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한국수출입은행이 주도하는 대규모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금융 포트폴리오가 심각한 '지속가능성 리스크'에 직면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글로벌 공급 과잉과 탈탄소 기조가 맞물리면서 LNG선이 수십조원의 공적 자금을 집어삼키는 ‘좌초자산(Stranded Asset)’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다.
9일 기후솔루션이 차규근 의원실(조국혁신당)과 영국 런던대학교(UCL) 에너지연구소, 쿠네 기후 센터(KCC)의 자료를 공동 분석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수은의 선박금융에서 발생한 재무약정 위반 사례 4건이 모두 LNG 운반선에서 발생했다.
특히 지난해 6월에 발생한 사례에서는 인도된 지 불과 3년 밖에 되지 않은 선박 2척이 '선박 가치 하락'으로 인해 재무건전성 비율 기준에 미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자산 가치 하락으로 현금흐름이 악화되는 등 재정적 위기 징후가 뚜렷하게 나타났음에도, 수은은 이를 ‘일회성 면제(Waiver)’로 처리해 잠재적 부실 위험을 장부상에서 지워버렸다. 당장의 대손충당금 적립 부담을 피하기 위해 리스크를 미래로 떠넘겼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김준호 기후솔루션 수석자문위원은 “이는 해운사의 단순한 단기 자금 경색이 아니라, 시장 가격 하락이 '좌초자산 리스크'로 전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신호”라고 우려했다.
LNG선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전 세계적인 '공급 과잉'과 화석연료 수요의 구조적 감소다. 현재 건조 중인 LNG 운반선은 321척(약 690억 달러 규모)으로, 운항 중인 전체 선단의 39%에 달한다. LNG선의 평균 수명이 38년임을 고려할 때 2050년 이후까지 초과 공급이 이어질 전망이다.
UCL과 KCC의 분석은 더욱 비관적이다. 파리협정의 1.5℃ 목표를 달성하는 시나리오에 따르면, 2030년까지 신규 발주가 이어질 경우 2035년에는 전체 520억 달러 규모의 LNG선 중 무려 51%가 미가동 상태, 즉 좌초 위험에 처하게 된다. 온난화 방어선이 무너진 2.5℃ 시나리오에서도 22%가 초과 공급으로 버려질 위기다.
더 큰 문제는 LNG선의 '경직성'이다. 원유나 석유제품 운반선이 향후 바이오연료나 암모니아 운반선으로 개조될 수 있는 것과 달리, LNG선은 다른 친환경 화물 수송용으로 전환할 수 있는 옵션이 극히 제한적이다. 에너지 전환 국면에서 가장 먼저 도태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고위험 상황 속에서도 수은의 '묻지마 금융'은 멈추지 않고 있다. 수은은 이르면 이달 중 약 7100억원 규모의 신규 LNG선 금융 10건에 대한 승인을 추진 중이다.
특히 2015년 이후 수은의 화석연료 운반선 금융 지원액 15.3조원 중 19%(23건)가 화물 운송 계약(용선계약)조차 맺지 않은 '투기 발주' 물량이었음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수은은 이러한 고위험 선박에 담보인정비율(LTV) 기준 등 최소한의 리스크 방어벽도 두지 않았다. 지난 10년간 국내 5개 공적 금융기관이 LNG선에 쏟아부은 자금만 58.8조 원에 달한다.
반면, 이 막대한 공적 자금의 수혜는 그리스, 영국, 노르웨이 등 유럽계 선사들에게 집중됐다. 한국의 공적 금융과 국민이 막대한 좌초자산 리스크를 짊어지는 동안, 상업적 이익은 해외로 빠져나가는 비정상적인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 공적 금융이 단기적인 수주 지원을 넘어, 장기적인 기후 리스크와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전면 개편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차규근 의원은 “용선계약이 없거나 이행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무리한 자금 지원은 대단히 위험하다”며 “LNG선 포트폴리오 전체에 대한 체계적 리스크 평가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솔루션 신은비 연구원은 “공급 과잉이 구조화된 상황에서 LNG 인프라에 대한 과도한 투자는 이중위험을 초래한다”며, “공적 자금을 해상풍력 설치선이나 청정 연료 추진 시스템 등 지속가능한 미래 인프라로 재분배하는 것만이 한국 조선업의 장기적 경쟁력과 진정한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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