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혜원 작가] 처음 작가로 불린 건 어느 대안공간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다. 공간의 대표도 큐레이터도 모두 나를 작가라고 불렀는데 괜히 어색하고 낯간지러웠다. 하지만 작가가 아닌 건 아니었고, 대체할 호칭도 마땅치 않았기에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도 한동안 그 공간과의 인연은 계속됐다. 단체전이나 레지던시 프로그램, 예술 기반 도시 재생 활동에 참여할 때마다 작가라는 호칭을 마주했다.
작가라는 말에는 무게가 따른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작가는 예술품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예술적인 무언가를 만들어 선보여야 한다. 자신만의 스타일과 철학을 담아, 꾸준히 오랫동안 만들어야 비로소 작가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일상에서 작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 때면 ‘작가로 불릴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나를 괴롭힌다. 분명 무언가를 틈틈이 만들고는 있지만 빈도가 낮고 속도가 느린 것이 마음에 걸린다. ‘작가가 아닌 건 아니니까’라며 적당히 넘기기에는 ‘내가 정말 작가가 맞는가’라는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그럴 때 어쩌다 작가로 불리게 되면 괜히 남의 옷을 훔쳐 입은 듯 죄책감이 일어, ‘요즘 만드는 일에 소홀하다’고 자백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주변에는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는 이가 많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작가로 불리기에는 한참 모자라 보인다. 작가의 ‘집 가(家)’ 자는 무언가를 직업이나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뜻하는데, 예술이 내 직업이나 전문 분야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놈 자(者)’ 자를 써서 ‘작자’, 즉 ‘만드는 놈’으로 불리는 게 속 편할지도 모르겠다. 공교롭게도 이 단어는 타인을 낮잡아 부를 때 쓰기도 하지만, 내심 스스로를 낮춘 그 호칭 뒤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래, 이 정도가 딱 좋아.’
다만 입 밖에 내지는 않는다. 열등감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건 일종의 민폐다. 어두운 기운으로 주변 공기를 오염시키기보다 가급적 밝은 에너지를 전하고 싶다.
그런데 본질은 뒷글자가 아니라 앞 글자인 ‘지을 작(作)’ 자에 있다. ‘작가’든 ‘작자’든 일단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 기준으로 보면 충분히 만들고 있지 못한 지금의 내게는 두 호칭 모두 과분할지 모른다.
하지만 애써 마음을 다잡는다. 활발히 활동하던 동료 작가가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가 더 이상 작가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만의 삶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느리게나마 작업을 이어 가고 있을 것이다. 소식이 궁금할지언정 함부로 낙오자 취급할 수는 없다. 이런 너그러운 잣대를 내게도 적용해 본다.
이제는 누가 날 뭐라 부르든 그저 단순히 ‘좋아서’ 무언가를 만드는 단계에 접어든 것 같기도 하다. 만드는 일이 돈도 명예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만드는 것이 좋다면 그저 만들 따름이다. 오늘의 삶을 살면서 오늘치의 작업을 이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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