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한정용 기자] 중동발 나프타 수급난이 본격화되며 유통 및 식품가에서 소비되는 주요 포장재 가격에도 충격이 일고 있다.
필름·파우치·용기류 등 주요 품목에서 10%가 넘는 단가 인상이 불가피해졌지만, 정부의 제품 가격 인하 압박으로 소비자가 인상은 어려운 실정이다.
유통 현장에서는 내수 침체에 맞물린 악재 속 기업들의 부담 완화를 위한 제품 가격 현실화 등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6일 정부에 따르면 지난달 27일부터 5개월간 나프타 수출 제한과 매점매석 금지, 수출 제한 물량의 내수 전환 등을 담은 수급안정 조치에 들어갔지만, 현장에서는 포장재 단가 상승과 물량 확보 부담이 동시에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동 전쟁 여파로 나프타 수급 차질이 현실화됨에 따라 식품 포장재에 쓰이는 필름·파우치·용기류 등의 원가 부담이 커진 것이다.
식품업계에서 포장재는 제품군 전반에 폭넓게 들어간다. 라면 봉지와 과자 포장지, 레토르트 파우치, 음료 페트병과 뚜껑, 트레이 등이 대표적이다. 비닐과 필름 포장 비중이 높은 라면, 과자, 빙과류, 냉동식품 등은 영향이 더 빠르게 나타날 수 있다. 밀가루나 설탕 등 일부 원재료 가격이 안정되더라도 포장재 비용이 오르면 전체 제조 원가가 함께 상승하는 구조다.
식품 기업들에 따르면 이미 일부 포장재의 납품단가가 10% 이상 인상됐다.
업계는 기존 재고가 소진되는 5월을 1차 고비로 보고 있다. 선계약 물량 등으로 버티고 있으나 원가 방어 여력이 길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재고가 바닥나는 시점이 다가올수록 비용 부담은 더욱 명확해질 전망이다.
포장재 수급 불안은 단순한 비용 상승을 넘어 기업의 수익성과 제품 출고 안정성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5월을 기점으로 재고 물량이 바닥나면 원가 압박은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날 전망이다. 단기적인 출고 지원을 넘어 근본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식품산업협회 관계자는 “지금은 포장재 단가 문제보다 재고가 떨어지기 전에 물량을 확보해 제때 출고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포장재 업체 부담도 일정 부분 감수하면서 일단 판매가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는 데 업계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현장에서는 단가 부담을 줄이는 문제보다 제품을 제때 내보낼 수 있는 출고 유지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와 소비 침체가 맞물리며 당장 제품 가격을 올리기 어려운 데다 생산과 판매망을 끊기지 않게 유지하는 일이 더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는 설명이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나프타 원료 공급은 개별 기업에 맡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고 정부가 나서서 메워야 하는 부분”이라며 “단기 대응에 그치지 말고 공급망 다변화와 비축 같은 대책을 외교·통상 전략 안에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범부처 차원의 물가 안정 기조를 유지하며 식품업계를 대상으로 가격 인상 자제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할당관세 확대와 할인 지원금 투입 등 가용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이러한 ‘결과 통제형’ 정책이 기업의 기초 체력을 갉아먹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원가 비중이 급등한 포장재 단가 인상분을 기업이 온전히 떠안으면서 수익성이 악화되는 ‘수익성 쇼크’가 가시화되고 있다. 피해는 단순히 영업이익 감소에 그치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원가 압박을 이기지 못한 기업들이 R&D 투자를 축소하거나 설비 도입을 미루면서 장기적인 K푸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최악의 경우 비용 절감을 위해 저가 원료로 대체하거나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이 고착화되며 소비자 후생이 도리어 감소하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제품 가격 변동 없이 용량만 줄여 가격 인상 효과를 노리는 판매 방식을 뜻한다.
정부가 판매가라는 숫자에만 매몰된 상황으로 인해 공급망 충격에 노출된 기업들의 충격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는 일방적인 인내 요구 대신 물류비 세액 공제나 수입선 다변화를 위한 정책 자금 지원 등 비용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실무적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원자재 수급난을 개별 기업 차원에서 풀어내기에는 힘들다는 의견도 나온다. 포장재 원료 부족과 공급망 차질은 단기적으로 기업이 해결할 수준을 넘어서는 문제인 만큼 정부가 원료 확보와 수입선 다변화, 비축 체계 정비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 역시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아직 중동발 리스크가 종식되지 않은 시점에서 즉각적인 대응은 어렵지만 현실적인 후속 대책 마련을 위해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나프타 사안은 산업통상자원부 등 유관부처의 소관 업무와 맞물려 있어 농식품부가 구체적인 대책을 발표하기에는 아직 이른 측면이 있다”며 “다만 식품업계의 어려움을 고려해 향후 추경이나 긴급 지원책이 논의되는 시점에 맞춰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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