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윤석열 정부에서 재정지원 사업과 연계돼 전면화된 자율전공학부는 지난해부터 본격화돼 2026년 현재 대학 사회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정 학과나 학부에 소속되지 않은 신입생이 대학에 입학한 것은 꽤 오래 역사를 갖는다.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인 1999년 성균관대가 자율전공학부를 최초로 도입하고, 서울대·고려대·연세대는 2009년, 중앙대·경희대도 같은 시기 자율전공학부를 신설했다. 일단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토록 오랜 역사를 갖는 자율전공학부는 2024년 다시 대학가의 화두가 되고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대학은 존폐를 걱정할 만큼의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자율전공학부가 기존의 학과 혹은 학부제를 중심으로 남는 일부 정원을 활용한 실험적 제도였다면, 지금은 정부 주도로 재정을 무기로 기존의 학과 혹은 학부의 정원을 빼앗아 만드는 제도라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입학정원을 빼앗긴 소수 학과에서는 학과 소멸의 위기감까지 대두되고 있는 현실이다.
현재 대학가에서 제기되는 비판은 학과 이기주의의 소산인가? 더 나아가 전공 선택제 입학을 처음 시작한 것이 27년 전이라면, 이후 국가와 대학은 자율전공학부의 설립 목적을 구체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하나씩 차례로 생각해 보자. 자율전공학부 도입 취지는 특정 전공에 얽매이지 않는 융합형 인재를 육성한다는 것이다. 아마 이러한 자율전공학부의 도입 취지 자체를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내 전공인 국문학만 하더라도 사회학, 과학기술학, 사학 등 인접 학문과의 소통이 필수가 됐다. 문제는 변화한 시대에 맞는 융합형 인재를 만들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이다.
최근 시행되고 있는 자율전공학부와 이와 긴밀하게 연동된 전과 허용 시기 폐지와 횟수 확대는 표면상으로는 학생들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제도로 보인다. 그렇지만 모두 알다시피 이미 복수전공, 마이크로디그리 전공, 심화 전공, 학생설계 전공 등 학생 선택권을 위한 제도가 존재한다. 정확히 말해 학생들이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제도가 많아서 각 전공 교수는 홍보에 급급한 것이 현실이다. 지난 27년 동안 대학이 각기 다른 전공을 덧셈만 해온 까닭이다. 자율전공학부도 수많은 덧셈 중 하나였다.
1999년 성균관대 자율전공학부 첫 입학생으로서 또 대학에서 15년째 강의하는 선생이자 최근 벌어지고 있는 각 대학의 자율전공학부 운영을 목격하고 있는 교수로서, 나는 확신한다. 융합 인재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의 다른 이름이고,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토대가 튼튼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달리 말해 AI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식을 융합할 수 있는 기초가 있어야 한다. 대학은 기초학문에 뿌리를 두고 그 위에 학생 각자가 관심을 가진 분야의 지식을 융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의무가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자율전공학부 혹은 전과 확대는 '자율'이라는 미명 아래 학생들을 방임하는 제도다. 27년 전 성균관대 자율전공학부는 인문사회캠퍼스에서 예술대, 사범대 등을 제외하고 학생이 원하는 학과를 어디나 진학할 수 있었다. 모두의 예상처럼 학생들은 경영대, 법대 등 당시 인기 있었던 학과로 진학했다. 갓 대학에 입학한 학생에게 융합을 위한 어떤 교육도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은 어떤가? 대학마다 상황은 다를 수 있지만 큰 틀에서는 과거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학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대학에서 자율전공선택제로 입학한 학생을 지도할 인력은 부족할 수밖에 없으며, 이런 상황에서 각종 통계가 보여주듯 자율전공선택제로 입학한 학생은 과거처럼 소위 인기 학과 진학을 택한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자율전공학부는 시장 논리에 따른 구조조정을 위한 매개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 진행 중인 자율전공학부와 전과 확대를 비판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대로 간다면 비인기 학과, 즉 기초학문은 대학에서 퇴출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융합 인재를 만들기 위한 시작은 기초를 탄탄히 만드는 것이다.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과연 우리의 대학은 이를 해결할 준비가 되어있을까? 지난 27년 동안 무엇을 했나?
자율이라는 이름의 방임은 결국 기초학문을 소멸시키고 대학을 시장 논리에 종속시킬 뿐이다. 이제라도 대학은 기초학문을 토대로 한 공통 커리큘럼과 복수전공 수준을 넘어서는 학과 간 공동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동시에 교수도 변해야 한다. 특히 기초학문 전공 교수는 융합의 토대로서 기초학문의 역할과 사명을 자각하고, 각자의 전공을 재학습하며 융합 교육을 이끌어야 한다. 이것이 자율전공학부 도입을 위한 선결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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