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십여년 간 불법사금융은 죽지 않았다. 다만 늘 새 얼굴을 골라 살아남았을 뿐이다. 전단지와 명함 탈을 쓴 불법사금융은 문자와 인터넷 광고를 거쳐, 이제 메신저와 익명 계정의 얼굴로 숨어들었다. 시장은 바뀌었지만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제도권 금융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절박함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가장 비싼 값으로 거래한다는 점이다.
지금 정부는 불법사금융과의 전면전에 나서고 있다. 범정부 TF를 꾸리고, 수사·금융·통신 당국과 지자체까지 묶어 계좌 차단, 원스톱 피해구제, 채무자대리인 지원, 예방대출 확대를 동시에 밀어붙이고 있다. 말 그대로 선언의 단계를 넘어 제도가 실제 현장에 닿을 수 있느냐를 가르는 과도기의 초입에 서 있다.
본보는 <불사금의 뿌리> 기획을 통해 한국 불법사금융의 뿌리와 변신, 피해자들이 그 문 앞까지 밀려나는 구조, 그 주변에 붙어 자란 또 다른 시장, 그리고 국가의 대응이 어디까지 닿고 있는지를 차례로 추적한다. 아울러 불법사금융은 왜 시들지 않았는지, 이번 전면전이 과연 시장의 뿌리까지 흔들 수 있을지 묻는다. 불사금의>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불법사금융 피해자를 향한 세상의 시선은 대체로 냉담하다. “위험한 줄 알면서 왜 그런 돈을 빌렸느냐”는 훈계조의 말이 먼저 따라붙는다. 하지만 10년 넘게 채무 상담 현장을 지켜온 롤링주빌리 유순덕 이사의 시선은 다르다.
롤링주빌리는 장기·악성채무 문제 해결과 채무자 회복 지원에 힘써온 비영리단체다. 이른바 ‘주빌리은행’으로 불리며 알려진 시민사회의 채무 탕감 운동과도 맞닿아 있는 조직으로, 빚에 짓눌린 이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상담과 지원, 제도 개선 활동을 이어왔다.
유 이사의 눈에 불법사금융은 개인의 실수로 벌어진 돌발적 사고가 아니다.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마지막으로 내몰리는 구조적 막다른 골목에 가깝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다 압니다. 하지만 오늘을 버틸 수 없기에 내일을 가불하는 겁니다”
유 이사가 상담 현장에서 반복해 마주한 얼굴은 ‘무모한 선택을 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끝까지 버티다 더는 계산이 어려운 지점까지 몰린 사람들이었다. 당장 막아야 할 병원비와 생활비, 카드값과 연체 위기 앞에서 법적 위험이나 미래의 책임은 뒤로 밀려난다.
그는 불법사금융의 핵심을 무지가 아니라 절박함에서 찾는다. 평온한 상태에선 누구나 경계할 계약도, 벼랑 끝에서는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무지’가 아니라 ‘축출’...제도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
이 같은 진단은 지난해 출범한 불법사금융피해자지원센터, 이른바 ‘불불센터’의 자료와도 맞닿아 있다. 롤링주빌리와 금융소비자연대회의 등이 함께 운영하는 불불센터는 출범 1년 동안 피해자 160명을 접수했고, 이 가운데 70명을 심층 상담했다.
그 과정에서 확인된 사채 이용 건수는 총 1197건, 1인당 평균 17.1건이었다. 불법 전화번호 150개, 불법 계좌 504개도 포착됐다. 한 사람의 절박함이 얼마나 많은 번호와 계좌를 거쳐 파편화되는지 보여주는 수치다. 자료는 불법사금융이 더는 일부의 일탈적 선택이 아니라, 일상 가까이 파고든 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유 이사는 최근 금융당국과 수사기관의 태도 변화를 현장에서 분명히 체감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 변화의 본질을 법 조문의 신설이나 정책 문구의 변화에서 찾지는 않았다.
과거에도 불법 대부와 불법 추심을 규율하는 법은 있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텔레그램, 카카오톡, 대포통장, 차명 계좌를 활용하는 업자들을 사실상 잡기 어렵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기관을 찾아가도 돌아오는 것은 “실질적으로 달라질 것 없다”는 체념이었고, 업자들은 바로 그 공백을 학습하며 시장을 키워왔다는 설명이다.
“법이 없어서 못 잡았던 게 아닙니다. 못 잡는다고 안 잡았던 겁니다”
시장을 팽창시킨 동력은 불법 자체만이 아니었다. 그 불법을 둘러싼 ‘방치의 시간’이 업자들의 배짱을 키웠다. 신고해도 달라질 것이 없고,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쌓일수록 피해자는 신고를 포기하고 업자는 더 노골적으로 움직였다.
최근 정부와 금융당국, 경찰이 계좌 추적과 수사, 피해자 지원을 함께 말하기 시작하면서 업자들의 계산법에도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 유 이사의 진단이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강도보다 지속성이라고 강조했다.
“칼을 뽑았으면 끝까지 휘둘러야 합니다. 일시적인 반짝 캠페인으로 끝나면 업자들은 다시 버티기에 들어갑니다”
시장은 생각보다 빠르게 분위기를 읽는다. 몇 명만 제대로 처벌되고, 몇 개 계좌만 끝까지 추적돼도 업자들 사이에서는 금세 소문이 돈다. 반대로 발표만 크고 집행이 흐지부지되면 피해자들은 다시 신고를 포기하고, 업자들은 곧바로 예전의 계산으로 돌아간다. 유 이사가 ‘집행의 지속성’을 거듭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만 원으로 산 일주일, 대가는 7882%
불법사금융의 늪은 거창한 욕망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출발점은 지극히 평범하고도 절박한 소액 급전이다. 생활비, 병원비, 기존 채무 상환, 당장 이번 주 연체를 막기 위한 돈.
“대부분 ‘이번 주만 넘기자’, ‘오늘만 막자’는 마음으로 들어옵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거액이 아니라 단돈 수십만원입니다”
불불센터 자료에서도 최초 대출금은 100만원 안팎이 가장 많았다. 평균 이용 기간은 7일, 평균 연 환산 이자율은 7882%였다. 문제는 그 짧은 시간을 사는 대가가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점이다.
“10만원을 빌렸는데 일주일 뒤 30만원을 갚으라고 합니다. 그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다시 다른 불법 사채업자의 번호를 누르게 되는 거죠”
첫 번째 채무를 막기 위해 두 번째 대출,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한 세 번째 대출. 그 과정에서 채무는 해결되지 않은 채 건수만 불어난다. 1인당 평균 17.1건이라는 기이한 숫자는 바로 이 ‘시간 가불’의 연쇄가 남긴 흔적이다.
유 이사는 불법사금융을 돈을 빌려주는 시장이라기보다 시간을 파는 시장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 시간이 지나치게 짧고, 대가는 상상을 벗어날 만큼 비싸다는 것이다. 불법사금융은 단순한 고금리 거래를 넘어 생계 위기와 시간 압박을 먹고 자라는 구조다. 오늘 하루를 버티기 위해 당겨 쓴 시간이, 내일과 모레의 삶을 갉아먹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시장이다.
‘평범한’ 피해자들...질문할 권리도 없었다
불법사금융 피해자를 사회 외곽의 특수한 집단으로 치부하는 통념도 자료 앞에서는 힘을 잃는다. 불불센터의 기초상담 자료를 보면 상담자의 77%는 직업이 있었고, 월 소득 200만~300만원 구간이 52%로 가장 많았다. 평균 월소득은 212만원, 30대 이하 비중이 59%였다. 이미 금융권 채무를 보유한 비율은 84%, 평균 금융채무 원금은 1865만원, 소득 대비 상환비율은 53%에 달했다.
이들은 특수한 사람들이 아니라 성실히 일하고, 기존 빚을 감당하며 살아가던 ‘평범한 이웃’이었다. 그러나 작은 경제적 충격 하나에 제도권 금융의 문이 닫히는 순간, 가장 먼저 손을 내미는 곳은 국가가 아니라 불법사금융이었다. 유 이사는 이를 두고 피해자가 ‘사채시장 안으로 들어갔다’기보다, 제도권 바깥으로 밀려난 결과라고 표현했다.
“무지해서 당하는 게 아닙니다. 제정신으로 계산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거죠”
그는 비교적 안정된 직업군을 상대로 조직적으로 접근하던 오래 전 업자들의 사례도 전했다.
약속한 금액보다 적은 돈을 지급하면서도, 훨씬 큰 채무를 보장하는 백지 서류에 서명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여러 사람을 한 공간에 몰아넣고, 질문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분위기 속에서 피해자들은 계약 조건의 불합리함보다 ‘입금 여부’에 매달리게 된다. 결국 불법사금융의 덫은 정보 부족보다 질문할 권리를 빼앗는 압박 속에서 닫힌다는 것이 유 이사의 설명이다.
“심리적 압박을 받으면 합리적인 질문을 할 수가 없어요. 조건이 이상한지 따질 힘보다, 지금 돈을 받을 수 있느냐가 먼저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불법사금융 피해를 단순히 개인의 경솔함이나 무책임으로 환원하는 시선은 현장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평가가 된다. 핵심은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을 지속할 수 없게 만드는 압박의 구조다.
숫자보다 무서운 것, ‘관계의 파괴’
과거의 불법 사채가 골목길 전단지였다면, 오늘날의 불법 사채는 스마트폰을 타고 흐른다. 불불센터 자료에 따르면 피해자의 90% 이상이 SNS 광고, 문자, 메신저 링크, QR코드, 앱 등 비대면 경로를 통해 유입됐다. ‘작업대출’, ‘개인돈’, ‘대환’ 같은 이름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교묘하게 흐린다. 피해자 상당수는 처음부터 자신이 불법사금융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지 못한 채 접근한다. 이후 뒤늦게 개인정보 제공이나 차명 계좌 입금, 협박성 추심 구조 안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유 이사가 본 현장에서 피해자를 가장 먼저 무너뜨리는 것은 이자율이라는 숫자 자체가 아니었다. 바로 추심의 공포였다.
“직장이나 주변 지인에게 알려질 수 있다는 공포가 시작되면, 그건 더 이상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삶과 관계 전체가 인질로 잡히는 겁니다”
실제 상담실을 찾는 이들이 가장 자주 하는 말도 “이자를 깎아달라”가 아니다. “원금만이라도 정리하고 싶다”, “추심만 멈추게 해달라”는 호소에 가깝다. 직장에 연락이 갈 수 있다는 두려움, 가족과 지인에게 채무 사실이 알려질 수 있다는 불안, 평판이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는 피해자의 경제적 기반뿐 아니라 사회적 자아 전체를 흔든다.
다시 일상 속으로...선언보다는 ‘종결의 통로’
유 이사는 불법사금융 대응의 핵심으로 업자 단속과 함께 피해자의 ‘종결 경로’를 꼽았다. 업자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해자가 다시 제도권 안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채무조정 시스템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여러 채무를 장기 분할상환 구조로 전환할 수만 있어도 돌려막기를 멈추고 직장을 유지하면서 갚아갈 수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했다.
“피해자들의 소원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장기로 나눠 갚을 수만 있으면 직장을 지키면서 버틸 수 있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채무조정이 곧 ‘빚 탕감’이나 ‘도덕적 해이’로 소비되는 시선에 대해서도 그는 현실과 거리가 있다고 봤다. 실제 대부분의 조정은 개인의 소득과 재산, 생활 여건을 따져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상환 구조를 다시 짜주는 작업에 가깝고, 그 핵심은 면제가 아니라 복귀라는 것이다.
빚에 눌려 경제활동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보다, 다시 일하고 세금을 내며 살아가게 만드는 편이 사회 전체 비용 측면에서도 훨씬 현실적이라는 설명이다.
“100명 중 몇 명의 도덕적 해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소수 때문에 삶의 의지를 잃은 나머지 사람들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불법사금융 대응은 단속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신고의 문턱을 낮추고, 추심을 끊어내고, 채무를 조정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게 만드는 구조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유 이사가 말한 것도 결국 그 지점이다. 끝내야 하는 것은 빚만이 아니다. 사람을 벼랑 끝에 묶어두는 구조 자체다.
질문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왜 그들은 알면서도 불법사금융에 입문했는가. 유순덕 이사와 불불센터 자료가 보여주는 답은 분명하다. 물러설 곳 없는 이들의 선택지 없는 선택이다.
불법사금융은 무지가 아니라 절박함을 먹고 자란다. 그리고 그 뿌리를 끊기 위해 필요한 것은 형식적 선언이 아니라, 끝까지 쫓아가는 집행의 지속성과 피해자를 다시 제도권 안으로 돌려세울 회복의 통로다.
다음 편에서는 진화한 불법사금융의 잔인한 면면과 함께, 회색지대에서 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이른바 ‘솔루션업체’에 대해 들여다본다.
불법사금융 피해에 노출된 경우 금융감독원(☎1332)에 신고하여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과다채무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에 서민금융진흥원(☎1397) 또는 신용회복위원회(☎1600-5500)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연이율 60% 초과 대부계약은 원금과 이자 모두 무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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