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용여는 1945년생으로 지난 1965년 TBC 1기 무용수로 방송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무대 위 독보적인 아우라를 뿜어내던 그녀는 서구적인 마스크로 당시 드라마 국장의 눈에 띄어 1966년 드라마 '상궁 나인'을 통해 배우로 전향하게 된다. 데뷔와 동시에 라면 광고 모델을 꿰차는 것은 물론, 한국 최초의 국산 자동차 광고 모델로 발탁 되는 등 각종 브랜드의 얼굴로 활약하며 승승장구하던 그녀는 당대 최고의 톱스타이자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남부러울 것 없던 전성기를 누리던 그녀에게 믿기 힘든 비극이 찾아온 것은 1969년 결혼식 당일이었다. 신랑이었던 고(故) 김세명 씨가 빚보증 문제로 예식장에서 경찰에 연행되는 전무후무한 사건이 발생한 것. 당시 남편이 짊어진 빚은 약 1,750만 원으로, 이는 당시 서울 시내 번화가의 집 15채를 통째로 살 수 있었던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무려 200억 원대를 상회하는 빚더미를 신혼 초에 마주하게 된 그녀는 남편을 석방시키기 위해 만삭의 몸으로 영화 6편을 동시에 촬영하는 등 고난의 사투를 벌였고, 지독한 생활력으로 수년의 활동 끝에 거액의 빚을 모두 갚아내는 영화 같은 행보를 보였다.
가족을 향한 헌신은 또 다른 선택으로 이어졌다. 1982년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중 자녀 교육과 남편의 새 출발을 위해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미국 이민을 선택한 것이다. 타국에서 그녀는 봉제 공장 보조와 식당 웨이트리스를 전전하며 처절한 생활고를 견뎌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연기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결국 "너는 한국에서 빛나야 할 배우"라는 친정어머니의 눈물 어린 설득과 연기를 향한 갈증으로 1989년 영구 귀국을 결심하게 된다. 복귀 이후 SBS 시트콤 '순풍산부인과'를 통해 푼수기 넘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안방마님 역할을 맡은 그녀는 "맙소사", "몰라 몰라" 등 각종 유행어를 탄생시키며 배우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2014년 선우용여는 7년여의 투병 생활 끝에 남편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며 45년간의 동행을 마무리했다. 결혼식 날의 청천벽력 같은 사건부터 평생의 빚더미까지, 결코 평탄치 않은 세월이었음에도 그녀는 남편에 대한 원망보다는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그녀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나를 배우로 만들어준 것도, 예쁜 자식들을 준 것도 남편이다. 원망보다는 고마움이 크다"며 남편과의 세월을 긍정하는 대인배적인 면모를 보였다. 이러한 그녀의 성숙한 가치관은 단순한 연예인을 넘어 시대를 버텨낸 강인한 여성으로서 대중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하고 있다.
멈추지 않는 도전 정신으로 매 순간 자신의 기록을 경신해 나가는 선우용여.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 '순풍 선우용여'를 통해 젊은 세대와 격의 없이 소통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80세의 나이에도 '인생은 쉼표 없는 전진'임을 몸소 증명하고 있는 그녀가 앞으로 또 어떤 위로와 웃음으로 우리를 찾아올지 기대가 된다.
Copyright ⓒ 메타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