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이 지난 2일 정치 개혁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요지는 이번 6.3지방선거 때 ▲기초의회 중대선거구제 확대 ▲광역의회 중대선거구제 도입 ▲광역의원 비례 비율 상향을 추진키로 했다. 이번 합의는 민주당을 제외한 친여권 4개 정당의 절박한 요청에 따른 것이다.
먼저 지난 2020년 제8회 지방선거 당시 도입된 기초의회 3~5인 중대선거구제. 그전까지 선거구당 2명만 뽑았던 중선거구제는 거대 양당 '나눠 먹기'라는 지적이 만만찮았다. 당연히 군소정당 지지 민심은 사표(死票)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비판에 3~5인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됐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30곳에 그쳤다. 그래서 4개 당은 확대를 요청했다. 이게 실현되면 당세 신장에 결정적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다 여전히 1명만 뽑는 광역의회의 소선거구제 타파도 숙원이었다. 중대선거구제 도입 시 군소정당 후보도 충분히 당선을 노릴 수 있기 때문. 거대 양당의 철옹성, 광역의회 비례에도 기대를 걸 수 있게 됐다. 현재 광역의회 비례의원 비율은 지역구 의원의 10%. 목표대로 20% 정도로 늘어난다면 말이다.
사실 5개 정당은 표의 등가성이 완전히 보장되는 '민심 그대로 정치'를 실현하자고 이미 약속한 바 있다. 탄핵 국면이던 지난해 2월 '원탁회의 공동선언'에서였다. 그러나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승리, 집권 여당이 된 민주당은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거대 양당 기득권을 누려온 입장에선 자신 몫도 일부 내놓아야 했던 탓이다. 이에 발끈한 4개 정당은 3월 초 약속 이행을 촉구하며 국회 천막 농성에 돌입했다. 급기야 3월 26일엔 '삼보일배'에 나섰다. 지도부가 총출동, 국회 경내를 돌며 압박 강도를 높였던 것. 동조 여론이 비등하자 그제야 민주당은 약속 이행에 나섰다.
물론 4개 정당은 여전히 배가 고프고 불안할 듯하다. 처음 요구에 비하면 절반의 성취에 그친 것. 광역단체장 결선투표, 연동형 비례대표, 광역의회 비례대표 '5% 봉쇄 조항'(총투표수 5% 이상 득표한 정당에만 광역 비례의원 의석 허용) 철폐를 관철하지 못했다. 또한 제1야당 국민의힘의 반대 가능성이 남아 있다. '게임의룰'인 선거제도를 그냥 힘으로 밀어붙이기에 역풍도 우려되는 탓이다. 그래도 5개 정당은 오는 10일까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다는 방침이다. '풀뿌리 민주주의' 지방자치. 이렇게만 돼도 또 하나의 개혁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고개가 갸웃해진다. 제대로 된 지방자치를 위해 가장 먼저 꼽혔던 과제가 보이지 않기 때문. 바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회의 정당 공천제 폐지다. 끝까지 박빙의 승부가 펼쳐졌던 지난 2012년 대선.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나란히 정치 쇄신으로 내놓은 공약이었다. 그 이유는 도입 취지와는 정반대의 현실이었다. 함량 미달 후보를 걸러내고 책임정치를 목적으로 도입된 정당 공천제. 이게 오히려 풀뿌리 민주주의를 죽이는 만악의 근원쯤으로 여겨진 것이다. 실제 공천제실시 이후 지방자치는 철저히 중앙정치에 예속되고 말았다. 시·군·구 의원은 물론 시장, 구청장, 군수까지 전부 지역 '국회의원 바라기'가 된 것. 자신들의 정치 목숨줄을 쥔 탓이다. 이 와중에 생활 밀착 행정이 뒷전으로 밀리는 건 다반사였다.
특히 지역 구도가 공고한 영·호남에선 '공천장=당선증'인 상황. 더욱더 목을 맬 수밖에 없었다. 선거철이 돼도 지역 의제는 실종됐다. 투표를 통한 유권자 검증은 언감생심. "의원님"이 일방적으로 '픽 한' 후보를 놓고 깜깜이 투표가 벌어지곤 했다. 더 큰 문제는 돈 공천과 이에 따른 악순환이다. 주민 선택보다 더 중요한 게 지역과 중앙당 실력자의 의중. 불법 정치자금을 건네고 공천을 받는 거래가 횡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목돈을 갖다 바치고 지방 권력을 움켜쥔 시장, 군수와 시의원, 구의원들. 이젠 자기 본전 찾기를 위해 자치권을 '엿 바꿔' 먹는 부패사슬을 만들었다.
지난 2006~2010년의 민선 4기가 대표적 사례. 기초단체장 230명 중 절반가량인 110명이 비리 혐의로 기소됐다. 이중 약 20%인 45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런 현실에 질타가 쏟아지자 나온 게 2012년 대선의 '기초단체 정당 공천제 폐지' 공약이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자마자 없던 일이 돼버렸다. 여당 새누리당이 후보자 난립, 위헌 가능성을 들어 공약을 파기했다. 마지못한 듯 민주당도 가세했다.
이후 여야 누구도 이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당공천의 폐해는 절로 다 사라졌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얼마 전까지 집권 여당 원내대표로 위세를 떨쳤던 김병기 의원. 민주당을 자진 탈당한 뒤 경찰 수사를 받는 신세가 됐다. 그 결정적 이유가 공천헌금 의혹이었다. 지역 동작구 의회 의원들에게 거액을 받았다가 돌려준 혐의다. 더 큰 파장을 낳았던 당사자는 강선우 의원. 서울시의원 공천을 미끼로 1억 원을 받았던 게 들통나 역시 민주당을 탈당했다. 구속을 면치 못한 뒤 지금 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도 오십보백보다. 이번 지선의 당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은 조정훈 의원. 지역 구의회 의원들과 시의원으로부터 매달 돈을 걷은 혐의로 용의선상에 올랐다. 여당이었던 지난 2023년. 당 소속 하영제 의원이 전 사천시장 등으로부터 거액을 받았다가 구속됐다. 지난해 대법원에서 징역형이 최종 확정됐다. 최근 1년 사이만 살펴도 이 정도다.
정당공천 폐지 공약이 물거품이 된 지 12년. 그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폐해 사례는 더 많다. 그런데 이 문제는 이번 지선 개혁안엔 왜 거론조차 되지 않았을까. 민주당을 종용, 선거 룰 변경 합의를 이룬 4개 정당. 그들로선 정당공천 폐지는 사실 '딴나라 얘기'였다. 주로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한 탓에 지역 조직은 전무한 상태. 여기다 거대 양당 나눠 먹기 구조의 지방선거. 어떻게든 이를 깨고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게 더 급했던 탓이다.
결국 민주당, 국힘 양당의 기득권이 문제였다. 지역을 줄 세워 공고한 조직을 유지해 준 정당공천. 자진해서 포기할 리 만무하다. 그러나 지방분권과 지방 우선을 강조해 온 이재명 정부. 정말 진정성이 있다면, 민주당이 앞장설 순 없을까. "지방을 중앙정치의 들러리로 세우는 정치부터 타파하겠다." 사실 이런 기대가 부질없다는 걸 잘 안다. 한때 앞장서 외쳤던 '귀책 사유 재·보선 무공천 약속'. 너무나 당연한 이것마저 이번 재·보선 판엔 쑥 들어간 상황이니 말이다. 그래도 이렇게 칼럼이라도 남기는 이유는 분명하다. 올바른 지방자치를 위한 개혁 요구가 이대로 끝나선 절대 안 되기 때문이다.
차재원
폴리뉴스 칼럼니스트
부산가톨릭대학교 특임교수(현)
국회부의장 비서실장(전)
육군미래자문위원(전)
폴리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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