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젠더리빌, 베이비샤워, 브라이덜샤워 등 해외에서 유입된 출산·결혼 관련 이벤트 문화가 국내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가운데 이들 문화가 본래 취지보다 상업적으로 활용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가족과 지인 중심의 소규모 축하 행사로 시작된 문화가 SNS를 기반으로 한 '보여주기식 소비'와 결합되면서 비용 부담이 커지고 관련 상품과 서비스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젠더리빌 파티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젠더리빌 이벤트는 미국에서 시작된 문화로 임신한 부부가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태아의 성별을 공개하는 자리에서 비롯됐다. 케이크를 자르거나 풍선을 터뜨리는 방식 등 비교적 간단한 연출로 진행된다. 주로 가정 내에서 소규모로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영국, 캐나다, 호주 등 다른 국가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젠더리빌 문화가 존재하지만 필수적인 행사로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성별을 공개하는 이벤트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기도 하며 베이비샤워와 같은 기존 모임 안에서 간단히 진행되거나 아예 생략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처럼 젠더리빌은 선택적 행사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해당 문화가 SNS를 통해 국내에 도입되면서 양상은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가족 중심의 간단한 이벤트였던 젠더리빌이 하나의 행사 형태로 확장되면서 일부 예비부부들은 별도의 공간을 대여해 이벤트를 진행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호텔이나 파티룸을 이용해 보다 연출된 형태의 행사를 준비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또한 풍선과 배너, 맞춤형 소품 등 젠더리빌에 필요한 상품들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업체들도 최근에 생겨나고 있다. 여기에 맞춤 케이크와 디저트, 촬영 서비스까지 결합되면서 단순한 기념행사를 넘어섰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실제 비용 부담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젠더리빌을 위해 파티룸을 대여할 경우 적게는 수만 원대에서 많게는 수십만 원에 이른다. 풍선 장식과 소품 세트, 맞춤 케이크 등을 포함할 경우 전체 비용이 수십만 원을 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여기에 촬영 서비스까지 추가하면 지출 규모는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맞춤형 풍선 세트를 판매하고 있는 국내 한 대행업체는 컨페티 점보풍선(65cm)과 기본풍선 10개, 벌룬 가랜드(1m), 테슬 가랜드(16단), 컨페티 30g 등이 포함된 'A세트'를 21만2900원에 판매했다. 비교적 구성이 간소한 'B세트'(컨페티 점보풍선, 기본풍선 10개, 테슬 가랜드)는 12만6000원 수준이다. 여기에 아기 모양 대형 풍선을 추가할 경우 2만2000원의 비용이 별도로 발생한다.
젠더리빌 이벤트에 자주 사용되는 핑크색(딸)과 파란색(아들) 시트 케이크는 일반 기성품보다 가격대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맞춤형 수제 케이크 전문 업체들은 부모가 케이크 디자인과 크림 색상 등을 선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업체별 차이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약 6만원부터 가격이 형성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에는 호텔 등 외부 공간을 활용한 젠더리빌 행사도 등장하고 있다. 국내 한 파티 대행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호텔에서 진행하는 젠더리빌의 경우 풍선 단품 배송형과 출장 세팅형으로 나뉜다. 단품 이용 시에는 원하는 구성으로 주문 제작이 가능하며 출장 세팅형은 기본 출장비 포함 약 65만원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파티 연출 수준에 따라 비용은 달라지며 호텔 대관 비용은 별도로 발생한다.
이처럼 그간 우리나라에 없었던 젠더리빌 이벤트가 국내에서 빠르게 확산된 배경에는 SNS를 통한 '보여주기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SNS에서는 젠더리빌 관련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젠더리빌'을 검색하면 2만9000개 이상의 게시물이 노출되며 '#젠더리빌풍선', '#젠더리빌파티' 해시태그 역시 각각 1만8000개, 1만4000개 이상의 게시물이 확인된다.
유튜브에서도 젠더리빌 관련 영상은 같은 채널 내에 있는 다른 영상들과 비교해봤을 때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대 초반 '얼짱시대' 출연으로 이름을 알린 뒤 현재 102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유혜주는 지난 2월 16일 둘째 짱아의 성별을 공개하는 젠더리빌 영상을 게시했다. 해당 영상은 171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비슷한 시기 업로드된 다른 영상 대비 2배 이상 높은 수치를 보였다.
또 지난 2022년 첫째 아이 임신 당시 공개한 젠더리빌 영상 역시 125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 또한 동일시기에 업로드된 다른 영상보다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비부모들 역시 해외와 국내의 비용적인 차이점을 체감하고 있는 모습이다. 몇 주 전 첫째 자녀를 출산한 박희수 씨(31·여)는 "성별을 알고 난 이후 남편한테만 성별을 깜짝 공개하는 이벤트를 했었는데 그때도 풍선이랑 케이크, 아이 신발 등 여러 가지를 구매하느라 제법 돈을 많이 썼던 것 같다"며 "나 역시 즐겁게 즐기기는 했지만 해외와 비교했을 때 비용적인 부담이 큰 편이라는 점을 직접적으로 체감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젠더리빌이 하나의 행사에서 벗어나 상업적 소비로 확대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특히 SNS를 기반으로 한 '보여주기식 이벤트'가 결합되면서 젠더리빌이 하나의 콘텐츠이자 소비 상품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해외에서 젠더리빌은 본래 가족 중심의 소규모 이벤트였지만 최근에는 SNS 공유를 전제로 한 연출 중심의 소비 행위로 변화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이벤트 자체보다 보여주기 위한 지출이 커지면서 상업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Copyright ⓒ 르데스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