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수사국(FBI) 산하 인터넷범죄신고센터(IC3)가 공개한 사이버 범죄 수치는 한 방향을 가리킨다. 총성과 전사자 대신 파산자가 나오면서, 전장은 스마트폰 화면 위로 옮겨갔다. 7일 기준 원·달러 환율 1497원을 적용하면, 한 해 접수된 신고는 100만8597건, 피해액은 208억7700만 달러로 약 31조2000억원 규모다. 전년보다 26% 늘었다. 하루 평균 3000건의 피해가 접수됐다.
피해는 고령층에 집중됐다. 전체 피해액의 37%인 77억4800만 달러, 약 11조6000억원이 60세 이상에서 발생했다. 증가율은 59%에 달한다. 1인당 평균 피해액은 3만8500 달러, 약 5760만원이다. 평생 축적한 자산이 한순간에 증발됐다.
FBI는 ‘오퍼레이션 레벨업’을 통해 암호화폐 투자사기 피해자 3780명에게 직접 연락해 사기 사실을 알렸다. 이 가운데 78%는 피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38명은 인명 위험으로 관련 전문 기관에 긴급 연결됐다. 401K 퇴직연금 75만 달러를 인출하려던 사례, 집을 팔아 50만 달러를 보내려던 사례, 대출로 40만 달러를 송금하려던 사례를 FBI가 사전에 차단했다. 대응은 범인 검거를 넘어 피해자의 붕괴를 막는 단계로 이동했다.
자금의 흐름도 밝혀졌다. FBI는 암호화폐 투자사기의 배후로 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 일대에 자리 잡은 동남아 조직범죄 집단을 지목했다. 이른바 ‘스캠 컴파운드’는 중국 조직범죄와 연결돼 있고, 인신매매 피해자를 강제로 동원해 사기를 운영한다. 미국 법무부가 2025년 ‘스캠센터 스트라이크 포스’를 출범시킨 것도 이 구조를 겨냥한 조치다. 피해자의 돈이 범죄 시설을 키우고, 커진 조직이 다시 피해를 만드는 순환 구조가 형성됐다.
FBI와 미 법무부에 따르면, 고령층이 주요 표적이 된 이유도 수치로 확인된다. FBI는 암호화폐 관련 신고에서 60세 이상 피해액은 44억3200만 달러, 약 6조6300억원으로 전체의 39%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투자사기만 보면 27억6300만 달러, 약 4조1400억원이다. 정부기관 사칭으로 4억1300만 달러(약 6200억원), 기술지원 사기로 10억4000만 달러(약 1조5600억원)가 빠져나갔다. 자산과 신뢰가 동시에 공격 대상이 된 셈이다.
인공지능(AI)은 이 흐름을 더 빠르게 만들고 있다. FBI에 접수된 AI 관련 신고는 2만2364건, 피해액은 8억9300만 달러, 약 1조3400억원이다. 이 가운데 투자사기에서 AI가 활용된 피해만 6억3200만 달러, 약 9500억원이다. 범죄자들은 유명인의 얼굴과 목소리를 합성해 투자 영상을 만들고, 다수의 피해자와 동시에 대화를 이어가며 신뢰를 쌓는다. 가족의 목소리를 복제해 전화를 거는 방식으로 수십억원 규모 피해도 발생했다.
FBI 자산회수팀(RAT)이 운영하는 금융사기차단체계는 2025년 3900건을 추적해 11억6300만달러 가운데 6억7900만 달러, 약 1조170억원을 동결했다. 성공률은 58%다. 동시에 42%는 회수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전체 피해 규모와 비교하면 회수 가능한 범위는 제한적이다. 이 구조는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FBI는 <뉴스로드>와의 통화에서 "동남아 기반 보이스피싱, 암호화폐 사기, 딥페이크를 활용한 지인 사칭은 이미 한국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FBI 범죄·사이버 부문 작전국장 호세 A. 페레즈는 “사이버 보안에 대한 경각심과 전자적 상호작용에 대한 주의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신뢰를 지키지 못하는 순간, 신뢰 자체가 공격 수단으로 바뀐다. 그 무기는 지금도 누군가의 스마트폰 속에서 켜지고 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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