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후보자 면접을 보며 만세를 외치고 있다. / 뉴스1
김부겸(69) 전 국무총리가 6·3 지방선거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되자, 6년 전 부인 이유미 씨가 당원들에게 '남편을 이해해 달라'며 눈물로 써 내려간 편지가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6일 정치권에 따르면 김 후보는 지난 4일 밤 페이스북에 '아내의 마당에 자두꽃이 피었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어제 아내가 대구로 내려가면서 '목련, 작약, 히아신스 등이 개화를 기다리고 있는 이때, 또 선거 그것도 대구로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미어진다'는 문자를 보내왔다"고 전했다.
이어 "저만 그런지, 세상의 모든 남편이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는 평생 아내에게 죄인이다"고 고백했다.
김 후보가 직접적인 이유를 밝히진 않았지만, 그 배경은 짐작할 수 있다. 젊은 시절엔 학생운동으로 아내를 고생시켰고, 30대부터는 정치인의 아내라는 자리에서 숱한 비난과 설움을 견뎌야 했다. 황혼기에 접어들어 이제야 아내의 소박한 바람을 이뤄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건만, 결국 다시 험난한 정치판으로 뛰어들며 부담을 함께 지게 했다는 것이다.
김부겸 후보 경기 양평 전원주택 마당에 핀 자두꽃. / 김부겸 페이스북
김 후보는 "꽃 가꾸기를 좋아하는 아내의 로망은 마당 있는 집이었는데 2023년 아파트 전세 보증금과 대구 만촌동 아파트를 판 돈으로 경기 양평에 열 평 남짓한 전원주택을 지어 마침내 아내의 꿈을 실현해 줬다"며 "1982년 결혼한 이래 처음 집에 월급(국회의원 세비)을 갖다준 2000년 5월 이후 그토록 흐뭇한 적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런 아내를 대구로 불러들였다는 김 후보는 "서울에서 마지막 인터뷰를 마치고 밤늦게 대구로 내려온 저는 아내를 똑바로 볼 수 없어 눈치만 살폈다"고 거듭 미안함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어제 아내 문자의 뒷부분은 '바늘 가는 데 실 가야지요. 가긴 갑니다. 이후는 하나님이 또 끌어주시겠지요'라는 것이었다"며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김 후보는 진보 계열 정당 정치인 중 보기 드문 TK(대구·경북) 출신이다. 그 까닭에 전국구 명성을 얻었지만, 대구에서 치른 네 번의 선거에서 세 번(총선 1승 2패, 대구시장 1패) 고배를 마셨다. 여기에 큰처남인 이영훈(74) 전 서울대 교수로 인해 적지 않은 정치적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 전 교수는 학생운동권 출신이었지만 이후 '위안부 강제 동원은 없었다'는 극우적 주장을 펼쳐 진보 지지자들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다.
그 여파로 문재인 정부였던 2020년 8월 민주당 전당대회 당 대표 경선에 나섰던 김 후보도 여권 핵심 지지층으로부터 문자 폭탄을 받는 등 홍역을 치렀다.
2016년 4월 13일 20대 총선 대구수성갑 더불어민주당의 김부겸 후보가 부인 이유미 씨, 딸 현수 양(배우 시절 예명 윤세인)과 함께 대구 수성구 만촌동 주민센터에서 투표하고 있다. 김 후보는 31년 만에 민주당 계열 후보로 당선되는 당시로선 기적으로 불렸던 승리를 거뒀다. / 뉴스1
이를 보다 못한 부인 이유미 씨는 그해 8월 3일 민주당원들에게 "김부겸 전 의원의 아내인 이유미입니다"라는 편지를 보내 남편과 자신이 걸어온 길을 이해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큰오빠인 이영훈 교수로 인해 김부겸 의원에 대해 안 좋은 말이 떠돈다는 얘기를 들어 안타까운 마음에 하소연을 드릴까 한다"며 편지를 시작한 이유미 씨는 자신의 집안을 소개했다. 큰오빠 이영훈 교수가 학생운동으로 제적돼 도망 다닌 일, 셋째 오빠의 3년여 옥살이, 남동생의 미국 문화원 폭파 사건 연루와 2년여 수감 등 이른바 '민주화 운동' 집안에서 자랐음을 밝혔다.
이유미 씨는 또 "1979년 가을 셋째 오빠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1982년 초 결혼했다"며 "연애하던 1980년, 서울대 복학생이던 남편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전국에 지명수배됐고, 한국은행 대구지점에 다니던 저는 경찰청 대공분실에 끌려가 밤새 취조당했다"고 돌아봤다.
이어 "1986년 남편이 복학해 서울대 앞에서 백두서점을 운영할 때 만삭이던 저는 좌경용공서적 소지·판매 혐의로 두 차례 연행됐다"고 밝혔다. 당시 인근에서 광장서적을 운영하던 이해찬 전 대표도 함께 연행됐으며, 그의 강한 항의 덕분에 며칠 만에 풀려날 수 있었다고 했다. 1992년에는 '이선실 간첩 사건'에 엮여 남산 안기부로 끌려가는 등 "험난한 시절을 지나왔다"고 회고했다.
이유미 씨는 "친정 오빠로 인해 남편이 곤혹스러운 처지를 당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며 "옛날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더듬어 글을 쓰고 있자니 눈물이 흐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디 정치인 김부겸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고, 여러분이 널리 이해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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