린이가 한복 캣워크 리허설을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Q. 그동안 추진해온 프로젝트 중 모던한의 정체성과 사업 방향을 가장 잘 보여준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AR 한복극장展’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콘텐츠진흥원, 김포문화재단, 한국관광공사 등과 협력해 개발한 전시로 모던한의 방향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2022년 남산한옥마을에서 개최한 ‘AR 한복극장展’은 하무의 이진희 디자이너, 금단제의 이일순 디자이너, 차이킴 등 국내 유명 한복 디자이너들과 협업해 마련됐다. 이 전시에서 관객은 한옥 공간에 설치된 한복을 모바일 기기를 통해 촬영하며 한복에 담긴 스토리와 증강현실을 경험할 수 있다. 관객이 단순히 전시를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 속으로 직접 들어가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복은 단순한 의상이 아닌 이야기를 가진 콘텐츠로 확장된다. 전통과 기술이 결합한 새로운 전시 형태를 제시하며 전통문화가 현재의 언어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Q. 이 프로젝트가 공개되고 시장이나 관객에게 어떤 반응을 얻었나. 모던한이 생각하는 전통예술 기반 사업의 가능성을 확인한 계기이기도 했는지 궁금하다.
관객들의 관심은 예상보다 높았다. 이 전시를 통해 한복과 한국적 서사를 보다 몰입감 있는 방식으로 경험하려는 수요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전통예술이 단순히 보존의 대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획과 연출에 따라 충분히 경쟁력 있는 문화 콘텐츠로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계기였다.
또한 최근에는 국내외 명품 브랜드에서 한국 전통 건축과 공예의 요소를 전시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흐름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이제는 우리가 직접 한국의 멋과 예술을 담은 대표 전시를 기획하고 세계에 선보일 수 있는 시점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모던한은 앞서 선보였던 전시 외에도 한국 콘텐츠에 등장한 한복 등을 활용해 국가를 대표하는 전통 콘텐츠를 만들고자 한다.
Q.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예술적이다’라는 흐름 속에서 전통예술 기반 콘텐츠의 글로벌 확장 가능성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며 큰 사랑을 받았던 넷플릭스의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에서 루미 역을 연기한 이재가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입은 의상 역시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한 커스텀 의상이다. ‘르쥬’라는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대한제국 황실 대례복을 모티브로 제작한 의상으로 흰색 바탕 위에 금색 문양을 더하고 중심에는 무궁화와 당초문 그리고 고대 한국의 금관을 연상시키는 금속 장식까지 활용했다고 전해진다. 단순히 ‘한복 느낌’을 차용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성과 상징체계를 현대 무대의상으로 재해석한 사례라는 점에서 전통은 이미 글로벌 진출의 준비가 끝난 상황이다. 케이팝>
최근 성황리에 막을 내렸던 BTS의 광화문 공연도 마찬가지다. 수백 년 된 궁궐의 처마선과 BTS의 퍼포먼스가 겹쳐지는 그 장면을 통해 세계인들이 ‘서울’을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헤리티지 콘텐츠의 대표 무대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글로벌을 향해 손을 뻗지 않아도 가장 한국적인 것이 환대 속에서 이미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고 본다.
Q. 앞으로 모던한이 어떤 예술기업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100년을 거뜬히 넘긴 해외 브랜드들이 지금도 살아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가장 자기다운 것을 가장 오랫동안 지켜왔기 때문이다. 유행을 좇은 것이 아니라 유행이 오도록 기다릴 수 있는 깊이가 있었던 것이다. 모던한 역시 100년 뒤에도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 기업으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모던한은 한국의 오감을 세계가 경험할 수 있는 브랜드로 성장해서 오랫동안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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