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솔루션의 2조4000억원 규모 유상증자 공시 여파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발행주식 총수 대비 주식수를 42%나 늘리는 조 단위 유상증자 결정을 두고 소액주주들의 반발 수위가 예사롭지 않다. 주식 발행수가 늘어나면 가치가 희석돼 주가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이번 한화솔루션과 소액주주 간에 갈등은 주주권익 보호를 강조하는 내용의 상법개정안 통과와 맞물려 재계는 물론 한국 사회 전체의 관심사로 자리매김한 모습이다. 덕분에 앞서 비슷한 사건이 종종 벌어졌던 미국과 영국의 법적 판례에도 새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화솔루션 소액주주 집단소송 움직임에 시민단체·법조계 "유의미한 결론 등장 가능성"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ACT), 재계 등에 따르면 지난 2일 오후 6시 기준 한화솔루션 소유한 소액주주 2900여명이 결집해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소송에 참여한 소액주주 지분율의 총합은 전체 지분의 1.83%(약 315만주) 수준이다. 단순 지분율만 놓고 봤을 땐 경영적 판단에 크게 영향을 미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지난해 7월 국회 본회의 통과 직후 단계적 시행에 돌입한 상법개정안 이슈와 맞물려 사태의 추이를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시민단체와 법조계 안팎에선 최소한의 논의 가능성을 예상하는 목소리와 동시에 새로운 법적 판단의 등장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는 견해가 교차하고 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상법개정안에 따라 한화솔루션은 전체 주주의 관점에서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지 그 영향을 분석해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데 이러한 주주보호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권재열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이사가 악의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치고 주가하락 등 손해를 일으킨 사실이 있는지 면밀히 살펴봐야 할 사안이다"면서도 "개정법 자체만으로 판례가 어떤 권리를 인정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지만 논의는 충분히 가능한 부분이다"고 강조했다.
이현균 한국법학원 연구위원은 "유상증자는 회사가 합법적으로 규모를 키우는 수단으로 법이 보장한 제도인 만큼 주가하락만으로 바로 법 위반이 되지는 않지만 단순히 주주 돈으로 빚을 갚겠다는 것이라면 논란이 된다"며 "회사의 중장기적 성과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거나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지 않은 부분 등이 밝혀지면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이 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한화솔루션 소액주주들과 여러 가지 법적 수단을 모색 중이라는 천경득 변호사는 "전체 지분의 2%가 결집했다는 것은 이 사건에 대한 주주들의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지표다"며 "주주대표 소송이 아니더라도 적절한 법적 수단을 취해서 앞으로 개정상법 하에 이런 일이 더 이상은 반복될 수 없다는 본보기를 보일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어 "변호사로서 소송의 결과를 쉽게 장담하지 않는 게 맞지만 이번 사안은 판례가 달라져야 할 여러 요건을 갖춘 사안이라 결과에도 분명 변화가 있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상법개정안 벤치마킹 법안 판례 살펴보니…소액주주 권리 외면했을 땐 이사회 결정 뒤집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론의 관심은 상법개정안과 비슷한 법안이 이미 시행 중인 해외 사례를 향하고 있다. 법안 개정의 취지 때문에라도 법원 입장에서 기존의 판례를 100%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정대익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주주보호의무를 강화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법에 담은 것과 실제 법원에서 권리를 인정해주는가는 별개의 문제이긴 하지만 법적 액션을 취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는 사안이다"며 "우리 법원이 구체적인 법리를 구성할 때 미국이나 영국 판례를 참조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르데스크 취재 결과, 상법개정안이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려진 법안들을(델라웨어주 OO법, 영국 회사법) 일찌감치 시행한 영국과 미국 델라웨어주에는 관련 판례가 쌓여있다. 두 곳에서 시행 중인 법안에는 이사를 회사의 대리인으로만 보는 한국이나 일본 등과는 달리 이사가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에도 충실의무를 진다고 규정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이사회가 유상증자와 같이 법적 권한 내에 있는 재무결정을 내렸더라도 주주이익에 충실할 의무를 위반했는지를 요건과 목적을 엄격히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소액주주 이익 보호를 명확히 언급한 판례로는 과거 소프트웨어 기업 트라도스 주주들이 델라웨어주 법원에 제기한 집단소송(In re Trados Inc. Shareholder, 2013) 결과가 꼽힌다. 당시 회사가 경영난에 처하자 이사회는 벤처캐피털(VC) 자금을 수혈했는데 이후 이사회를 장악한 VC 이해관계자들은 회사를 매각하면서 매각 대금의 일정 부분을 우선주주와 경영진이 먼저 가져가도록 설계했다는 게 집단소송의 쟁점이었다.
당시 법원은 "이사회가 소액주주의 몫을 희석시켜 대주주나 우선주주의 이익을 취하거나 대주주에 유리한 결정을 내릴 때 소액주주를 위한 독립적 특별위원회를 개최하지 않았다면 주주보호의무를 위반한다"고 판시했다. 판결 이후에도 회사 자금이 바닥나 소액주주들에게 돌아간 보상금은 전무했지만 "주주의 이익을 무시하면 소송당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확립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판례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사회가 기습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린 부분에 대한 법적 판례로는 리스회사 트랜스유니온 주주들이 CEO와 이사회를 상대로 제기한 사건(Smith v. Van Gorkom, 1985)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사건 쟁점은 트랜스유니온의 반 고컴 CEO는 지인에게 회사를 매각하기로 결정하고 토요일 오전 이사회를 소집해 매각안을 발표했는데 이사들은 어떠한 자료도 제공받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고컴의 구두 설명만 듣고 두시간만에 매각을 승인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델라웨어주 대법원은 "이사들이 회사를 적절한 가격에 매각하고 주가의 하락을 방지할 주주충실의무를 중과실로 위반했다"며 1심인 델라웨어주 형평법원(Delaware Court of Chancery)에 돌려보냈다. 이후 당사자들은 1심 법원에서 배상액 판결이 나오기 전 2350만 달러에 합의하면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법원이 배상액을 못 박진 않았지만 당시 임원배상책임보험(D&O) 상한 보장액이던 1000만 달러를 훌쩍 넘는 금액이라는 점에서 주주권익 보호와 관련해 상당히 의미가 있는 판결로 남게됐다.
'회사 위해' 핑계 안 먹히는 영국, 목적 있거나 결과 부당하면 이사회 결정 줄줄이 무효
영국 회사법(제171조b항)은 '이사는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그 권한이 부여된 본래의 목적을 위해서만 행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법원은 이사회가 내린 결의를 면밀히 파헤쳐 '부당한 목적' 여부를 꼼꼼하게 판단하며 말만으로 관용을 베풀지 않고 객관적 사실을 엄격히 파고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내린 결정"이라는 주장이 영국 법원에서 쉽게 안 먹히는 이유다. 이러한 엄격한 회사법 조항은 한 판례(Howard Smith Ltd v Ampol Petroleum Ltd, 1974)의 법리 해석을 바탕으로 제정됐다.
계기가 된 사건은 과거 호주 기반 석유 등의 유통사업을 영위하는 RW밀러가 회사를 적대적으로 인수하려는 대주주의 지분을 희석시키기 위해 신주를 대량으로 발행해 지배구조를 바꾼 내용이 골자다. 당시 법원은 "신주발행의 목적을 면밀히 살펴본 결과, 목적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사회는 '회사의 자본 확충'이라는 선의의 경영 판단이었다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회사의 자본 확충이라는 표면적 목적과는 달리 지배구조 변경이 본래의 의도라는 것이 확인된 이상 부당한 목적으로 진행된 유상증자다"며 이사회 결의를 무효로 돌렸다.
영국에는 이사회 의결이 여러 가지 목적에 의해 이뤄진 경우 목적의 부당함을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확립한 판례(Eclairs Group Ltd v JKX Oil & Gas plc, 2015)도 존재한다. 판결문 내용에 따르면 석유회사인 JKX는 소수주주 에클레르 등을 기업사냥꾼으로 의심하고 이들에게 "너의 배후가 누구인지 밝히라"며 정보공개를 요청했는데 이에 불만을 느낀 에클레르 등 소수주주는 "지금 이사회는 무능하니 재선임 결의에 반대하자"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이후 JKX 이사회는 소수주주들이 "정보 요청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결권을 정지하고 주식 양도를 금지했고 결국 양측의 갈등은 법정공방으로 확대됐다. 당시 재판부는 소수주주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소수주주의 정관에 정해진 권한으로 의결권을 정지하고 주식양도를 금지했어도 그러한 결의를 한 주된 목적이 그 권한이 예정한 목적을 벗어났다면 부당하다"고 판시하면서 이사회 결의를 무효로 돌렸다. 어느 목적을 빼고서는 그러한 이사회 의결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면 그 목적이 판단의 대상이 되는 '주된 목적'이라는 것이다.
특정 주주의 지배력 확대를 막기 위해 직원복지기금을 설립해 막대한 신주를 배정한 이사회 결정에 법원이 제동을 건 판례(Hogg v Cramphorn Ltd, 1967)도 존재한다. 영국 법원 등에 따르면 가족경영 회사인 크램폰은 기업 인수 의도를 가진 것으로 의심되는 특정 주주가 계속해서 주식을 사 모으자 직원 복지 명목으로 신탁을 설립하고 5700여주의 신주를 발행해 신탁에 몰아줬다. 이에 대해 법원은 "회사를 지키기 위한 목적과 직원 복지를 위한 목적 모두 선의라 해도 신주 발행의 원래 목적이 아닌 이상 부당한 목적이다"며 이사회 결의를 무효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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