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2년간 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인공지능(AI) 열풍이 차분한 이성적 판단의 단계로 진입했다. 초기에는 'AI'라는 타이틀만 달아도 자금이 몰렸으나, 이제 투자자들은 기술의 화려함 뒤에 숨은 경제적 실질과 지속 가능성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최근 열린 HUMAN X 컨퍼런스에 참석한 퀜틴 클락, 케이틀린 할로웨이 등 글로벌 벤처캐피털(VC) 리더들과 기술 전문 언론인들은 입을 모아 "AI 시장이 이제 성숙기에 접어들며 진짜와 가짜를 가리는 신호가 명확해졌다"고 진단했다.
◇ 굴레가 된 API 종속성, 독자적 생존력 없으면 도태
현장의 전문가들이 가장 경계하는 대목은 외부 기술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다. 케이틀린 할로웨이는 투자 결정의 핵심 필터로 'API 종속성'을 언급했다. 특정 기업의 서비스가 오픈AI(OpenAI)나 앤스로픽(Anthropic) 같은 대형 모델 제공자의 API 변경만으로도 무너질 수 있는 구조라면, 투자가치가 없다는 냉정한 평가다.
결국 기술적 독자성이나 해당 기업만의 고유한 제어권이 확보되지 않은 모델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뜻이다. 단순한 '껍데기' 서비스가 아닌, 기술적 해자를 구축했는지 여부가 기업 가치를 결정하는 잣대가 됐다.
◇ 지표로 증명하는 가치… '유닛 이코노믹스'의 중요성
투자자들은 이제 막연한 성장 지표가 아닌 실제 운영 효율성에 집중한다. 자이 다스는 AI 스타트업이 직면한 운영 비용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했다. 모델 가동에 들어가는 '토큰 비용'과 매출원가(COGS)가 수익성을 갉아먹고 있지는 않은지 현미경 검증에 들어간 상태다.
아무리 뛰어난 기능을 제공해도 지속 가능한 경제 구조(Unit Economics)를 만들지 못한다면 실패한 비즈니스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특히 결과물에 기반한 가격 책정(Outcome-based pricing)이 가능할 정도로 실질적인 업무 자동화를 구현했느냐가 핵심이다. 고객에게 전달하는 가치가 단순히 '신기함'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생산성 향상과 비용 절감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분석이다.
◇ 투자의 새 흐름 '바벨 전략'… 양극단의 가치에 집중
시장의 투자 전략도 재편되는 모양새다. 케이틀린 할로웨이가 제시한 '바벨 전략'은 모호한 중간 지대를 과감히 포기하고 양극단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인간 중심의 경험과 커뮤니티를 강조하는 '컨슈머 서비스' 영역과 하드웨어, 에너지, 컴퓨팅 자원을 아우르는 '딥 인프라' 영역으로 자금이 쏠리고 있다.
중간 지대에서 차별화 없이 경쟁하는 기업들은 도태될 위험이 크다. 반면, 특정 버티컬 분야에서 독점적인 데이터를 축적하며 사용자가 늘수록 서비스가 고도화되는 '운영 플라이휠'을 구축한 기업들은 강력한 방어력을 갖추게 된다.
◇ 엑시트 시장의 불확실성… M&A와 상장 사이의 줄타기
낙관론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스타트업의 최종 목표인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 시장의 분위기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많은 기업이 상장을 꿈꾸지만, 실제로는 대기업에 핵심 인재만 흡수되는 '에퀴하이어(Acqui-hire)' 형태로 끝날 위험도 상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제너럴 카탈리스트와 같은 주요 VC들은 고객 가치 펀드를 조성해 지분 희석을 줄이는 등 새로운 금융 모델을 도입하며 돌파구를 찾고 있다.
결국 향후 AI 시장을 주도할 승자는 단순한 기술 트렌드를 쫓는 이들이 아니다. 실제 업무 프로세스를 자동화하고, 독자적인 데이터를 통해 지속해서 개선되는 시스템을 구축하며, 비용 구조를 완벽히 통제하는 기업이 최후의 승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의 소음은 여전히 크지만, 가치를 증명하는 신호는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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