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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박민웅 기자] 중동 전쟁에 따른 고유가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치권 주도로 정유사와 주유소업계가 만나 대승적인 결단을 내렸다. 그동안 주유소가 특정 정유사에 100% 의존하던 전속계약을 완화하고, 기름값 인상의 주범으로 지목받던 사후정산제를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업계에서는 거래 투명성은 확보될 수 있지만 제품 품질 저하가 발생하거나 기존 안정적인 공급망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을(乙) 지키는 민생 실천 위원회’(을지로위원회)는 9일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주요 정유사와 전속계약 완화 및 원가 사후정산제 폐지 등을 담은 상생협약을 추진했다. 주유소가 특정 정유사 제품만 취급하도록 묶여 있던 구조를 완화하고, 가격 산정 방식을 투명하게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국내 주유소는 특정 정유사와 전속 계약을 맺고 해당 회사 제품만 공급받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이번 협약에 따라 이 비율을 100%에서 60%로 낮추고, 나머지 40%는 타사 제품을 들여올 수 있도록 했다. 예컨대 기존에 GS칼텍스 제품만 판매하던 주유소가 SK에너지 물량 일부를 더 낮은 가격에 확보할 경우 소비자 판매가격을 조정할 유인이 생기는 셈이다.
다만 실제 가격 인하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정유사 간 공급 가격 차이가 충분히 발생하는지를 따져봐야 하는데다 주유소가 확보한 마진을 소비자 가격으로 전가할 지 여부를 지켜봐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품 혼합 과정에서 품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은 주유소에 달려있다”며 “자영업 비중이 높은 주유소의 영업전략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 인하가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협약의 또 다른 축은 공식적으로 사후정산제를 폐지하는 것이다. 사후정산제는 주유소가 정유사로부터 석유제품을 공급받고 한 달 뒤 국제 가격으로 대금을 받는 방식이다. 주유소가 실제 매입 원가를 뒤늦게 확인하는 구조인 만큼, 정확한 최종 가격을 모른 채 제품을 구입해야 해 그간 석유 가격 인상의 원인으로 꼽혔다.
정유사는 사후정산제를 폐지하고 일일 판매기준가격을 사전에 확정·공시하는 한편 주유소의 신용카드 결제 요청에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 동시에 주유소의 요청이 있을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사후정산을 허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사후정산제 역시 기존에도 의무사항이 아닌 주유소의 선택사항이었던 것만큼 실효성 문제가 제기된다.
오히려 정유사 내부에서는 기존 공급망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전속계약은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물류·설비 투자와 연결된 구조인데, 이를 완화하면 공급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며 “가격 경쟁이 과도해지면 결국 품질이나 서비스 경쟁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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