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웅 칼럼]미국산 원유는 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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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칼럼]미국산 원유는 답이 아니다

비즈니스플러스 2026-04-06 08:08:1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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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주필
이용웅 주필

이란 전쟁이 출구를 찾지 못하고 호르무즈 해협은 물론 홍해 뱃길까지 위협받으면서 유가 불안이 심화되고 있다.

현재 국제유가는 서부텍사스유(WTI) 기준 배럴당 약 98~112달러 선에서 등락하고 있으며, 브렌트유는 최근 100달러를 재돌파했다. 이로 인해 한국은 수입 원유 비용과 제조업 원가가 크게 상승해 수십조 원 규모의 추가 부담을 안고 있다. 한국은 원유 수입 의존도가 90% 이상으로, 유가가 10달러 상승하면 연간 약 10조원 이상 추가 부담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같은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들을 향해 미국산 원유 수입 확대를 압박하는 발언을 이어가자 한국을 비롯한 주요 에너지 수입국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한국 정유산업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미국산 원유로의 전환은 기술적·경제적 제약에 가로막힌 복잡한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이 더 많은 미국 에너지를 구매해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여기에는 국제 에너지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전략적 시도와 함께 이번 기회에 무역수지도 개선해보자는 트럼프 특유의 꼼수가 숨겨져 있다. 

미국은 셰일 혁명 이후 세계 최대 산유국 중 하나로 부상했다. 생산되는 원유는 WTI와 같은 경질·저유황유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한국 정유업계가 처한 현실은 미국산 원유를 바로 수입하기에는 부담이 만만치 않다. 국내 정유사들은 수십 년간 중동산 중질유를 기반으로 설계된 설비를 운영해왔다. 중질유는 황 함량이 높고 점도가 높지만, 이를 처리하는 고도화 설비(탈황·분해 설비)에 투자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해온 것이다. 중동산 원유 맞춤형 설비라 할 만하다. 업계 관계자들이 "미국산 원유는 좋은 원유지만, 우리 설비에는 최적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은 원유 한 방울 나지 않으면서 항공유 수출 전 세계 1위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이는 단순히 좋은 기름을 사와서 판 결과가 아니다. 남들이 버리는 값싼 중질유를 수조원대 고도화 설비에 밀어 넣어 고부가가치 항공유로 탈바꿈시킨, 이른바 '정유 연금술'의 승리다.

서부텍사스유(WTI) 가격 추이(배럴당 달러) / 자료=트레이딩이코노믹스
서부텍사스유(WTI) 가격 추이(배럴당 달러) / 자료=트레이딩이코노믹스

만약 트럼프의 압박대로 미국산 경질유 비중을 강제로 늘린다면, 그 피해는 오히려 미국 항공업계가 짊어질 판이다. 미국이 항공유 순수출 국가이기는 하지만 미국 석유협회(API)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와 워싱턴주, 하와이 등 미국 서부 해안지역은 항공유의 85%를 한국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이 원유 생산국이라는 사실은 항공유 공급 능력을 100% 보장하지 않는다. 특히 서부지역은 셰일 원유와 정유 설비 간 미스매치, 환경 규제, 정유소 폐쇄가 겹치며 구조적 공급 부족 상태에 놓여 있고, 이 공백을 한국 정유산업이 메우고 있다. 

2010년대 들어 셰일혁명이 터지면서 미국 땅에서 쏟아져 나온 기름은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너무나 깨끗하고 가벼운 '초경질유'였지만 미국 내 정유소들은 대부분 셰일혁명 이전에 지어졌기 때문에 이를 처리하기에 한계에 직면하고 있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미국산 원유, '5달러의 함정'에 빠진 한국 정유업계

문제는 단순히 원유 종류의 차이가 아니다. 미국산 경질유를 대규모로 처리하려면 정제설비 자체를 바꿔야 한다. 이는 개별 정유사 기준으로도 수조원대 투자에 해당한다. 게다가 경제성도 불확실하다. 원유 도입 비용, 정제 수율, 제품 가격까지 고려하면 단순히 "미국산으로 바꾸자"는 접근은 기업 입장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내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설비를 바꾸는 순간 기존 경쟁력 자체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며 "단기간 내 구조 전환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 압박이 커지는 이유는 지정학적 리스크다. 특히 이란을 둘러싼 긴장 고조와 군사충돌은 원유 공급망 전체를 흔드는 변수다. 어느날 갑자기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 선언을 하더라도 국제 석유시장 환경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은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핵심 요충지다. 만약 이곳이 봉쇄되는 등 정치·군사적 상황에 따라 환경이 급변한다면 한국이 의존하는 중동산 원유 공급은 즉각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이 경우 미국산 원유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력이 없더라도 대안으로 거론될 수 있지만 앞서 언급한 구조적 문제 때문에 '완전 대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 정박 중인 화물선들 / 사진=연합뉴스

비용 문제도 있다. 중동산 원유는 초대형 유조선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직항으로 들어오지만, 미국산(WTI)은 운송 기간이 2배 이상 걸린다. 뿐만 아니라 미국 셰일오일은 생산지에 따라 품질 편차가 커 우리 정제설비의 부식이나 촉매 수명을 단축시킬 위험도 크다는 점이 부담으로 남아 있다. 

중동 유조선 운임은 통상 배럴당 1.5~2.5달러 수준인데 텍사스 등 미국 중부에서 생산되는 원유는 서부해안에서 바로 우리나라에 수출하기 어렵다. 대개 미국 남서부 해안에서 대서양을 건너 희망봉을 도는 코스로는 운임이 4달러,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때는 7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 원유 도입 단계에서부터 이미 배럴당 약 3~5달러의 손해를 안고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이란 정부가 호르무즈해협 통과료로 부과하겠다는 배럴당 1달러라는 추가비용보다 더 비싸다. 

안보를 위해 지불하는 비용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미국에 전략비축유 스와프(swap) 도입 역제안도 필요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산업구조 전환

현재 업계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응은 '혼합전략'이다. 미국산 경질유와 중동산 중질유를 일정 비율로 섞어 사용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20~40% 수준까지 혼합이 가능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보완책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혼합 비율에 따라 정제 효율과 수익성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결국 핵심은 수입선 다변화다. 미국뿐 아니라 러시아, 아프리카, 동남아 등 다양한 공급처를 확보해 특정 지역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장기적으로 가장 중요한 전략이다.

유럽의 경우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을 겪으면서 러시아산 원유 의존을 줄이기 위해 미국산과 아프리카산 원유를 혼합·대체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었다. 그러나 정유설비의 구조적 제약 때문에 완전 대체는 어렵고, LNG(액화천연가스)·재생에너지 확대와 병행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2010년대부터 정유시설 통합과 고도화 설비 개조를 통해 중동산 의존도를 낮추는 실험을 해왔다. 특히 일본 정유사들은 동남아산 및 미국산 경질유 비중을 높이기 위해 기술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석유를 줄이면 곧바로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는 단순한 논리가 확산되는 것 역시 바로 잡아야 한다는 데 있다. 석유는 자동차 연료뿐 아니라 나프타와 같은 석유화학 원료를 생산하는 필수 자원이다. 플라스틱, 의약품, 비료 등 현대산업의 기반이 되는 소재가 석유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석유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으며, 현실적인 해법은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동시에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보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다. 

그래픽=연합뉴스
그래픽=연합뉴스

이란 전쟁과 같은 외생변수에 휘둘리지 않고 한국 경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착화된 중동 의존 구조에서 벗어나 보다 유연한 에너지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함은 물론이다. 

더 나아가 이번 기회에 단순히 원유 수입선 문제를 넘어서 산업구조 자체를 에너지 효율 중심으로 고도화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스마트팩토리, 저탄소 제조공정, 에너지 집약도 감소를 통해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굳이 미국산 원유를 수입해야 한다면 지금은 사문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활용한 에너지 수입 관세 철폐나 전략비축유 스와프(swap) 제도 도입을 역으로 제안할 수도 있다. 

중질유와 경질유를 다함께 처리하기 위한 설비 유연화를 위해서는 민간 투자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정부가 뒷짐만 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수조원의 비용을 기업에게만 떠넘기는 것은 가혹하지 않은가. 이란 석유위기는 어차피 우리 국민 모두가 짊어져야 할 부담이다.  

트럼프식 압박은 단기적으로는 부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 에너지 전략을 재점검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단순히 미국산 원유 수입을 늘리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위기는 반복되지만, 대응 방식은 선택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그 선택의 시점이다. 

이용웅 주필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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