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최진승 기자] 지난 3일 국립무형유산원 얼쑤마루에서 열린 ‘무형유산 창작랩’ 쇼케이스 현장은 전통의 확장 가능성을 실험하는 무대였다. 첫 무대를 장식한 퍼포밍 아트 팀 ‘블루찬트(BLUE CHANT)’는 동해안별신굿의 의례적 요소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앨범 'BIRTH: 지극한 나의 의례'를 선보이며 공연 관계자들에게 신선한 울림을 전했다.
'무형유산 창작랩'은 전통예능이 현대적 무대에서 새롭게 살아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창작 프로그램이다. 전승자와 이수자, 아티스트들이 팀을 이뤄 워크숍, 레지던시, 창작 활동 등 단계별 과정을 통해 작품을 발전시킨다. 이날 쇼케이스는 창작랩 프로그램에 선정된 3개 팀이 3개월 간의 공동작업 결과물을 공개하는 자리였다.
첫 번째 팀인 블루찬트는 이번 작업을 “전통 공연 예술 양식에 어떻게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했다. 기존 '세존굿'이 마을 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공적 의례였다면, 블루찬트는 이를 동해안별신굿 이수자 홍효진 무녀 개인의 삶으로 치환했다.
공연의 중심은 홍효진 무녀의 소리와 춤이다. 여기에 사운드 아티스트 이진풍과 작곡가 정원기의 전자음악이 무대의 빈틈을 메운다. 전통적인 무가의 장단과 호흡은 전자음악의 질감과 교차하며 묘한 긴장감을 형성했다.
홍효진의 목소리는 때로는 선명한 노래로, 때로는 지속되는 음의 질감으로 변주되며 관객들을 한 무녀의 내면 세계로 인도했다. 무대 위에서 그녀는 자신이 꿈꿨던 기묘한 태몽들을 읊조린다. 분홍색 강아지, 수영장의 거대한 구렁이, 황금빛으로 빛나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다섯 마리의 말, 그리고 거대한 호랑이가 되어 천지를 울리는 흰 개까지.
무속적 관점에서 이 꿈들은 생명의 징조다. 블루찬트는 무속의 공동체 의식을 개인의 서사로 변용했다. 이날 정원기 작곡가는 “무녀의 말이 노래가 되고, 그 노래가 다시 굿이 되는 연행의 구조를 통해 ‘말문이 열린다’는 것의 의미를 탐구했다”고 말했다. 팀은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굿판의 가변적인 예술 양식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서사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집중했다.
공연 중 단연 눈에 띈 것은 홍효진 무녀의 올 화이트 무복과 무대를 가득 채운 '지화'(흰 종이꽃)였다. 공연 뒤 질의응답 시간에 무복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홍효진 무녀는 “실제 굿판은 화려한 원색이 주를 이루지만, 세존신이 상징하는 본연의 색은 맑고 투명한 흰색”이라며 “종교적 색채를 덜어내 대중에게 편견 없이 다가가기 위해 흑백의 강렬한 대비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무대 위로 꽃비를 내린 3만 송이의 지화는 정연락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정 작가는 “5만 번 이상의 가위질과 망치질로 피워낸 이 꽃들이 무대 위에서 동시대성을 얻길 바랐다”며 "전통 제단의 꽃이 현대적 무대 언어로 변환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음악적 시도 역시 파격적이었다. 블루찬트는 국악기를 배제하고 전자음악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진풍 사운드 아티스트는 “사실 꽹과리 소리가 많이 들어갔지만, 이를 꽹과리스럽지 않게 만드는 물리적 질감 고민에 시간을 쏟았다”고 밝혔다. 홍효진 무녀 또한 “전자음악의 세밀한 박자가 처음엔 생경했지만, 내 목소리를 한 땀 한 땀 베로 짜듯 레이어드한 반주가 매우 신선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블루찬트는 이번 쇼케이스를 바탕으로 2차 제작 계획을 세우고 있다. 최종 목표는 국제 무대다. 정원기 작곡가는 “전자음악 기반의 정규 1집 앨범을 먼저 선보인 후 시노그래피(무대 디자인)를 보강한 정규 공연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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