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끝난 게 아니다"… '베이징이 설계한 평화'의 실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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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끝난 게 아니다"… '베이징이 설계한 평화'의 실체는?

프레시안 2026-04-09 13:18:1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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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일을 끌어온 미-이란 간의 화염이 일단 잦아들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군사적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며 승전보 같은 중단 선언을 내놨고,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역시 이를 "역사적 승리"로 규정하며 화답했다. 양측 모두 '승리'의 수사를 앞세우고 있지만, 본질은 명확하다. 총성이 멎은 자리에 냉혹한 계산기가 놓였다는 점이다. 전쟁의 문법이 군사적 타격에서 중국이 설계하고 파키스탄이 실행한 '정치적 거래'의 단계로 이행하고 있다.

​2인 3각의 중재: 파키스탄의 손과 중국의 머리

​이번 휴전에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중재자의 얼굴이다. 전통적인 서방 강대국이나 걸프 왕정국가가 아닌 파키스탄이 판을 깔았다. 이란과 국경을 맞댄 전략적 인접국이자 미국의 군사·정보 파트너인 파키스탄의 부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중동과 남아시아를 잇는 새로운 연결축의 등장이자, 소위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외교적 실용주의가 미-이란 전쟁이라는 거대 난제를 푸는 실질적 레버리지로 작동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는 파키스탄의 단독 주연극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중동에서 에너지 구매자를 넘어 '질서의 설계자'로 진화하려는 중국의 정교한 '대리 중재(Proxy Mediation)' 전략이 숨어 있다.

​중국은 미국처럼 전면에 나서 리스크를 짊어지는 대신, 자신의 '전략적 자산'인 파키스탄을 레버리지로 활용했다.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이자 중국의 '철혈 형제'인 파키스탄은 이란과 서방 모두에게 거부감 없는 메신저가 되었고, 중국은 그 뒤에서 의제와 정당성을 공급하며 '보이지 않는 보증인'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중동 내 갈등의 문법을 작성하는 주도권이 베이징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프레임의 전환: '종교 전쟁'에서 '경제적 공공재'로

​중국과 파키스탄이 던진 5개항 이니셔티브의 핵심은 전쟁의 성격을 바꾼 데 있다. 이들은 이번 사태를 해묵은 '종교·민족 갈등'이 아닌, "호르무즈 항행 안전과 에너지 안보"라는 국제적 공공재 문제로 치환했다.

​이는 전형적인 '계산기 외교'다. 중국은 도덕적 명분 대신 "유가가 오르면 전 세계가 다친다"는 실용주의적 공포를 자극했다. 이를 통해 유럽과 걸프 국가들을 자신들이 설계한 협상 테이블 주변으로 끌어모았다. 이란 역시 중국이라는 거대한 에너지 구매처가 제공하는 '경제적 숨통'과 '주권 존중'이라는 외교적 방패를 신뢰하며,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이라는 카드를 꺼낼 수 있었던 것이다.

​트럼프의 '거래'와 이란의 '저항 서사'

​미국의 선택은 전형적인 '트럼프식 거래'의 산물이다. 그는 전쟁의 장기화가 불러올 유가 폭등과 인플레이션, 그리고 그것이 대선 가도에 끼칠 치명적 악영향을 누구보다 잘 안다. '목표 달성'이라는 프레이밍으로 철수의 명분을 세우고, 군사적 압박으로 이란을 협상 테이블에 앉힌 뒤 제재 완화와 핵 문제를 통째로 버무려 '딜'을 시도하겠다는 전략이다. 즉, 이번 멈춤은 패배의 인정이 아니라 협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술적 정지'에 가깝다.

이에 맞서는 이란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이란의 '저항 서사' 이면에는 정권 생존과 체제 결속이라는 냉정한 계산이 깔려 있다. 이란이 내건 제재 전면 해제와 호르무즈 통제권 인정 등 10개 조항은 협상의 마지노선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앵커링(Anchoring) 전략'이다. 특히 세계 원유 수송량의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된 개방'의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제안은, 이곳을 군사 충돌의 장에서 지정학적 거래의 핵심 화폐로 전환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불확실한 상수: '스포일러' 이스라엘과 관리자의 숙명

그러나 이 위태로운 휴전의 가장 큰 불확실성은 외부에 있다. 바로 이스라엘이다. 미국과 이란이 중국의 설계 안에서 '관리 가능한 관계'로 접어드는 시나리오는 이스라엘에겐 전략적 고립을 의미한다. 네타냐후에겐 '정치적 사망'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이란 핵시설에 대한 단독 타격이나 헤즈볼라를 통한 대리전 확대 등 이스라엘이 이 판을 깨뜨릴 '스포일러'로 등장할 가능성은 여전하다. 불완전한 평화가 대타협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더 큰 충돌을 위한 숨 고르기에 그칠지는 한편으로 이 이스라엘 변수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여기서 중국식 질서 관리의 한계도 드러난다. 중국은 갈등을 군사적으로 해결할 능력은 부족하나, 경제적으로 비용을 조절하는 데 압도적이다. 향후 이스라엘의 돌발 행동으로 판이 흔들릴 때, 중국은 직접 개입하기보다 다시 파키스탄이나 사우디를 통해 '비용 청구서'를 내밀며 '통제된 긴장' 상태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베이징으로 향하는 길: 5월 14일, '새로운 중동 공식'의 최종 시험대

​이 모든 긴장과 흥정의 종착역은 결국 5월 14일 베이징에서 열릴 미중 정상회담이다. 한달 이상 미루어진 이번 회담은 단순한 양자 관계 확인을 넘어, 중국이 설계한 중동의 '새로운 판'을 미국이 공식적으로 수용하느냐를 결정하는 중대 분수령이 될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중동 안정을 담보로 미국의 대중 경제 제재 완화를 압박하는 '패키지 딜'을 시도할 것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 철수의 명분과 중국의 영향력 확대 사이에서 복잡한 손익계산을 마쳐야 한다. 만약 여기서 합의가 이뤄진다면, 이는 전후 80년간 지속된 '팍스 아메리카나'의 중동 질서가 중국이 가세한 '다극화된 관리 체제'로 이행함을 공식 선언하는 셈이 된다.

결론: 총성 뒤에 놓인 베이징의 소프트웨어

​트럼프는 "평화에 근접했다"고 말하지만, 이란은 "전쟁은 계속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전장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미사일에서 의제로, 폭격에서 외교적 압박으로 그 형태를 바꿨을 뿐이다.

​미국이 군사적으로 판을 깔면, 중국은 경제적·외교적 규칙으로 그 판을 거둔다. 이번 사태는 이 새로운 공식이 증명된 역사적 분수령이다. "총성이 멎은 자리에 놓인 계산기, 그리고 그 계산기의 소프트웨어를 설계한 것은 바로 베이징이었다."

​이제 모든 시선은 5월 14일 베이징으로 향한다. 전후 중동 질서의 설계도가 완성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갈등의 서막이 쓰일 것인가? 지구촌의 힘의 균형은 베이징 회담장의 문틈 사이로 흘러나올 결과값에 의해 다시 쓰이게 될 것이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단지 더 고도화된 '설계'의 영역으로 진입했을 뿐이다.

▲ 2026년 4월 8일 수요일, 이란 테헤란의 엔겔라브-에-에슬라미(이슬람 혁명)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이란의 친정부 시위자가 미국과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2주간의 휴전이 발표된 후, 미국과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불을 지르기 직전이다. ⓒ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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