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한국전쟁 참전국들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옆에 조성하는 '감사의 정원'이 5월 준공을 앞두고 있다. 이 사업은 국토교통부가 절차 위반을 이유로 공사 중지를 명령했지만 서울시가 시정 조치를 취하면서 공사가 재개됐으나 시민 의견 수렴 미흡 등으로 적절성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광화문광장에 국가상징공간을 조성하는 것은 그 역사성, 현재적 의미와 함께 미래 세대에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의미에서 충분한 공론화가 전제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특히 6.25 한국 전쟁과 관련해서는 다양하다 못해 상반된 역사적 관점이 제기된 바 있고 그것은 분단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진행형이라 할 것이다.
6.25 전쟁과 미국의 참전 논리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감사의 정원 사업을 통해 6.25 전쟁 참전국 희생에 대한 감사와 대한민국 정체성인 자유와 인류 평화 구현을 상징하는 자유민주주 가치 수호, 희생적 인도주의, 전후 한국의 경제 대국 성장 등을 시각화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6·25 전쟁을 둘러싼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단일한 해석으로 정리될 수 없는 복잡한 역사적 쟁점을 안고 있다.
6·25 전후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대한 평가는 어느 단일한 학파로도 완결되지 않는다. 전통주의와 수정주의, 탈냉전 이후의 새로운 시각까지 학자나 전문가들의 해석이 크게 갈리는 이유는, 이 전쟁이 단순한 남북 전쟁에 그치지 않고 미·소·중의 냉전 대결이 교차하는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여라 관점은 미국의 동기, 전략적 이득을 전혀 다르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서울시가 수도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광화문광장에6·25 전쟁관련 국가상징물을 조성하는 작업은 더 심도 있게 고민해야 했다.
전통주의는 미국의 자유 수호 역할을 강조하지만 미국의 전략적 이기심을 과소평가한다. 수정주의는 미국의 책임을 비판하지만 소련과 북한의 주도적 역할을 과소평가한다. 이 한반도의 비극은 탈냉전 이후의 사료 분석 등을 통해 다양한 사실관계가 확인되고 있지만 여전히 논쟁 중이다.
그러나 분명히 밝혀진 것도 적지 않다. 미국의 한반도 개입은 처음부터 한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냉전 전략 틀 안에서 이루어졌으며 한국전쟁은 미국의 냉전 군사력 재건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고 그런 과정에서 한국은 주체가 아니라 강대국들의 전략 게임판 위의 객체의 역할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6·25 참전을 결정한 미국의 전략적 판단은 ▲ 소련과 공산주의의 확장을 막아야 한다는 것으로 한국이 무너지면 일본과 태평양 노선이 위험해진다는 도미노 이론과 ▲ 미 국익을 우선해 한국의 방어를 통해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민주주의 진영의 리더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하려 했던 것으로 압축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의 참전은 '미국의 국익'과 '한국의 생존'이라는 두 가지 결과를 산출했다는 점이다. 미국의 국가이익 추구라는 전략적 선택이 결과적으로 오늘의 한국을 결과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참전국 청년들이 목숨을 잃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서울시가 6.25 한국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가시화하기 위해 추진하는 국가상징공간 조성사업의 내용물은 국내는 물론 전 세계를 향한 메시지라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대단히 중요하다. 서울시는 특히 세계 최정상을 달리는 K-세대가 창조적인 세계관, 미래관을 가질 수 있도록 균형 잡힌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사실관계나 이미지를 조형물에 담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정 부분만을 부각시키는 것은 과유불급, 지나친 것은 부족함만 못하다는 가르침에 역행하는 것이다.
연합군은 당시 미국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미국의 참전 전후, 그리고 오늘날에도 강조되는 한미동맹을 고려할 때 미국의 한반도 전략의 실체에 대한 가시적 표현도 생략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날 분단상황 속의 한미동맹은 과거의 연장이고 미래의 방향타가 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오늘날 트럼프가 이란전쟁, 베네주엘라 사태 등에서 보여주고 있는 행태는 미국의 법제, 특히 외교국방정책에서 인도주의, 정의보다 미 국익을 우선한다는 PDD-25에 근거한다는 점이고 이의 유사한 형태가 6,25 전쟁 전후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도 적용되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한미동맹의 상징인 주한미군의 위상에 대해 살피면 정전협정이후 북한 대응만을 강조하고 있지만 중국, 소련과 러시아를 상대로 한 세계전략을 수행해 왔고 그런 사실이 미국법에 의해 비밀로 규정되고 한국도 한미동맹의 틀 속에서 동일한 보조를 취해왔다. 그 결과 지난 70여 년 동안 한국 국민은 주한미군의 중국, 소련과 러시아를 상대로 한 세계전략 수행 사실을 모른 상태이고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강대국간 충돌로 인한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을 국민이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주한미군의 비밀주의속 역할이 갖는 국제법과 한국국내법에 의한 문제점도 심각하다. 이런 점을 서울시가 어떻게 광화문 조형물속에 담을지 궁금하다. 이런 점에 유의하면서 근현대사에서 미국의 한반도 정책과 전략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는지 사실관계에 입각해 소개코자 한다.
한미동맹의 진짜 기원: 북한이 아닌 소련과 중국
한미 두 정부 등이 70년 넘게 반복해온 한미동맹에 대한 공식 서사는 '북한 위협에 맞선 방어 동맹'이었다. 그러나 이는 진실의 절반만을 말한다. 미국이 이 동맹에서 얻고자 했던 전략적 이익의 실체, 그리고 그 실체가 한국 국민에게 얼마나 비밀로 가려져 왔는지를 파악하지 않으면, 한미동맹의 불평등한 구조나 필리핀, 일본의 대미관계와의 차이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더 나아가, 동맹이라는 이름 아래 한국과 필리핀, 일본의 주권이 어떻게 상이한 방식으로 조성되어 왔는지 비교 분석하는 것은 현재 진행형인 지정학적 딜레마의 본질을 꿰뚫는 일이다.
미국이 한반도에 전략적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차 대전 종전 이전부터이며 소련의 동북아 진출을 저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만든 전략의 수립으로 구체화되었다. 그것은 일본을 대소 방어를 위한 교두보로, 남한을 최전선 기지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 노림수는 일본에 두 차례의 원폭 투하로 소련의 기세를 꺾고 북위 38도선을 점령경계선으로 만드는 합의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달성했다.
당시 소련의 동북아 투입 군사력은 한반도 전체는 물론 일본 열도 전부를 점령할 정도로 막강했다. 미국은 세계 최초의 초강력 무기 핵무기를 앞세워 소련의 팽창주의를 봉쇄했다. 미국 국무부의 1949년 문서에는 "한반도는 아시아 대륙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유일한 육로"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는 당시 미국의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945년 해방 직후 38선을 경계로 남쪽에는 미군이, 북쪽에는 소련군이 주둔했다. 미국은 일본의 전쟁범죄에 솜방망이 처벌을 하면서 공조직에 대부분 유임시키고 천왕제를 존속시키는 등 일본을 친미화하기 위한 대책을 추진했다. 남한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카스라-테프트 밀약의 연장선상에서 남한을 일본의 식민지로 취급했다. 즉 미군은 점령군으로 남한에 진주해 일제에 복무한 친일세력을 미군정의 하부기구인 행정, 경찰 등의 공조직에 복귀토록 만들어 친미세력으로 전환시켰다.
1947년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가 본격화되면서 미국이 유엔을 앞세워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하는 것 등을 계기로 한반도 분단 체제가 굳어졌다. 단독정부 수립에 대한 반대가 자심해 제주 4.3 항쟁 등으로 폭발하자 미국은 소련의 사주에 의한 폭동이라며 양민학살이 자행되도록 만들었다.
미국은 중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장개석을 지원했지만 실패하자 남한도 중화민국처럼 공산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동북아 방어선에서 남한을 제외한 애치슨라인을 공표해 6·25 전쟁이 발생할 원인의 하나를 만들었다. 애치슨라인을 공표한 이유는 남한 정부군도 장개석군처럼 부패가 심각해 존립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이 발생하자 미국은 남한이 공산화되면 일본이 위험하다고 판단해 유엔 안보리를 통한 다국적군 구성에 착수했다. 당시 안보리는 세 차례 회의를 열어 논의를 했는데 소련 대표가 중국이 안보리 대표를 자유중국 대신 맡아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며 불참해 미국의 제안대로 통과되었다. 스탈린의 모택동이 천하통일의 기세를 올리며 사회주의진영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보고 한반도에서 2차 대전이후 최강 국가가 된 미국과 맞붙어 국력을 소모하는 것이 소련에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유엔은 미국이 모집하는 다국적군이 유엔기를 사용하는 조건을 허용했지만 그 군대는 유엔과 행정적으로 무관하다는 식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그러나 중국군 참전으로 한국 전쟁이 국제전으로 확전되는 과정 등을 거치면서 미국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중국이라는 또 하나의 거대한 공산 세력이 한반도 바로 북쪽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남한을 단순한 완충지대가 아니라 소련·중국 양쪽을 동시에 견제하는 전략적 거점으로 재정의하게 만들었다.
만약 남한이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대륙세력에 넘어간다면, 일본이 위태로워질 것을 미국은 우려했다. 그 결과 미국은 남한을 대륙세력이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것을 저지하는 최전선 기지로 삼는다는 전략을 확립하게 된다. 즉, 남한은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련·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는 지정학적 방패로서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한 것이다.
이승만과 한미동맹
이승만 대통령은 단독정부 수립이후 줄기차게 북진통일을 주장하다가 전쟁 발발이후에도 계속 같은 주장을 하면서 정전협정 체결에 반대했다. 그는 정전협정을 맺고 미군이 철수하면 남한이 공산화된다는 이유를 앞세웠는데 당시 한국군 병력은 유엔군과 동일한 무장을 갖춘 60만 대군이었다.
이승만은 당시 북진통일을 계속 주장하면서 샌프란시스코 방위조약이 미국에 의해 식민지배 배상 문제 등에서 남한이 철저히 배제되는 식으로 추진되는데도 항의하거나 수정을 요구하는 공식 절차를 취하지 않았다. 미국이 일본의 전후 배상 책임을 약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일제 식민지 지배로 가장 큰 피해를 당한 한국 배제하는 것이 필요했고 이를 이승만은 눈감아 준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 첫 단계 마련에 적극 협조한 셈이다.
이승만이 정전협정을 저지하기 위해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극단적 카드를 쓰자 미국은 그를 제거할 쿠데타 계획까지 세웠지만 대안이 없어 백지화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이승만이 제시한 미군을 남한에 영구주둔 시킬 방안을 주목했다.
미국은 정전협정이후 평화협정이 맺어진다 해도 미군이 철수하지 않고 중국,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적이 충족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이승만과 체결한 것이다. 미국이 조약 체결에 동의한 것은 미군을 한국에 영구 주둔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과 함께 한국군의 단독 북진을 막기 위해 한국군에 대한 지휘권을 통제하는 장치를 장악한 것이 핵심이었다.
즉, 미국은 두 가지를 동시에 얻었다. 첫째, 정전협정 이후에도 한반도에 미군을 합법적으로 영구 주둔시킬 법적 근거. 둘째, 이승만의 단독 북진을 막는 통제 장치로서의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미국은 미 본토를 수호하기 위해 중국, 소련을 주한미군이 지근거리에서 견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미국은 그들의 육·해·공군을 한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한국은 이를 허락하게 되어 있는데 이는 단순한 방문이나 훈련을 넘어선, 사실상의 영구 주둔권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무기한 유효하다고 되어 있지만, 필리핀과 일본의 경우 그 기한이 10년으로 되어 있다.
또한 필리핀과 일본의 경우 미국과 군사동맹에 대해 수시로 협의할 수 있게 되어있으나, 한미상호방위조약에는 그런 조항이 없다. 재협상의 계기 자체가 구조적으로 차단돼 있는 상태에서 미국이 원하는 무기를 반입하고 배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면, 일본, 필리핀과 미국의 조약에서는 해당정부간 사전 협의를 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불평등한 조약인 한미동맹의 핵심인 주한미군 주둔 목적인 '대북 방어'는 공식 명분이었고, '대소·대중 견제'가 실질적 목적이었다. 이는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작성된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문서들(NSC-68, NSC-170 등)에서도 명시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이다.
미국의 NSC 문서로 본 한미동맹의 진실
한미동맹의 공식적인 의미 설명은 '북한 위협에 맞선 방어 동맹'이었다. 그러나 냉전 초기 미국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문서들을 검토하면, 이 설명은 진실의 극히 일부만을 말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NSC-68, NSC-170을 비롯한 일련의 문서들은 주한미군과 한반도 정책이 단순히 북한의 남침 저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소련과 중국을 정점으로 하는 공산주의 진영 전체를 봉쇄(Containment)하기 위한 거대한 글로벌 전략의 일환이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 글은 NSC-68과 NSC-170을 중심으로 해당 문서들의 핵심 내용을 상세히 분석하고, 이후 NSC-5XXX 시리즈로 이어지는 전략적 흐름을 종합하며, 이러한 역사적 기원이 2026년 현재의 한미동맹 논의에 미친 영향에 대해 설명한다.
- NSC-68 (1950년 4월): 냉전의 설계도
'미국의 국가 안보 목적과 프로그램'(United States Objectives and Programs for National Security)이라는 정식 제목을 가진 NSC-68은 냉전 시기 미국의 외교·군사 정책을 결정지은 가장 중요한 문건 중 하나이다. 1950년 4월, 한국전쟁 발발 직전에 작성되었으며, 트루먼 행정부의 정책 지침이 되었다.
NSC-68의 근본적 목표는 소련의 팽창주의를 저지하고, 유라시아 대륙이 소련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문서는 소련을 단순한 경쟁국이 아닌, 미국의 '존립에 대한 실존적 위협'으로 규정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미국과 우방국의 군사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할 것을 권고하면서 군사력 증강뿐만 아니라, 동맹국과의 경제적 결속, 심리전, 정보전 등 전방위적 봉쇄 전략을 제안했다. 이를 위해 당시 미국 국방예산의 3~4배 수준으로 증강할 것을 제안했다.
NSC-68은 한국전쟁 발발 직전에 작성되었으며, 한국전쟁은 이 문서가 제안한 '대규모 군비 증강'과 '글로벌 봉쇄'를 현실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950년 6월 북한의 남침은 미국에게 NSC-68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예언적 사건으로 작용했고, 이후 미국은 전 세계적으로 군사 기지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주한미군을 포함한 해외 주둔 미군은 단순히 특정 지역 방어용이 아니라, 소련의 영향력을 격퇴하기 위한 전 세계적 전초기지로서의 성격을 띠게 된다. 즉, 한국은 '미국 본토를 방어하는 최전선'이 아니라, '소련을 봉쇄하는 글로벌 전략의 극동 거점'으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
-NSC-170 (1953년 11월): 휴전 직후의 한반도 전략
한국전쟁 휴전 직후인 1953년 11월에 작성된 NSC-170(공식명: '한국에 관한 미국의 목표와 행동 계획')은 한반도 내 미국의 목표를 구체화하고 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직후, 미국은 더 이상의 전쟁 확대를 원하지 않으면서도 한반도를 공산권에 내줄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문서의 핵심 목표는 한반도를 '공산주의의 추가 팽창을 막는 전략적 보루'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는 '북한 방어'라는 수동적 개념을 넘어, '대중·대소 전진 기지'로서의 적극적 성격을 내포한다. 핵심 내용을 분석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공산주의 지배 저지: 한반도 전체가 공산주의 세력(소련·중국)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다. 문서는 "한반도의 상실은 일본과 대만의 연쇄적 상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둘째, 이승만 정부 통제: NSC-170에는 이승만 정부가 독단적으로 북진 통일을 시도하여 미국을 원치 않는 전쟁(대중국·대소련 전면전)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미국이 한미동맹을 통해 자국 이익을 최우선하는 것을 명백히 한 것으로 동맹의 기본 목표가 불평등한 권력 구조 속에서 초기부터 설계되었음을 보여주는 핵심 증거다.
셋째, 힘의 우위 유지: 미국은 평화적 수단을 통한 통일을 지지하되,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 한국에서 '힘의 우위(Position of Strength)'를 유지하며 공산 진영을 견제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대북 억제'라는 명분을 넘어 '대중·대소 군사 우위 유지'라는 실질 목표를 중시한 것이다.
NSC-170은 정전협정 이후 미국이 한반도에서 철수하지 않고 오히려 장기 주둔의 법적·전략적 근거를 마련한 문서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후 70년간 지속된 주한미군 주둔의 첫 번째 청사진이 이 문서를 통해 제시되었다.
- NSC-5XXX 시리즈 (1950년대 후반~1960년대): 전략의 진화
NSC-68과 NSC-170 이후 작성된 NSC-5817, NSC-6018 등의 문서들도 일관된 흐름을 보인다. NSC-5817(1958년)과 NSC-6018(1960년)은 한국을 일본, 대만,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대중국 포위망'의 핵심 고리로 설정했다. 특히 NSC-5817은 "한반도의 안정은 극동 전체의 안정에 필수적"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를 위해 주한미군의 전술핵 능력을 유지할 것을 권고했다.
이들 문서에서는 주한미군의 역할을 북한 방어에만 국한하지 않고, 극동 지역에서 발생하는 비상사태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이는 2006년 '전략적 유연성' 합의의 냉전기적 기원이라 할 수 있다.
NSC-5XXX 시리즈는 한반도 내 전술핵무기 배치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제공했다. 문서들은 "재래식 전력만으로는 중국의 인력 우위를 상쇄할 수 없다"며 핵우산의 확장을 주장했고, 이는 실제로 1950년대 후반부터 1991년까지 주한미군의 핵무기 배치로 이어졌다.
이상에서 제시된 NSC 문서들을 종합하면, 당시 미국에게 한반도는 '체스판의 한 칸' 과 같았음이 명확해진다. NSC 문서들은 주한미군이 미국의 글로벌 패권 유지와 공산 진영(대소·대중) 견제라는 거대 전략 하에 배치된 핵심 자산이었음을 입증하는 역사적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단순한 정책 문건이 아니라, 실제 군사 배치, 예산 편성, 핵전략 수립의 근거로 기능했다.
더욱 중요한 점은 한국 정부가 이러한 사실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NSC 문서들은 일급비밀(Top Secret)으로 분류되었지만, 한국 정부는 동맹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급급하여 미국의 글로벌 전략에 한국이 도구화되는 현실을 은폐했다. 이는 단순한 정보 부족이 아니라, 의도적 동조로 평가할 수 있다.
70년간 비밀로 운용된 SIOP와 OPLAN:
미국이 냉전기인 1950년대에 만든 세계핵전략인 SIOP(단일통합작전계획)는 냉전기 전지구적 핵전쟁 통합계획으로, 한국 등 동맹국 기지와 전력의 역할까지 포함했다. 한국 내 미군기지는 1960년대 이후 미국 전략사령부(STRATCOM)의 극동 핵공격 작전계획에 편입되어 소련, 중국을 상대로 SIOP의 기지 역할을 담당했다. 주한미군기지 가운데 군산·오산 등의 공군기지가 중국·소련을 감시·정찰하고 유사시 타격할 작전 태세를 유지하면서 활주로에서는 즉각 출동할 수 있는 전폭기가 24시간 대기했다.
냉전기 동안 주한미군이 한국 기지에 전술핵무기를 최대 1천기까지 보유했는데 이는 소련과 중국 타격용이었다. 당시 북한은 비핵국가였기 때문에 전략적 관점에서 핵무기 타격 대상으로는 적절치 않았다.
한국 국민이 '북한 방어'를 위한 것으로 알고 있던 주한미군은, 실제로는 소련과 중국을 상대로 한 전지구적 핵전쟁 계획의 극동 거점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중러와 북한의 군사력이 미 본토에 가하는 위협은 전자 쪽이 훨씬 막대하기 때문에 주한미군 작전의 비중은 중러 쪽이 북한에 비해 수십 배 더 무거웠다고 보아야 한다.
미국은 이러한 전략적 계획을 국가기밀(Top Secret)로 분류했으며, 한국 정부 역시 '한미동맹의 신뢰'를 이유로 존재 여부를 부인하거나 언급을 회피해 왔다. 한국의 언론, 학계도 이를 거의 문제 삼지 않았다. 주한미군의 주한미군의 반국제법적 역할을 미국법에 따라 기밀 관리하고 한국 정부의 정보 접근권을 제한한 것은 점령국과 피점령국 관계라 할 수 있다. 주한미군의 역할이 대북 억제용이라고만 선전·홍보하는 식으로 진실을 은폐하고 부인하는 '전략적 기만술'은 한국 국민을 미국의 이익을 위해 위험에 빠뜨리는 반헌법적 행태라 할 것다.
단일통합작전계획(SIOP)은 미국의 전략핵전력 운용 계획으로, 냉전 시기부터 존재해온 핵전쟁 수행 계획이다. 2003년 이후 SIOP는 OPLAN(운용계획) 8044로 대체되었으며, 2012년에는 OPLAN 8010으로 업데이트되었다.
SIOP 및 후속 계획 OPLAN의 핵심은 핵전력과 재래식 전력의 통합 지휘·통제다. 최근 서해 훈련이 단순한 공중 훈련으로 보이지만, 글로벌 타격 체계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면 OPLAN 체계와의 연관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이 서해상에서의 대규모 공중 훈련이나 경북 성주의 사드 기지 강화는 북한 대응용이라고 발표되지만, 실제로는 중국과 러시아의 항공 및 미사일 자산을 감시하고 억제하는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오늘날 OPLAN의 실행을 책임지는 미국 전략사령부(STRATCOM)다. 주한미군사령관은 인도태평양사령관(INDOPACOM)의 작전통제를 받지만, 핵심 전략자산의 운용에 있어서는 전략사령관의 지침을 따른다.
한·미가 2006년에 합의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공동성명에는 "한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면서도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합의 자체가 주한미군의 대북 임무 이외의 지역 작전 사용 가능성을 공식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 합의의 내용과 함의는 한국 국민에게 충분히 공개되거나 설명되지 않았다. 예컨대, 대만 해협 위기나 남중국해 분쟁 발생 시 주한미군이 개입할 경우, 중국이 주한미군기지인 군산, 오산 등을 공격할 경우 한국은 전쟁에 휘말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부인해온 '한국의 자동참전 조항'이 사실상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의미한다.
중·러는 동해와 서해, 그리고 동중국해를 잇는 해역에서 합동 해상·공중 전략 순찰을 정례화하고 있는데 이는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활동 범위를 제약하려는 의도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은 괌이나 주한미군 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DF-26(둥펑-26) 미사일 배치를 늘리고 있으며, 러시아 역시 극동 지역의 군사력을 강화하며 미국이 유사시 대중·대러 작전에 개입하는 것을 억제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한미군이 한반도를 넘어 중국이나 러시아(과거 소련)를 상대로 실시한 작전 계획인 SIOP와 OPLAN은 냉전 시대부터 현재까지 미국의 글로벌 전략과 한반도 전략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키워드다.
미국 2026년 대중국 견제 강화
2026년 4월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의 성격을 '대중국 견제'로 더욱 노골화하는 것 역시, 주한미군의 역할이 강화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 시기에도 진행되었던 '전략적 유연성'의 확대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동맹에 대한 숨겨진 역사적 사실을 직시할 때,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의 진실을 자국민에게 진실을 알리는 아래와 같은 조치를 해야 할 것이다.
첫째, 한미동맹 속의 미국익 추구를 위한 중국, 러시아를 향한 비밀전략의 존재를 한국 정부가 국민에게 밝히고, 이를 통제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필리핀, 일본과 미국의 사례처럼 동맹 조건을 주권적으로 재협상해야 할 것이다.
셋째, 안보를 위한 주권 양도에 대해 국민적 의사를 물어 자주국으로 나갈 대장정을 시작해야 한다.
NSC-68, NSC-170, 그리고 NSC-5XXX 시리즈는 한미동맹이 단순한 '대북 방어 동맹'이 아니라, 미국의 글로벌 봉쇄 전략을 수행하는 극동 거점으로 설계되었음을 입증한다. 이는 70년 이상 한국 사회에 주입된 한미동맹에 대한 공식 설명 절반 이상이 허구라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트럼프의 등장으로 지구촌은 '신냉전'이라는 이름의 국가이기주의가 팽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26년 4월 현재, 우리는 다시금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한반도는 누구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인가? 그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는 것에서부터, 주권적이고 민주적인 동맹의 재설계는 시작되어야 한다.
결론
서울시가 오는 5월 준공을 목표로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옆에 조성 중인 감사의 정원 사업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가치 수호와 희생적 인도주의를 시각화하겠다고 밝혔다. 6.25 전쟁 참전국에 대한 감사를 표한다는 취지지만, 역사적 사실을 단편적으로 미화하기보다는 한미동맹의 전략적 실체와 냉엄한 국제 관계의 역학을 균형 있게 담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참전이 순수한 시혜적 차원이 아닌, 국가 이기주의와 냉전 전략의 산물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미국의 한반도 개입은 '도미노 이론'에 근거해 일본과 태평양 방어선을 사수하려는 전략적 판단을 최우선시 하는데서 비롯되었다. 한국을 우선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냉전 전략 틀 안에서 미 국익을 위해 이뤄졌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전협정 이후 주한미군은 대북 억지뿐 아니라 중국, 소련·러시아를 겨냥한 세계전략을 수행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미국법에 의해 비밀로 부쳐졌고, 한국 국민들은 지난 70여 년간 주한미군의 글로벌 전략 수행 실체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 대북 방어라는 단일 메시지에 익숙해져 왔다. 한국 정부가 주권자인 국민에게 헌법적 책무를 이행치 않은 것이다. 주한미군의 비밀주의적 역할은 한국의 주권과 국제법, 그리고 한국 국내법상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 따라서 감사의 정원에는 미국의 전략적 필요성이 동맹의 출발점이었음을 명시하는 다층적 기록이 필요하다.
미국은 21세기에 유일한 불평등 조약인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슈퍼갑의 위상을 강요하고 있어 그 정상화가 시급하다. 한미동맹의 핵심인 주한미군의 위상에 대해서도 투명한 접근이 요구된다. 주한미군은 정전 이후 대북 대응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미국의 세계 전략(Global Strategy) 수행이 현재 진행형인 점도 감사의 정원에서 확인되어야 한다.
광화문 조형물이 미래 세대에게 희망적이면서 미래지향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주한미군이 갖는 국제법적 복합성과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등의 실체를 은폐하기보다 공론화의 장으로 끌어내야 할 것이다.
광화문광장은 국가의 상징적 공간이자 미래 세대인 'K-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역사적 현장이다. 특정 관점만을 부각하는 우를 범하기보다, 균형 잡힌 근현대사 인식이 조형물에 투영되어야 한다. 한국이 강대국 전략 게임의 대상에서 벗어나 대등한 파트너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동맹의 냉혹한 실체 또한 직시해야 한다.
서울시는 참전국에 대한 감사의 수사 뒤에 주권 국가의 위상이 가려지지 않도록 해야 하고 동맹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 충족과 민주적 통제의 중요성을 반드시 담아야 한다. 공사 중지 명령과 재개 등 절차적 논란을 겪어온 감사의 정원 사업이, 향후 논란이 증폭되는 갈등의 현장이 아닌 대한민국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역사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References)
U.S. Department of State. (1950–1960).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FRUS), Volumes: 1950 Vol. I (National Security Affairs), 1953 Vol. XV (Korea), 1958 Vol. XVI (Far East). Washington D.C.: U.S. Government Printing Office.
Gaddis, J. L. (1978). "NSC-68 and the Soviet Threat Reconsidered." International Security, 2(4), 164-185.
Hogan, M. J. (1986). "NSC-68 and the National Security State." Diplomatic History, 10(3), 247-262.
Jervis, R. (1980). "The Impact of the Korean War on the Cold War." The Journal of Conflict Resolution, 24(4), 563-592.
Stueck, W. (2004). "The Korean War as International History." Diplomatic History, 28(3), 411-435.
고승우
언론사회학박사
한미일연구소 상임대표
미디어오늘 논설실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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