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이 광고·홍보 업무 전반에 깊숙이 침투하면서 국내 광고업계의 인력 구조 재편이 가속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탄탄한 매출 기반을 갖춘 대기업 계열 광고대행사(인하우스) 30대 젊은 팀장급 인력까지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되는 등 고용 불안이 현실화되는 모습이다. 관련업계 안팎에선 AI가 단순한 보조 도구를 넘어 기획과 실행의 핵심 도구(tool)로 부상함에 따라 업계 전반의 인력 감축 바람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기획부터 카피라이팅까지 뚝딱…30대 팀장도 못 피한 AI발(發) 감원 칼바람
국내 한 대기업 계열 광고대행사 I사에 재직 중인 A씨는 최근 사내에서 벌어진 자진 퇴사 과정을 목격한 후 고민이 부쩍 많아졌다. 그동안 회사 내 일부 부서는 프로젝트 팀제로 운영돼 왔는데 성과가 미흡한 팀은 즉각 해체되고 해당 팀장에게는 어떠한 업무도 부여되지 않았다. 결국 '책상만 지키게 하는' 식의 조치에 견디지 못한 30대 중·후반의 젊은 팀장들은 자진 퇴사를 선택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벌써 수 명의 팀장이 비슷한 과정 끝에 퇴사를 했다. 과거 40~50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구조조정 방식이 한창 일할 나이인 30대 관리직에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탓에 현장 실무자들이 느끼는 고용 불안의 강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A씨는 "현업에서 클로드(Claude) 등 생성형 AI 활용도가 매우 높고 회사 차원에서도 AI 프로그램 활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며 "AI가 인력을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직원들 사이에서 언제든 내 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커지는 고용 불안에 일찌감치 다른 일을 알아보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A씨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이직을 선택하는 동료들도 부쩍 늘었다"며 "우리 부서에서도 최근 1년 사이 여러 명이 타 기업으로 이직했다"고 귀띔했다.
AI발(發) 구조조정 움직임은 특정 기업을 넘어 광고·홍보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대기업 계열 광고대행사 D사에 재직 중인 B씨는 "대부분의 업체들이 AI 도입에 따른 인력 효율화에 집중하면서 신규 채용문이 사실상 닫힌 상황이다"며 "그나마 발생하는 결원도 공채보다는 전 직장 동료 등을 통한 인맥 위주의 경력직 수시 채용으로 채워지는 추세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 동료들 중 생존을 위해 아예 직무 자체를 전환하는 인원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AI발(發) 구조조정 움직임이 광고·홍보업계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이유는 모든 업무가 디지털 기반으로 이뤄지는데다 AI 기술이 창의적 영역까지 침범할 정도로 고도화됐기 때문이다. 광고업은 제작 공정 대부분이 디지털 환경에서 이루어져 AI 기술을 이식하기에 용이하다. 과거 여러 명의 인력이 며칠간 매달려야 했던 작업을 AI가 단 몇 분 만에 처리하면서 업무 효율이 비약적으로 높아진 점이 기존 인력의 자리까지 위협하게 됐다. 심지어 기획서 작성부터 이미지 생성, 카피라이팅 등 그동안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여겼던 창작 업무에도 AI가 높은 효율성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높은 연봉을 지불하며 전문 인력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과거보다 현저히 낮아졌다.
재계 안팎에서는 지금의 광고·홍보업계의 상황이 현재 사무·관리직 전반으로 확산 중인 구조적 공포의 단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11월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한 'AI와 노동의 공존' 보고서에 따르면 사무·관리직 노동자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8%가 '향후 10년 내 AI로 인한 실직'을 우려하고 있었다. 또 이러한 위기감은 이제 갓 취업한 20대(35.2%)와 대리급 이하 실무자(36.4%)가 부장급 이상 관리자(25.5%)보다 더욱 크게 느끼고 있었다. AI 기술이 숙련된 관리 역량보다 실무 단계의 기능을 먼저 대체할 것이라는 현장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국내 대기업 H사의 인사팀 관계자 C씨는 "과거 리서치나 초안 작성 등 실무자의 업무 영역을 이제는 AI가 단 몇 분 만에 해내고 있다"며 "AI 도입으로 개인의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면서 과거 5명이 하던 업무를 이제는 AI를 다루는 1~2명이 충분히 소화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 경영의 최대 고민이 인건비 효율화인 상황에서 굳이 막대한 비용과 노조리스크를 감내하면서 많은 인력을 유지할 이유가 사라졌다"며 "결국 AI보다 효율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단순 관리 업무에 치중해온 기존 실무진들은 연차와 관계없이 잉여 인력으로 분류돼 구조조정의 타깃이 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전문가들은 AI 시대가 가속화됨에 따라 재계 전반의 인력 감축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며 앞으로는 젊은 세대들도 관리자급 마인드와 역량을 갖춰야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AI 기술이 노동력을 보조하는 수준을 넘어 대체하는 단계에 접어들면서 디지털화가 빠른 업종부터 고용 충격이 가시화되고 있다"며 "이미 소수의 업무 숙련자와 AI만 남게 되는 고용 양극화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이러한 변화는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며 "가령 기존의 업무 역량을 유지하면서 AI 기술까지 능숙하게 다루는 인력에게는 기존의 다른 인력의 임금까지 몰릴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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