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중심 대응 한계…‘캐리어 시신’ 사건이 드러낸 가정폭력 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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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중심 대응 한계…‘캐리어 시신’ 사건이 드러낸 가정폭력 사각지대

투데이신문 2026-04-07 16:34:3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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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를 무차별 폭행해 살해한 뒤 시신을 여행용 가방에 담아 유기한 20대 사위와 친딸이 지난 2일 대구 수성구 대구지방법원에서 진행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장모를 무차별 폭행해 살해한 뒤 시신을 여행용 가방에 담아 유기한 20대 사위와 친딸이 지난 2일 대구 수성구 대구지방법원에서 진행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지난달 31일 대구 신천 일대에서 발견된 이른바 ‘신천 캐리어 시신’ 사건 피해자인 50대 여성이 수개월간 함께 살던 사위로부터 지속적인 폭력을 당한 끝에 사망한 사실이 알려진 가운데, 가족 내 갈등이 중대한 강력범죄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예방·대응체계 전반을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7일 대구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존속살해 및 시체유기 혐의로 구속된 사위 조모(27)씨가 ‘신천 캐리어 시신’ 사건 피해자인 장모 A(사망 당시 54세)씨를 폭행하기 시작한 것은 올해 초부터다.

당시 A씨는 딸 최모(26)씨가 지난해 9월 결혼한 직후부터 남편에게서 폭력을 당하자 이를 보호할 목적으로 대구 중구 소재 한 원룸에서 이들과 함께 생활해 왔다. 이 과정에서 조씨의 폭력 대상이 딸을 넘어 A씨에게까지 확대되며 끝내 비극이 발생했다. 

숨진 모친과 마찬가지로 남편으로부터 폭행을 당해온 최씨는 보복이 두려워 이 같은 사실을 신고하거나 주변에 알리지 못했다. 보복에 대한 두려움과 외부 개입의 부재가 비극을 키운 셈이다.

초기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A씨는 사위의 지속적인 폭행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의료적 조치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됐고 결국 지난달 18일 거주지 원룸에서 1시간 넘게 이어진 폭행 끝에 숨졌다. 

사망 당일 조씨는 범행을 은폐할 목적으로 평소 소지하고 있던 여행용 캐리어에 A씨의 시신을 넣은 뒤 아내이자 피해자의 딸인 최씨와 함께 도보로 10~20분 거리의 도심 하천인 북구 칠성동 신천으로 옮겨 유기했다.

이후 지난달 30일 대구 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수위가 상승하고 유속이 빨라지면서 캐리어가 하류로 떠내려갔고 하천 중앙의 돌에 걸쳐 부유하던 상태에서 행인의 눈에 띄어 발견되면서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시민 신고로 수사에 나선 경찰은 조사 끝에 당일 오후 조씨 부부를 긴급체포했다. 지난 2일 조씨는 존속살해·시체유기 혐의로, 최씨는 시체유기 혐의를 받고 구속됐다. 경찰은 휴대전화 포렌식, 추가 부검 등을 마치고 이르면 오는 8일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지난달 31일 대구북부경찰서 모습 일부. [사진제공=뉴시스]
지난달 31일 대구북부경찰서 모습 일부. [사진제공=뉴시스]

A씨의 사망 전 ‘위기 신호’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조사 결과, A씨는 생전에 스토킹이나 가정폭력 등 관계성 범죄 피해로 경찰에 신고한 이력이 없었으나 지난해 한 차례 가출 신고가 접수됐던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A씨가 발견되며 사건은 일단락됐으나 이를 두고 범죄심리학 전문가들은 해당 가출이 단순 이탈이 아닌 가정 내 위기 상황을 드러내는 신호였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 같은 위기 징후의 사각지대가 이번 사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족 간 범죄는 작은 폭력이 반복되다 결국 큰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경기 용인에서는 20대 아들이 70대 어머니를 살해했다. 같은 해 7월 경기 김포에서는 30대 남성이 부모와 형을 모두 살해한 사건이 일어난 바 있다.

이번 사건과 같이 관계성 범죄는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가정폭력·교제폭력·스토킹 등 관계성 범죄에 대한 112 신고는 43만9456건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성평등가족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여성폭력통계에서도 ‘친밀한 관계 살인·치사 범죄’에 대한 검거 인원은 2023년 205명, 2024년 219명으로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현행 가정폭력 대응 체계가 ‘신고’에 의존한 수동적 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정폭력 대응을 위한 법적 장치로는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마련돼 있지만 현행 체계는 피해자의 신고를 전제로 공권력이 개입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친족 관계의 특수성과 경제적 의존, 보복에 대한 두려움, 체면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면서 피해자가 스스로 신고에 나서는 경우는 많지 않다. 여성긴급전화 1366을 비롯해 가정폭력 상담소와 피해자 보호시설이 전국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이 역시 피해자가 직접 도움을 요청해야 작동하는 방식이다.

결국 이번 대구 사건처럼 공식적인 신고 이력이 없는 경우에는 기존 보호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이에 따라 피해자는 사실상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또 이번 사건처럼 장기간 폭력이 누적되는 동안 별다른 개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두고서도 우리 사회의 대응 체계가 여전히 사후 대응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처벌 강화보다 예방·지원 중심 구조를 강화하는 게 가정폭력 예방에 있어 보다 실효성이 높다고 말한다. 

한라대 경찰행정학과 이정덕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현행 가정폭력 대응 체계는 범죄가 확인된 이후에야 경찰이 개입하는 구조로, 예방적 대응에 한계가 있어 결과적으로 수동적 대응에 머물고 있다”며 “참극으로 이어지기 전 단계에서 지역사회가 폭력 징후를 조기에 인지·교정하고 일정 수준을 넘을 경우 경찰 역시 긴급조치 등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개입 여부를 일선 경찰 개인의 판단에 맡기는 현재 구조는 부담이 크고 판단의 객관성과 일관성도 확보하기 어려운 만큼 위원회 등 집단적 의사결정 체계를 도입하고 정보 교환 등 지자체와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또 정부 차원에서 교제·가정폭력을 전담하는 거점 센터를 구축해 피해자 보호와 지원을 체계화하고 이를 경찰과 연계한 통합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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