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문영서 기자】 중동 지정학적 불확실성에 따른 고유가와 고환율 현상이 지속되면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기조가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며 단기적 긴장은 완화됐으나 근본적 갈등 요인은 여전해 유가 불안이 재점화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처럼 고유가에 따른 물가 상승 우려가 짙어지는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할 명분이 부족하다는 판단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달 발표한 ‘중간 경제전망’에서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기존 2.1%에서 1.7%로 낮추고, 물가 상승률은 2.7%로 상향 조정했다.
장기간 지속된 고환율 흐름이 진정되는 듯싶었으나 중동 전쟁으로 인한 고환율·고유가 상황이 전개되며 이 같은 조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간밤 미국과 이란이 2주간의 휴전을 발표했음에도 고유가 상태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며 물가 상방 리스크 또한 확대되고 있다. 금리를 내리면 경기 부양 효과는 있겠지만, 자칫 환율과 수입물가를 자극해 물가를 더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은행(이하 한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고유가는 단순히 에너지 가격 상승에 그치지 않는다. 유가 상승은 환율 상승과 함께 수입물가 상승을 견인해 소비자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동시에 경상수지에도 부담을 준다.
유가 폭등으로 인한 추가 환율 상승 또한 우려 요소다. 원화 가치가 약세를 보이면 다시 수입물가가 오르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어, 현재로서는 성급한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최근 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서 고착화될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것도 불안 심리를 키우고 있다.
한은은 지난해부터 내수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 과열을 이유로 기준금리를 2.50% 수준에서 6연속 동결해왔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 1월 의결문에서 ‘금리 인하 가능성’ 문구를 삭제하며 연내 추가 금리 인하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 가운데 중동발 변수가 더해지자 금리 인상 전망까지 제기됐다.
한은의 기준금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대외 변수는 중동 정세뿐만이 아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역시 고유가에 따른 물가 상방 압력과 최근 개선된 고용지표로 인해 금리 인하 여지가 줄어든 상황이다.
관세 여파에 더해 고유가발 인플레이션 우려까지 겹치면서, 연준의 통화정책 완화 속도는 예상보다 더딜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시장은 올해 FOMC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할 확률을 75% 이상으로 해석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미국의 금리 차는 상단 기준 1.25%포인트로, 더 벌어질 경우 추가 외화 유출 가능성이 커지고, 이는 연일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는 원·달러 환율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결국 중동 사태를 비롯한 대외 변수는 한국은행의 금리 결정 자유도를 저해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고환율과 고유가가 물가를 자극하는 가운데 내수 악화 우려까지 겹치면서, 시장에서는 한은이 당분간 금리 동결을 이어가며 대외 변수와 내수 흐름을 좀 더 지켜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신영증권 조용구 연구원은 “경제전망이 하향조정될 정도는 아니고, 수출은 여전히 좋은 상태인 데다가 추경 역시 큰 규모로 진행될 예정이기 때문에 크게 인하의 여지는 없다”며 “금융안정 쪽에서 환율이 상당히 올라갔고,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과열돼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번 금통위에서는 만장일치로 동결 결정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iM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고유가로 인해 경기 하방 압력이 커졌다는 사실은 금리 인하 요인이나 인플레이션 우려는 금리 인상 요인”이라며 “오는 4월 금통위뿐만 아니라 연내 인하 없이 동결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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