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 조종사서 1억명 구호 식량사령관으로…퍼디슨 WFP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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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조종사서 1억명 구호 식량사령관으로…퍼디슨 WFP 본부장

연합뉴스 2026-04-06 07:30: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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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식량계획 동·남부 아프리카 책임자 인터뷰…"선제 대응 등 혁신적 접근"

정부와 파트너십 강화 위해 첫 방한…외교부·코이카·농식품부 면담, 한국쌀 호평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에릭 퍼디슨 WFP 동남 아프리카지역 본부장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에릭 퍼디슨 WFP 동남 아프리카지역 본부장

(서울=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한국 정부와의 파트너십 강화 등을 위해 최근 방한한 에릭 퍼디슨 유엔세계식량계획(WFP) 동남부 아프리카 지역 본부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소통관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6.4.6 raphael@yna.co.kr

(서울=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조종사로서 아프리카의 험난한 지역 상공을 날며 임무를 수행한 경험은 전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위험한 재난 현장에 식량을 전달하는 데 필요한 위기관리 능력을 갖추게 했어요. 그 덕분에 주요 의사결정도 빠르죠."

서아프리카 가나 출신으로 조종간을 잡고 대륙 내 험지를 누비던 엘리트 군인이 급성 식량 불안 등 인도적 위기에 직면한 동부·남부 아프리카 인구 1억1천600만명의 생존을 책임지는 '식량 사령관'이 돼 대한민국을 처음 찾았다.

척박한 최전선에서 유엔세계식량계획(WFP) 구호 작전을 지휘하는 에릭 퍼디슨 동남부 아프리카 지역 본부장은 긴밀한 협력 관계인 한국 정부와 파트너십을 강화하고자 최근 방한해 외교부,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 등과 면담했다.

색다른 이력의 위기관리 전문가인 퍼디슨 본부장은 지난달 31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소통관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기후 변화와 분쟁, 경제난 등 위기에 처한 아프리카의 현주소와 한국 공적개발원조(ODA)가 만들어낸 실질적인 변화를 소개했다.

DR콩고 수도 킨샤사 인근 이그녜 농장 방문한 에릭 퍼디슨 WFP 본부장 DR콩고 수도 킨샤사 인근 이그녜 농장 방문한 에릭 퍼디슨 WFP 본부장

[WFP 한국사무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공군 VIP 조종사 출신, 인도주의 최전선 물류 사령관 변신

지난해 5월부터 WFP 동남부 아프리카지역 본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그의 이력을 보면 긴급구호 현장 책임자라기보다는 베테랑 항공·물류 전문가에 가깝다.

그는 가나 군사학교(GMA) 졸업 후 공군 장교로 임관했다. 공군 VIP 조종사와 유엔 시에라리온 평화유지군(UNAMSIL) 군사 관측관으로 활약한 그는 미국 연방항공청(FAA) 항공운송 조종사 자격증(ATPL)과 항공운송학 석사를 보유하고 있다.

가나행정대학원 공공행정학, 영국 컴브리아대 국제관계·외교학 등 석사 학위도 갖고 있다.

퍼디슨 본부장은 가나 공군 시절 대통령과 주요 국빈을 수송하는 최정예 부대에 소속됐다. 단순히 기체를 조종하는 것을 넘어 국가원수의 생명과 직결된 고도의 비행 숙련도, 보안 의식 등을 갖춘 소수 베테랑 인재가 발탁된다.

그는 이 업무 과정에서 정밀한 물류 운용 능력과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정무적 감각을 동시에 체득했다고 했다. 군 시절의 경험은 WFP 구호 현장에서도 빛났다.

군을 떠난 후에는 2005년부터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차드·카메룬 등에서 WFP가 운영하는 유엔 인도주의 항공서비스(운하스·UNHAS) 국가 운영 책임자로 일했다.

이후 WFP 본부 항공부 차장과 항공국장, 차드 국가사무소 부소장, 말리 국가사무소장 등을 지내며 분쟁 지역의 물류와 행정을 총괄해 왔다.

퍼디슨 본부장은 "WFP 활동 지역의 75%가 긴급구호·분쟁 지역이라 제한된 시간 내에 최적의 경로로 식량을 전달하는 것은 군사작전만큼 정교한 판단력을 요구한다"며 "군 시절과 운하스 현장에서 단련된 능력이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DR콩고 고마시 국내실향민 캠프 찾은 에릭 퍼디슨 WFP 본부장 DR콩고 고마시 국내실향민 캠프 찾은 에릭 퍼디슨 WFP 본부장

[WFP 한국사무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복합 위기에 불안정성 커져…아프리카 지원 축소도 현실화

현재 동남부 아프리카는 가뭄 등으로 인한 '아프리카의 뿔 지역'(소말리아·에티오피아·케냐 등) 기후 변화, 수단과 DR콩고에서 장기화하는 무력 충돌, 경제난 등이 맞물린 복합 위기를 겪고 있다.

최근 중동 지역 분쟁 격화로 물류비용과 곡물 가격이 폭등해 아프리카 지역 불안정성도 커지고 있다. 인도적 지원 수요는 늘고 있지만, 미국의 원조 삭감 여파 등으로 역대급 자금난을 겪고 있어 아프리카에 대한 지원 축소도 현실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WFP는 영양실조 아동, 임산부와 수유부, 분쟁 지역 피난민 등 취약 계층을 우선해 지원한다. 조기 경보 기반 선제 대응, 비용 절감형 물류 등 방식을 도입해 한정된 자원으로 지원의 효율성을 높이는 혁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퍼디슨 본부장이 현장에서 활용하는 핵심 전략 중 하나는 '선제 대응(AA)'이다.

WFP는 충격 발생 이후 대응하는 전통적인 방식 대신에, 일기예보에 기반해 충격 발생 전에 지원을 제공하는 선제 대응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위성 등을 활용해 재난과 분쟁을 예측하고 인도적 지원 등에 활용한다.

퍼디슨 본부장은 "선제 대응에 1달러를 투자하면 7달러의 효과를 볼 수 있다"며 "2025년 가뭄 예보에 따라 케냐에서 선제 대응을 시행해 조기경보 메시지를 전달하고, 취약 가구에 현금 지원을 제공했다"고 강조했다.

에릭 퍼디슨 WFP 본부장, DR콩고 고마시 국내실향민 캠프 방문 에릭 퍼디슨 WFP 본부장, DR콩고 고마시 국내실향민 캠프 방문

[WFP 한국사무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외교부·농식품부 긴급구호 지원…고품질 한국 쌀 호평

이러한 위기 속에서 아프리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지원이 돋보인다.

퍼디슨 본부장은 "재난·위기 지역 식량 수요 해결뿐만 아니라 재난 이후 무너진 삶의 터전을 회복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회복의 전 과정을 돕는다"고 말했다.

긴급구호 측면에서는 외교부와 농식품부의 역할이 크다.

외교부는 지난해 출범한 인도적 지원 이니셔티브 '리치(REACH)' 프로젝트를 통해 수단 등 분쟁·재난 최전선 국가의 피해 가구에 식량·영양, 디지털 현금 등을 지원했다.

농식품부가 지원한 고품질 한국산 쌀은 지난해 케냐, 에티오피아, 마다가스카르 등 아프리카 6개국에 5만5천t(톤)이 전해졌다. 케냐 카쿠마 난민캠프 등의 난민 가족과 취약 주민들의 밥상을 든든하게 채웠다.

퍼디슨 본부장은 "한국 쌀은 높은 품질과 뛰어난 맛, 매년 같은 시기에 공급되는 예측 가능성이라는 장점이 있다"며 "WFP가 보다 효과적인 지원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한다"고 강조했다.

2026년 3월 나미비아서 열린 한국 쌀 전달식 참석자들 2026년 3월 나미비아서 열린 한국 쌀 전달식 참석자들

[WFP 한국사무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코이카, '분쟁취약국 지원 사업' 등으로 자립역량 강화

식량 배급을 넘어 취약 지역 주민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역량을 높이는 일은 코이카가 전담하고 있다.

WFP는 코이카의 '분쟁취약국 지원 사업'으로 2025∼2027년 3년간 2천200만 달러(약 330억원)를 투입해 '아프리카의 뿔 지역'인 케냐, 소말리아, 남수단에서 회복력 개선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자연재해 조기 경보 시스템 구축·선제 대응, 기후 보험·재난위험금융 등을 통한 안전망 마련, 소규모 농가 지원을 통한 토지 복원·농업 생산성 향상 등이 사업 3대 목표다. 각 나라의 생계 기반과 시장 구조가 달라 접근 방법도 차별화하고 있다.

퍼디슨 본부장은 "케냐는 기후 스마트 농업과 축산 지원을 통한 가치사슬 강화에, 소말리아는 시장 접근성 증대와 협동조합 역량 강화에, 남수단은 공동 식량·빗물 저장시설 등 인프라 구축에 각각 초점을 맞춰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WFP는 이 밖에도 코이카의 지원으로 모잠비크, 탄자니아, 부르키나파소, 르완다, 에티오피아에서 회복력 강화·농업 개발, 영양 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퍼디슨 본부장은 "선도적인 디지털 기술력을 가진 한국은 인도적 지원과 개발협력 분야에서 혁신적인 기술을 통해 기여할 수 있다"며 "민간 부문의 혁신 기술을 선제 대응을 위한 조기경보 시스템이나 식량 취약 지역을 파악하는 시스템 등에 활용하면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지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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