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김종효 기자 | 미국과 이란이 파키스탄의 중재로 합의한 ‘2주간의 전격 휴전’이 발효 하루 만에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 9일 이란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을 ‘휴전 위반’으로 규정하고 잠시 개방했던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봉쇄하기 시작했다. 한때 20% 가까이 급락했던 국제 유가는 재봉쇄 소식에 즉각 반등하며 전 세계 에너지 시장에 다시금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번 사태는 중동의 복잡한 대리전 양상이 에너지 안보를 얼마나 쉽게 무력화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휴전의 훈풍이 불기도 전에 닥쳐온 재봉쇄 국면에서 에너지 분야가 직면한 숙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휴전의 역설’...하루 만에 다시 닫힌 호르무즈의 문
당초 휴전 합의 핵심은 전 세계 석유 물동량의 4분의1이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 개방이었다. 그러나 8일 이스라엘이 레바논에 대해 역대 최대 규모 공습을 감행하자 이란 파르스 통신은 “이스라엘의 휴전 위반에 대응해 유조선 통행을 다시 통제한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하락 안정세를 기대했던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다시 배럴당 110달러 선을 위협하고 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물류망이 열리자마자 다시 닫히는 ‘불안정한 개방’이 시장의 불확실성을 증폭시켜 가격 변동성을 극단적으로 높이고 있다”고 우려한다.
▲에너지 분야, ‘약속되지 않은 평화’에 대한 대비
이번 사태로 에너지 업계는 수급 조절 수준이 아닌 근본적 구조조정 과제를 안게 됐다.
우선 ‘비대칭 전력에 의한 공급망 인질화’ 극복이다. 이란은 저비용의 기뢰와 드론만으로도 세계 에너지 물줄기를 언제든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을 재입증했다. 이는 고가의 미사일 방어 체계만으로는 에너지를 지킬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제3의 물류 루트’ 확보 시급성도 대두된다.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육상 파이프라인이나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MEC) 같은 대체 경로 구축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이번 전쟁으로 인해 기존 물류망의 취약성이 완전히 노출된 만큼 이에 대한 투자가 가속화될 전망이다.
앞으로의 전망은 극도로 불투명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협상이 잘 안 되면 언제든 (공격으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천명한 가운데 이란 역시 ‘10개항 종전안’ 수용을 압박하며 에너지를 협상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글로벌 공급 부족에 따른 에너지 인플레이션이 심화될 것이며 이는 석유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는 원자력, 수소, 재생에너지 등 특정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로부터 자유로운 ‘에너지 자립형 체제’로의 전환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한국을 포함한 에너지 수입국들은 이번 2주간의 불안한 휴전 기간을 ‘전열 정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제언한다. 민관 합동 비축유 체제를 점검하고 중동 외 지역인 미국,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으로의 수입선 다변화를 강제하는 수준의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업계 전문가는 “이번 미국과 이란 전쟁은 우리에게 ‘저렴한 에너지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다”며 “휴전 합의와 파기 위기가 반복되는 혼돈 속에서 에너지 안보를 지키기 위한 체질 개선만이 유일한 해법이 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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