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작가가 퇴역한 비행기 부품을 모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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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작가가 퇴역한 비행기 부품을 모은 이유

엘르 2026-04-07 15:33:39 신고

공중에 설치한 ‘The Skin Remembers the Air’(2026)와 ‘Cabin Temperature #11-15’(2026) 사이에 선 김주영.

공중에 설치한 ‘The Skin Remembers the Air’(2026)와 ‘Cabin Temperature #11-15’(2026) 사이에 선 김주영.

많은 사람이 여러 도시 사이에서 삶을 이어가는 시대입니다. 작가님의 작품도 동시대 이동성 안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인가요

유동성이나 유연성(Flexibility)이 있는 삶에 관해 말하고 있어요. 이전 세대보다 우리는 이동도 자유롭고, 여행도 언제든지 갈 수 있잖아요. 저는 뮌헨에 7년째 살고 있습니다. 한국과 독일 그리고 유럽의 나라들을 자주 오가고, 비행기와 공항 같은 장소가 익숙하죠. 조금 넓게 생각해 보면 비행기에 앉아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대기실에 앉아 출발을 기다리는 것 그리고 렌트한 아파트에서 몇 년 살고 다음에 이사 오는 사람에게 키를 넘겨주는 행위 모두 같은 맥락인 것 같아요. 그곳에서 우리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룰이 있고, 그래서 그 공간이 일종의 ‘목적지’가 아닌 다음 스텝으로 가기 위한 과정으로 여겨지는 거죠. 익명의 사람들이 모여 어떤 시간을 공유하고, 또 흩어지고, 다시 같은 장소에 도달하기 위한 목적을 지닌 이 과정이 반복되면 우연한 마주침이 발생합니다. 이런 과정을 지나면서 우리 삶이 구성된다고 느꼈어요.


항공기의 도어 패널 위에 아르누보적 장식을 더한 ‘For a Moment It Felt Like a Porch Between Two Skies’(2026)

항공기의 도어 패널 위에 아르누보적 장식을 더한 ‘For a Moment It Felt Like a Porch Between Two Skies’(2026)

실제 항공기 부품을 작업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먼저 작업을 구상하고 필요한 부분을 찾는지

독일에는 퇴역한 비행기의 부품을 파는 곳이 많아요. 제가 뮌헨에서 작업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죠. 어떤 부분을 작업에 활용하는지는 직관적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젠가 어떤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보기 전까지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다”고요. 많이 찾아보지 않으면 어떤 게 제 작업에 필요할지 알 수 없어요. 문이나 창문, 비행기 날개 부분 등 작업에 필요한 큰 카테고리는 있죠. 그런데 비행기의 거대한 구조보다 그것이 가진 작은 일부를 통해 다른 것을 보여주려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비행기 날개에 ‘페어링’이라는 공기역학적으로 꼭 필요한 부분이 있어요. 약 2.5m 되는 장치를 구했는데, 왠지 고래를 보는 것 같았어요. 실재하는 건 알겠는데 전체를 보기는 어려운 존재 말이에요. 이걸 직접 만지면서 작업하다 보니 표면의 스크래치나 변색이 실제로 비행했던 존재라는 점과 시간의 축적, 역사성 같은 게 함께 보이더라고요. 박물관에서 공룡 뼈를 보는 것 같다고 할까요? 이렇게 부분부분에 깃든 의미를 제 언어로 풀어내는 거죠.


정말 흥미로워요. 이동과 유동성을 큰 축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겠습니다

맞아요. 작업을 전개하면서 공기역학에 관해 공부를 많이 하게 돼요. 아르누보 같은 미술 사조도 차용하지만, 실제 데이터와 그래프도 활용하죠. 이 역시 일종의 풍경이잖아요. 공기 흐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도 하고요. 이렇게 데이터화된 풍경을 샌딩하고 콜라주한 유리 작업을 전개하고 있어요. 지난해에 선보인 ‘A Horizon Never Touches Ground’가 대표적이죠. 비행기 부품에 스테인드글라스와 공기역학 그래프를 더한 작업이에요. 이를 통해 안과 밖은 물론, 움직임과 정지 사이의 끊임없는 전이를 표현했습니다.


‘Under the reading Light’(2026).

‘Under the reading Light’(2026).

공항과 기내는 여행 혹은 이동에 대한 설렘 등 다양한 감정이 발생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1년에 한 번씩 꼭 왔다 가야 하니까 저에겐 이동이 일이 됐어요. 비행시간은 어떻게 보면 외부와 단절된, 자극 없는 시간이기 때문에 오히려 질문이 생겨요.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같은 것이요. 기내에서 내리면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가진 곳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VR이나 AR 장치를 끼고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처럼 비행 역시 또 다른 리얼리티로 가기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뮌헨이든, 서울이든, 뉴욕이든 상관없이 공항은 다 비슷한 장소인 것 같아요. 장소성이 사라진, 그야말로 어디도 아닌 곳(Nowhere)이자 어디든 될 수 있는 곳(Everywhere)이에요. 그런 점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다니고 있어요.


항공기의 도어 패널 위에 아르누보적 장식을 더한 ‘For a Moment It Felt Like a Porch Between Two Skies’(2026)

항공기의 도어 패널 위에 아르누보적 장식을 더한 ‘For a Moment It Felt Like a Porch Between Two Skies’(2026)

이번 P21의 전시 〈Holding Lounge〉에 관해 얘기해 볼게요. 제목에 어떤 의미를 담았나요

전시를 앞두고 공항 라운지에 대해 검색해 봤어요. 혹시 크라잉 라운지(Crying Lounge)라는 곳이 있다는 걸 아나요? 정말 각양각색의 라운지가 있더군요. 전시 제목으로 삼은 홀딩 라운지는 여행 도중 목적지를 잃은 사람들이 머무르며 기다리는 공간이에요. ‘홀딩’이라는 의미가 어떤 것을 잡고 놔주지 않는 상태로 인식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시 공간에 우리가 머문 것 같지만 잡혀 있을 수도 있다는 다층적인 의미를 담았어요. 그래서 전시장 입구에 희미하게 깜빡이는 작품 ‘The Exit Sign Kept Blinking in the Long Delay of Departure’를 설치했습니다. 출구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상태를 보여주고 싶었죠.


전시장 중앙에 놓인 ‘The Skin Remembers the Air’의 존재감도 상당합니다. 강조하고 싶은 작품 중 하나일까요

맞습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기체에는 우리가 이동한 역사와 시간성이 담겨 있어요. 자연사박물관에 가면 공룡처럼 지난 시대의 생물 화석이 매달려 전시돼 있는 걸 볼 수 있잖아요. 그처럼 전시장 중앙에 매달아서 연출했어요. 운송에도 우여곡절이 있었던 작품입니다. 작품을 모두 직접 패킹해 비행기로 운송했는데, 두 개의 박스 중 하나가 없어진 거예요. 여기저기 알아보니 후속 비행기로 왔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작품이 ‘홀딩’됐다가 찾았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전시명과 어울리는 것도 같아요.


기체의 날개와 스테인드글라스, 알루미늄을 사용한 ‘The Skin Remembers the Air’(2026)의 디테일.

기체의 날개와 스테인드글라스, 알루미늄을 사용한 ‘The Skin Remembers the Air’(2026)의 디테일.

작가님의 전시는 어떤 면에서 꽤 연극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화이트 큐브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데 대한 고민이 늘 있어요. 아무래도 제 작업을 그냥 흰 공간에 놓았을 때 어떤 괴리감이 생기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전 베를린 전시에서도 실제 비행기의 벽을 모델링한 아치 구조물을 활용했죠. 이번 전시에서도 바닥을 푸른색 카펫으로 깔아 기내와 대기실 같은 중간 공간을 연출했어요. 맥락을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건축적 요소는 중요한 것 같아요.


‘In the Morning I Wish You a Good Night’ (2026).

‘In the Morning I Wish You a Good Night’ (2026).

이번 전시에서 관람자들이 ‘홀딩의 순간’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까요

〈Holding Lounge〉를 통해 말하려는 ‘사이(In-Between)’는 어떻게 보면 기다림과 연관이 있어요. 저는 이 시간을 단순히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좀 더 사적인 시간으로 바라보고 싶어요. 우리는 흔히 기다리는 시간을 ‘킬링 타임’이라고 하잖아요. 저는 이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어떤 면에서는 수동적으로 들리거든요. 그래서 기다리지만 마냥 흘려보내기에는 아까운 시간에 대해 생각해요. 관람자들도 전시장을 거닐며 작품을 하나씩 마주하는 순간, 이렇게 겹쳐지는 의미나 오묘한 지점을 발견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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