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권의 가계대출 문턱이 나날이 높아지면서 서민들의 마지막 비상구로 불리는 카드 대출에서 심각한 위험 신호가 감지됐다. 시중은행과 저축은행에서 밀려난 취약 차주들이 지방은행 카드 사업부로 대거 몰린 상황에서, 연체율이 카드 사태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며 서민 경제의 기초 체력이 바닥났음을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7일 한국은행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1월 국내 일반은행의 신용카드 대출 연체율은 4.1%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말(3.2%)보다 0.9%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카드 사태가 정점이던 지난 2005년 5월(5.0%) 이후 20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통계상 일반은행에는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이 포함되지만, KB·신한·하나·우리 등 금융지주 산하에 별도 전업 카드사를 둔 곳은 제외된다. 즉, 이번 4.1%라는 수치는 은행 내부에 카드 사업부를 둔 iM뱅크(전 대구은행)를 비롯해 부산·경남·광주·전북은행 등 지방은행 차주들의 부실이 본격화됐음을 의미한다. 2005년 이후 대체로 1~2%선을 유지하던 연체율은 2024년 3%대에 진입한 뒤, 올 들어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4%대를 돌파했다.
부실의 일차적 원인은 시중은행의 대출 규제와 저축은행의 대출 중단이 맞물린 풍선효과다.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책으로 1금융권 창구가 조여지자 차주들은 2금융권인 저축은행으로 향했지만, 저축은행마저 건전성 관리를 위해 공급을 줄였다. 실제 지난 2월 저축은행의 가계대출은 1000억원 줄어들며 감소세로 돌아섰다.
결국 취약 차주들은 상대적으로 접근이 용이한 지방은행의 카드론과 현금서비스를 선택했다. 하지만 경기 부진 속에 고금리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이들이 속출하면서 연체율 폭탄이 터진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지난 1일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관리 방안'을 통해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을 1.5%로 제한하는 강력한 규제를 본격 시행하면서, 카드 대출로의 쏠림과 연체 압박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지방은행 카드 사업부의 위기는 삼성·현대 등 전업 카드사로의 전이 가능성을 시사한다. 9개 카드사(롯데·BC·삼성·신한·우리·하나·현대·KB국민·NH농협)의 2월 말 카드론 잔액은 42조9022억 원으로 전월 대비 3171억원 늘어나 역대 최대 수준에 근접했다.
지방은행 카드는 지역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비중이 높아 실물 경기 악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방은행 카드론 이용자 상당수가 대형 전업 카드사 대출을 동시에 보유한 다중채무자"라며 "지방에서 시작된 4.1%의 연체율은 시차를 두고 카드업계 전체로 번질 신용경색 시나리오의 선행 지표"라고 경고했다.
지방은행 한 관계자는 "최근 시중은행 대출 규제로 인해 우리 쪽 카드론을 찾는 고객이 눈에 띄게 늘었지만, 이들의 상환 능력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연체 관리에 비상이 걸린 상태"라며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책이 의도치 않게 서민들을 더 열악한 대출 환경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정책이 수치상의 총량 억제에는 성과를 내고 있을지 모르나, 결과적으로 취약 계층을 초고금리 대출 벼랑 끝으로 밀어내며 금융 생태계의 가장 약한 고리부터 무너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연호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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