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개발 실질적 효과 제한적, 전체 제약사 15%만 대상
정부는 지난달 26일 약가인하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약가 인하와 함께 혁신 유도를 위한 인센티브 체계를 병행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네릭에 지원되는 정부 재원을 줄여 신약개발을 독려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개편안 핵심은 제네릭 및 특허만료 의약품 약가를 40% 초중반 수준으로 낮추는 한편, 혁신형 제약기업과 준혁신형 제약기업에 약가 우대를 적용하는 구조다.
혁신형 제약기업에는 신규 제네릭 약가를 60% 수준으로 인정하고 최대 1+3년, 총 4년까지 적용 기간을 부여한다. 준혁신형 제약기업에는 50% 약가를 동일하게 1+3년간 적용하는 별도 트랙을 신설했다. 또한 사용량-약가 연동제 적용 시 약가 인하율 감면을 기존 30%에서 50%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희귀질환 치료제의 경우 급여 등재 기간을 최대 240일에서 100일로 단축하는 신속 등재 방안과 비용효과성 평가 개선 등도 함께 제시됐다.
정부는 이를 통해 제네릭 중심 구조를 혁신 중심 산업으로 전환하고, 기업들의 연구개발(R&D)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입장이다. 실제 제네릭 과잉 경쟁 구조를 정리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업계 내부에서도 일정 부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네릭 난립 구조를 정리하고 공급을 안정화하겠다는 정책 취지 자체는 타당하다”며 “산업 체질 개선 필요성에는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기존 제도에서 혁신형 제약기업에 대해 최대 68% 수준의 약가 우대가 가능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개편안은 적용 기간을 늘린 대신 절대적인 약가 수준을 낮춘 구조다. 여기에 상당수 인센티브가 중장기 과제로 제시되거나 ‘검토’ 수준에 머물러 있어 단기적으로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문제는 이러한 인센티브 구조가 산업 전반에 미치는 실질적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먼저 정부는 혁신형 제약기업(약가 60%, 1+3년 적용)에 더해 준혁신형 제약기업(약가 50%, 1+3년 적용)을 신설하며 인센티브 적용 범위를 확대했다.
인센티브 우선 적용 대상인 혁신형 및 준혁신형 제약기업을 모두 포함해도 약 60개 내외 수준으로 전체 400여개 제약사 중 약 15% 수준에 불과하고, 대다수 기업은 약가 인하 영향만 직접적으로 받게 된다. 특히 중소 제약사의 경우 제네릭 의약품 매출 비중이 높은 만큼, 약가 인하에 따른 타격이 곧바로 실적과 현금흐름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인센티브의 지속성이다. 정부가 제시한 시나리오를 보면 혁신형·준혁신형 기업 역시 일정 기간 이후 약가가 43~45% 수준으로 수렴하도록 설계돼 있다. 이는 인센티브가 장기적인 수익 구조 개선이 아니라 ‘일시적 완충 장치’에 그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제약업계에서는 범위만 넓어졌을 뿐 체감할 수 있는 보상은 크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결국 일정 기간 이후 약가가 43~45% 수준으로 수렴하는 구조라 준혁신형 역시 완충 장치에 불과하다”며 “R&D 투자를 유도하기에는 유인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제약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연구개발 투자 위축이다. 국내 제약산업은 제네릭 의약품 매출을 기반으로 연구개발 투자를 이어온 구조다. 이 때문에 약가 인하는 단순한 가격 조정이 아니라 R&D 재원 축소로 직결된다. 실제 일부 기업에서는 개량신약이나 신규 파이프라인 투자 계획을 재검토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중소제약사 관계자는 “이미 진행 중이던 개량신약이나 신규 파이프라인 개발의 경제성을 다시 따져보고 있다”며 “수익성이 나오지 않으면 개발을 중단하거나 축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센티브 지원 시기는 미정...세제 혜택, 규제 특례, R&D 지원책은 안보여
정책 간 시차도 업계 반발을 키우는 요인이다. 약가 인하는 즉시 시행되는 반면, 인센티브는 기업 요건 충족 여부에 따라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선 수익 감소, 후 보상' 구조라고 지적한다.
또 다른 중소제약사 관계자는 “약가 인하는 시점과 폭이 명확한데 인센티브는 언제 적용될지 불확실하다”며 “투자 결정을 내려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채찍은 숫자로 명확하게 제시됐지만, 당근은 문장으로만 존재하는 정책”이라며 “현장에서는 혁신 유도가 아니라 단순한 약가 인하 정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센티브 설계 자체의 구조적 한계도 제기된다. 현재 제시된 인센티브는 약가 중심에 집중돼 있는 반면, 세제 혜택이나 직접적인 연구개발 지원, 규제 완화 등은 부족하다는 평가다. 제약업계에서는 “진짜 필요한 것은 세제 혜택, 규제 특례, 연구개발 지원 패키지인데 이런 부분이 빠져 있다”며 “약가만으로 산업 전환을 유도하는 것은 한계가 명확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합성의약품 중심의 신약 개발 구조와 정책 지원 간 괴리도 문제로 지적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신약 파이프라인의 상당 부분이 합성의약품인데 세제 혜택 등 정책 지원에서는 제외되는 구조”라며 “정책 방향과 지원 체계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급망 측면에서도 우려가 제기된다. 약가 인하가 지속될 경우 수익성이 낮은 필수 의약품 생산이 줄어들면서 공급 불안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약가가 계속 낮아지면 기업이 생산을 포기하는 품목이 늘어날 수 있다”며 “결국 환자 접근성이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환자 체감 효과 역시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약가 인하로 인한 본인부담금 감소는 미미한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은 반면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는 것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환자가 체감하는 약값 차이는 크지 않은데 산업 전반의 충격은 상당하다”며 “단기적인 비용 절감 효과에 비해 중장기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약가제도 개편은 필요한 정책이면서도 설계가 부족한 정책이라는 평가가 공존한다. 제네릭 중심 구조를 개편하겠다는 방향성에는 공감하지만 이를 신약 중심 산업으로 연결할 인센티브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정책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약가 인하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확실한 인센티브가 동시에 제시돼야 한다”며 “채찍과 당근이 함께 가는 정책 패키지로 보완되지 않으면 산업 전환이 아니라 산업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