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너머의 웃음소리와 마당을 가로지르는 수로에는 수백 년째 변함없는 일상이 흐른다. 마을 전체가 국가민속문화유산인 아산 외암민속마을은 인위적인 세트장이 아니라, 5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 된 공간이다. 설화산 아래 옛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 마을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마을의 역사는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에는 강 씨와 목 씨 등이 정착해 터를 잡았으나, 조선 명종 시기 예안 이씨 이정 일가가 이주해 오면서 본격적인 집성촌의 기틀이 마련됐다. 이후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번창하며 학문과 관직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마을은 점차 격식 있는 양반촌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현재의 ‘외암’이라는 이름은 이정의 6대손이자 조선 후기의 학자인 이간의 호에서 유래했다. 마을 곳곳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고택들이 즐비하며, 각 집의 이름은 주인의 관직명이나 출신지를 따 영암댁, 참판댁, 송화댁 등으로 불린다. 마을 입구에 서면 뒤로는 설화산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앞으로는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을 확인할 수 있다.
마을의 가장 큰 특징은 신분에 따른 가옥 구조가 이질감 없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다. 기와지붕이 늠름한 양반가의 대저택과 둥근 초가지붕이 정겨운 서민 가옥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이는 조선시대의 사회 구조와 주거 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된다. 특히 양반가의 정원은 화려한 장식보다는 주변 자연 경관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는 차경의 미학을 잘 보여준다. 설화산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마을 안마당을 거쳐 흐르도록 설계된 수로와 인공 연못은 당시 선비들의 풍류와 지혜를 짐작하게 한다. 돌담 사이로 뻗어 나온 감나무 가지와 이끼 낀 돌틀은 계절마다 다른 빛깔을 내며 마을 풍경에 변화를 더한다. 5.3km에 달하는 돌담길은 마을의 집과 집을 연결하는 소통의 통로이자 외암마을만의 독특한 경관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다.
마을을 걷다 보면 발길이 닿는 곳마다 주민들의 정성 어린 손길이 느껴진다. 마을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이어온 농업에 종사하며 전통적인 생활 양식을 이어가고 있다.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감자 수확, 고구마 캐기, 강정 만들기 등 다양한 농촌·전통문화 프로그램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체험은 잊혀 가는 우리 고유의 손맛과 노동의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찾는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는 교육적인 의미도 크다. 체험 프로그램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매년 10월경 열리는 짚풀 문화제는 마을의 대표 행사로, 짚을 이용한 공예품 만들기와 전통 혼례 재현 등 다양한 볼거리를 선보이며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외암마을의 또 다른 즐거움은 마을 입구에 조성된 저잣거리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시대 시장의 모습을 재현한 이곳에서는 아산의 향토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특히 예안 이씨 가문에서 빚어오던 연엽주는 아산을 대표하는 전통주로, 연꽃잎의 은은한 향과 부드러운 목 넘김이 특징이다. 또한 마을 인근에서 수확한 콩으로 직접 만든 청국장과 고소한 파전은 나들이객들의 허기를 든든하게 채워준다. 제철 식재료를 사용한 산채비빔밥 역시 담백한 맛을 찾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돌담길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인위적이지 않은 옛 마을의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라는 방문 후기가 꾸준히 올라온다. 마을 곳곳에서 마주치는 누렁이와 골목길의 정취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정서적인 여유를 안겨준다.
마을 주변에는 함께 둘러보기 좋은 명소들도 자리하고 있다. 인근의 현충사는 충무공 이순신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경건한 마음으로 산책하며 역사를 되새기기에 좋다. 또한 가을이면 노란 물결이 장관을 이루는 곡교천 은행나무길은 외암마을과 연계해 찾기 좋은 코스로 꼽힌다. 아산의 온천 지구 역시 가까운 거리에 있어 마을 관람 후 피로를 풀기에 적당하다. 이처럼 외암마을은 주변 관광 자원과의 접근성이 좋아 주말 나들이나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많이 찾는다. 마을 앞 저잣거리 공연장에서는 간헐적으로 국악 공연이나 민속놀이가 펼쳐져 방문객들에게 흥겨운 볼거리를 더한다.
관람을 계획하고 있다면 운영시간과 입장료를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외암민속마을의 관람 시간은 하절기 기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동절기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한다. 입장료는 성인 2000원, 어린이·청소년 및 군인은 1000원이다. 30명 이상 단체 방문 시에는 할인이 적용되므로 미리 확인하면 도움이 된다. 마을 내 가옥들은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는 공간인 만큼, 관람 시 소란을 피우거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소유주의 사정에 따라 일부 고택의 내부 관람이 제한될 수 있다는 점도 방문 전에 알아두면 좋다.
아산 외암마을은 5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켜켜이 쌓인 역사의 층위 위에 오늘의 삶이 자연스럽게 덧입혀진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투박하지만 정겨운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우리가 잊고 지냈던 전통의 아름다움과 느림의 미학을 다시금 발견하게 된다. 사계절 저마다 다른 옷을 갈아입는 마을의 풍경은 방문할 때마다 다른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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