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장 진화한 박물관, V&A 이스트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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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장 진화한 박물관, V&A 이스트 박물관

맨 노블레스 2026-04-07 17: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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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만 점의 소장품을 보관 중인 V&A 이스트 스토어하우스 전경.
50만 점의 소장품을 보관 중인 V&A 이스트 스토어하우스 전경.

V&A 이스트 박물관・V&A 스토어하우스

빅토리아 여왕과 부군 앨버트 공의 이름을 본뜬 빅토리아 & 앨버트 박물관(이하 V&A)은 장식예술과 디자인 분야에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1852년 서런던에 설립된 V&A가 동런던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공원에 2개의 새로운 공간을 선보인다. 지난해 9월에 문을 연 ‘V&A 이스트 스토어하우스’와 4월 18일 개관을 앞둔 ‘V&A 이스트 박물관’이다. 딜러 스코피디오 + 렌프로와 오도넬 + 투미가 각각 설계한 두 공간은 전통적 박물관의 문법을 새롭게 쓰고 있다.

크리스챤 디올의 에카를라트 칵테일 드레스(1955년)

대부분의 박물관은 방대한 소장품을 보유하고도 공간의 한계로 인해 극히 일부만 공개한다. 2025년 5월 런던 이스트 뱅크에 문을 연 V&A 이스트 스토어하우스는 바로 이 구조적 한계에서 출발했다. 이곳은 수장고이자 연구실, 전시장인 하이브리드 플랫폼이다. 관람객은 그간 베일에 가려 있던 수십 만 점의 유물을 볼 수 있다. 스토어하우스가 아카이브의 접근성에 집중한다면, V&A 이스트 박물관은 전시와 퍼포먼스 중심의 문화 거점이다. 예술, 건축, 디자인, 퍼포먼스, 패션을 아우르는 500점 이상의 V&A 소장품을 선보이는 2개의 무료 상설 전시와 함께 특별 전시와 라이브 이벤트를 진행한다. 개관 기념 특별전으로는 를 기획했다. 젠하이저의 사운드 경험을 결합해 영국 흑인 음악의 125년 역사를 탐구하는 전시로, 조안 아마트레이딩의 기타, 리틀 심즈가 착용한 의상, JME가 초기 음악 실험에 사용했던 닌텐도 게임기 등 200여 점을 공개한다. 이 전시는 올해부터 동런던에서 열릴 문화 페스티벌의 신호탄이기도 하다. V&A 이스트 박물관은 BBC 뮤직 스튜디오, 런던 패션 대학, UCL 이스트 등 이스트 뱅크의 문화 기관과 협력해 매년 봄 문화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V&A의 두 공간은 앞으로 박물관의 역할을 확장하며 새로운 관람 경험을 제시할 것이다.

비비안 리의 자료
인도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회화 작품들을 V&A 이스트 스토어하우스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를 주문하다

V&A 이스트 박물관과 스토어하우스는 21세기 예술 기관이 대중과 관계 맺는 방식을 재정의한 공간이다. 문턱을 낮추고, 벽을 허물고, 관람 질서를 다시 짰다. 전통적으로 박물관은 셰프가 짜놓은 코스 요리를 따라가는 파인다이닝처럼 큐레이터가 구성한 서사를 따라 소장품을 감상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V&A 이스트 스토어하우스는 이 구조를 과감히 뒤집는다. 이를 가장 쉽게

설명해주는 것이 ‘오더 언 오브젝트(Order an Object)’시스템이다. 관람객은 온라인으로 50만 점이 넘는 디지털 카탈로그를 검색해 최대 다섯 점의 유물을 선택한 뒤 예약 방문 시 직원의 안내를 받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는 고전적 하드웨어에 디지털 시대 ‘검색’ 문법을 이식한 것과 진배없다. 백과사전을 처음부터 읽는 대신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해 원하는 정보를 찾거나, 혹은 알고리즘이 추천한 콘텐츠를 고르는 행위를 물리적 공간으로 옮겨놓은 듯하다. 즉 관람객은 각자의 관심에 따라 유물을 감상한다. 대중의 반응은 예상보다 뜨겁다.

레디 부레티가 데이비드 보위를 위해 디자인한 무대 의상(1973년).

V&A의 소장품 관리 이사인 케이트 파슨스에 따르면 “개관 이후 약 3만 점의 유물이 관람 예약을 받았다. 그 3만 점은 이 시스템이 없었다면 수장고에 보관된 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을 유물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소장품을 관람하러 온다. 스토어하우스 내 ‘데이비드 보위 센터’의 아이템은 가장 인기 있는 예약 품목이 되었고, 어떤 이는 먼 조상의 웨딩드레스를 보기 위해 대양을 건너오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박물관을 작동시키는 주체가 더 이상 기관만이 아니라 관람객이기도 하다는 의미다. 물론 수십만 점의 유물을 대중의 손이 닿는 곳까지 끌어내린다는 방식에는 우려와 부담도 따른다. 그럼에도 이들이 빗장을 푼 이유는 명확하다. 유물은 수장고 안에서 잠들어 있을 때보다 누군가의 시선과 만나 영감으로 이어질 때 더 큰 가치를 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V&A는 컬렉션을 박물관의 전유물이 아니라 공동 창작 자원으로 되돌려주려 한다. 기꺼이 공유함으로써 문화적 증폭을 일으키고, V&A 박물관이 거대한 공동 아틀리에로 거듭나길 바라면서.

4월 18일 개관하는 V&A 이스트 박물관의 외관.

정적(靜的)을 깨뜨리다

V&A 이스트 박물관은 전통적 박물관이 고수해온 견고한 위계와 엄숙함을 의도적으로 흔든다. 박물관 입구에 세워진 토마스 J. 프라이스의 조각상 ‘A Place Beyond’가 그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높이 5.5m에 달하는 이 브론즈 조각은 평상복 차림으로 휴대폰을 들고 지평선을 바라보는 가상의 젊은이를 묘사한다. V&A 측은 이 조각상을 ‘변화를 향한 고요한 상징이자 사회적·인종적 고정관념에 대한 거부이며, 일상의 순간을 통해 연결을 만들어내는 매개체’로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 조각상은 하나의 선언과도 같은데, 젊고 다문화적인 동런던의 에너지와 상생하겠다는 의지다. 이처럼 V&A 이스트 박물관은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변화하는 ‘진행형 공간’이길 자처한다. BBC 뮤직 스튜디오와 협업한 흑인 음악 페스티벌이나 런던의 16~24세 청년으로 구성된 ‘V&A 이스트 유스 컬렉티브(V&A East Youth Collective, 박물관의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파트너)’제도가 대표적인 예다.

1924년 발레 뤼스가 초연한 작품 ‘르 트랭 블뢰(Le Train Bleu)’를 위해 파블로 피카소가 제작한 작품.

이는 비단 V&A 이스트만의 특별한 움직임이 아니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과 블랙핑크의 협업 역시 전통, 순수예술, 대중문화로 나뉘던 문화의 층위가 점차 흐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프로젝트였다. 매일 밤 박물관 외벽은 핑크빛으로 물들었고, 메인 로비 역사의 길 광개토대왕릉비 앞에서는 신곡 청음회가 열렸다. 세계 곳곳의 박물관도 그 흐름에 합류하고 있다. 브라질의 상파울루 미술관은 유럽, 브라질, 아프리카 및 원주민 예술 컬렉션(이전에는 단 1%만 전시)을 더 많이 선보이기 위해 공간을 획기적으로 확장했다. 까르띠에 재단은 파리에 지역사회 교육과 체험 워크숍을 위한 전용 시설을 마련했고,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고대 이집트의 덴두르 신전 등 주요 소장품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가상현실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박물관은 더 이상 과거를 박제하는 장소가 아닌, 멈춘 것들을 흔들며 문화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동시대 문화와 호흡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창조의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데이비드 보위의 앨범 에 수록된 곡 ‘Win’의 자필 가사.
에디터 이도연 사진 제공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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