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드] 삼성 오너 일가가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에 대한 약 12조원 규모의 상속세 납부를 이달 마무리한다. 5년에 걸친 분할 납부가 끝나면서 삼성 경영을 짓눌러온 ‘초대형 세금 변수’가 사라지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정점으로 한 ‘뉴삼성’ 체제가 본격화할 것이란 관측이 재계 전반에서 힘을 얻고 있다.
5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회장과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등 유족은 이달 마지막 상속세 분납금을 납부할 예정이다. 이로써 2021년 상속세 신고와 함께 시작된 5년, 6차례의 연부연납 절차가 모두 종료된다. 총 12조원에 달하는 상속세 규모는 국내는 물론 글로벌 기준으로도 전례를 찾기 힘든 수준이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2020년 별세 당시 주식과 부동산, 미술품 등을 포함해 약 26조원 규모의 유산을 남겼고, 이에 따른 상속세가 약 12조원으로 산정됐다. 상속세 부담은 홍라희 명예관장이 3조1천억원으로 가장 컸고, 이재용 회장 2조9천억원, 이부진 사장 2조6천억원, 이서현 사장 2조4천억원 순으로 알려졌다.
막대한 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유족은 연부연납을 택했다. 홍라희 명예관장과 이부진·이서현 사장은 삼성전자·삼성SDS·삼성물산 등 계열사 지분을 단계적으로 매각하고, 처분 신탁 계약 등을 병행하며 재원을 확보해 왔다. 올해 1월에도 홍 명예관장은 삼성전자 주식 1천500만주에 대한 처분 신탁 계약을 체결하는 등 막바지 자금 조달에 나섰다.
반면 이재용 회장은 핵심 계열사 지분을 팔지 않는 전략을 고수했다. 배당금과 개인 신용대출 등을 활용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면서, 삼성물산을 정점으로 한 기존 지배구조를 유지·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이 회장의 삼성전자 보통주 지분은 상속 전 0.70%에서 현재 1.67%로, 삼성물산 지분은 17.48%에서 22.01%로 늘었다. 삼성생명 지분도 0.06%에서 10.44%로 대폭 확대됐다.
재계는 이 같은 지분 변화를 두고 “상속세 부담을 감내하면서도 그룹 지배력을 오히려 강화한 사례”로 평가한다. 이 과정에서 삼성 일가가 그간 축적해온 배당금이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건희 선대회장 별세 이후 삼성가가 계열사들로부터 받은 배당금은 약 4조원 수준으로 추산되며, 생전부터 누적된 배당까지 합치면 6조원 이상이 상속세 재원으로 투입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여기에 삼성전자 등 주요 계열사 주가 상승도 주식 매각·신탁을 통한 자금 조달 부담을 완화한 요인으로 꼽힌다.
상속세 납부와 병행해 이뤄진 대규모 사회 환원도 주목된다. 유족은 2021년 의료 공헌을 위해 1조원을 기부했고, 이건희 선대회장이 수집한 미술품 2만3천여 점을 국가에 기증했다. ‘이건희 컬렉션’으로 불리는 이 기증품은 국내 미술·문화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낳으며 K-미술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속세 졸업은 삼성 경영에 ‘새 출발점’을 제공할 전망이다. 그동안 상속세와 지배구조 정비에 상당한 역량을 투입해야 했던 삼성은 이제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바이오 등 미래 성장동력에 보다 공격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하게 됐다. 특히 이재용 회장이 지난해 사법 리스크에서 상당 부분 벗어난 데 이어, 반도체 사업을 중심으로 실적 개선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상속세 부담까지 사라지면서 경영 환경 전반의 불확실성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분석이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상속세 종료 시점과 사법 리스크 해소, 삼성전자 실적 개선 흐름이 맞물린 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이재용 회장이 ‘뉴삼성’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내놓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이 그동안 언급해 온 ‘초격차 반도체’, AI·바이오 등 미래 산업 비전이 구체적인 투자·M&A 계획으로 이어질지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상속세 납부 완료는 향후 삼성가의 계열 분리 가능성에도 불을 지핀다. 재계에서는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사장이 중장기적으로 독립 경영 기반을 다지는 작업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이부진 사장이 호텔신라 지분 약 1% 매입 계획을 밝힌 것도 이 같은 흐름의 초기 신호로 해석된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사장이 향후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등에서 보유한 지분을 교환하거나 일부 처분 후 매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삼성에서 신세계와 CJ그룹이 분리된 것과 비슷한 과정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상속세라는 굴레에서 벗어난 삼성가가 ‘뉴삼성’ 체제 구축과 계열 분리라는 두 축을 어떻게 조율해 나갈지, 재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Copyright ⓒ 뉴스로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