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한 수’는 늘었지만 ‘나만의 수’는 죽었다…바둑판 이어 캠퍼스도 ‘AI 판박이’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신의 한 수’는 늘었지만 ‘나만의 수’는 죽었다…바둑판 이어 캠퍼스도 ‘AI 판박이’

AI포스트 2026-04-05 16:28:56 신고

3줄요약
영화 '승부'에서 배우 이병헌이 조훈현 국수를, 배우 유아인이 이창호 국수를 연기하고 있다. (사진=넷플릭스)
영화 '승부'에서 배우 이병헌이 조훈현 국수를, 배우 유아인이 이창호 국수를 연기하고 있다. (사진=넷플릭스)

“신의 한 수는 늘었지만, 나만의 기풍(棋風)은 죽었습니다.” AI가 점령한 바둑판의 ‘개성 실종’ 현상이 이제 대학 강의실까지 번지며 사고의 획일화라는 ‘인지적 재앙’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AI포스트 핵심 요약

  • [바둑판에서 사라진 ‘조훈현·이창호’의 혼] AI 추천 수와의 일치율이 승리의 척도가 되면서 기사 고유의 스타일(기풍)이 소멸. 
  • [캠퍼스를 덮친 ‘통계적 평균’의 함정] 예일대 등 명문대 세미나실에서도 AI가 생성한 정제된 논리를 복제하는 현상 확산. 서구적·부유층 관점(WEIRD)에 편향된 AI 알고리즘이 학생들의 독창적 직관과 비판적 사고를 ‘오류’로 취급해 배제.
  • [“불편함이 사유의 근성을 깨운다”] AI 의존에 따른 지적 영토 상실에 대응해 ‘아날로그 회귀’ 본격화. 노트북을 덮고 수동 타자기나 50센트짜리 종이 공책을 도입하고, 즉흥 글쓰기와 구두 시험으로 평가 방식을 전환하는 등 ‘인간 소외’에 대한 저항 확산.

1990년대 대한민국을 뒤흔든 바둑 대국은 한 편의 대서사시였다. ‘전신(戰神·전쟁의 신)’ 조훈현 9단의 화려한 제비 행마와 ‘석불(石佛·돌 부처)’ 이창호 9단의 바위 같은 정수가 충돌할 때, 팬들은 그 속에 담긴 두 기사의 ‘기풍(棋風·바둑 두는 스타일)’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읽었다. 

스승과 제자의 스타일이 극명하게 달랐기에 바둑은 흥행했고, 영화 ‘승부’가 제작될 만큼 드라마틱한 서사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인공지능(AI) ‘알파고’가 등장한 지 10년, 바둑의 정취는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국수(國手) 조훈현 9단은 최근 한 다큐멘터리에서 “기풍이 없어졌다”고 일갈했다.

그는 “과거엔 조훈현류, 이창호류 같은 유행이 있었는데, 지금은 기사들이 AI가 추천하는 수만 두니 누가 뒀는지를 알 수가 없다”며 탄식했다. AI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세계 1위 신진서 9단은 AI와의 착수 유사도가 37.6%에 달한다.  

개성 실종, 캠퍼스까지 전이

바둑의 수준은 ‘신(神)’의 영역에 근접했을지언정, 인간 기사 고유의 ‘개성’은 통계적 정답 아래 함몰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개성의 실종’이 바둑판을 넘어 상아탑의 담장을 넘고 있다는 점이다. 

CNN 보도에 따르면 세계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다는 미국 예일대학교 세미나실. 아만다(가명)라는 학생은 최근 기이한 경험을 했다. 교수님의 날카로운 질문에 한 친구가 노트북을 열심히 두드린 뒤, 마치 준비된 듯 정제된 논리를 쏟아냈다. 

영화 '승부'에서 배우 이병헌이 조훈현 국수를, 배우 김강훈이 이창호 국수를 연기하고 있다. (사진=넷플릭스)
영화 '승부'에서 배우 이병헌이 조훈현 국수를, 배우 김강훈이 이창호 국수를 연기하고 있다. (사진=넷플릭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어지는 자유 토론에서 그 친구는 맥을 추지 못했다. 챗봇이 만들어준 ‘빌려온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아만다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대학 1학년 땐 모두가 각기 다른 접근 방식으로 의견을 냈는데, 지금은 다들 비슷한 말만 한다”며 “자료와 개인적으로 연결되려는 욕구가 사라진 수업은 지루하다”고 토로했다. 

지난 3월 ‘인지과학 동향’에 발표된 논문은 이 현상을 차갑게 진단한다. 대규모 언어 모델(LLM)이 인간의 표현과 추론을 ‘통계적 평균’의 공간으로 몰아넣으며 사고의 획일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WEIRD’한 편향…좁아지는 추론의 영토

왜 AI를 쓰면 목소리가 똑같아질까. AI 모델은 서구적(Western), 교육 수준이 높고(Educated), 산업화되고(Industrialized), 부유하며(Rich), 민주적인(Democratic) 이른바 ‘WEIRD’ 관점을 과도하게 반영하고 있어서다. 여기에 통계적으로 가장 확률이 높은 다음 단어를 예측하는 알고리즘이 더해지니, 문화적 특수성이나 기발한 직관은 ‘오류’로 취급되어 배제된다.

그 결과 대학생들은 더 세련된 문장을 구사할지는 몰라도, 자신만의 고유한 문체와 관점이라는 ‘지적 영토’를 잃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일대 4학년 제시카는 “AI를 쓰기 시작한 이후 고등학교 때 가졌던 직업 윤리와 사유의 근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 같다”고 고백했다. 

다시 ‘연필과 종이’로…불편함이 구원이다

스스로 고뇌하며 문장을 벼려내던 인지적 노력을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외주 준 대가는 혹독하다. 상황이 이쯤 되자, 교육 현장에선 ‘아날로그로의 회귀’가 시작됐다. 예일대 한 철학과 교수와 바드 대학의 한 교수 등은 과제 비중을 줄이고 수업 시간 내 ‘즉흥 글쓰기’나 ‘구두 시험’, ‘발표’ 위주로 평가 방식을 바꾸고 있다. 

텍스트의 요약본만 훑고 온 학생을 가려내기 위해 ‘깜짝 퀴즈’를 내기도 한다. 미국 텍사스 북부의 한 고등학교에서도 비슷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영어 교사 차네아 본드(Chanea Bond)는 생성형 AI는 물론, 문법 교정 도구인 ‘그래머리’조차 교실 밖으로 밀어냈다. 

영화 '승부'에서 배우 이병헌이 조훈현 국수를 연기하고 있다. (사진=넷플릭스)
영화 '승부'에서 배우 이병헌이 조훈현 국수를 연기하고 있다. (사진=넷플릭스)

​그녀는 학생들이 AI가 내놓은 엉터리 해석을 비판 없이 복제하는 모습을 보며, AI가 편리한 도구가 아니라 ‘사고의 퇴화’를 부르는 방해 요소라고 판단했다. 본드 교사는 학생들에게 태블릿을 덮게 하고 단돈 50센트짜리 종이 공책을 나눠주었다. 

“결과는 AI에게, 과정은 인간에게”

바둑 기사가 자신의 기풍을 잃는 것은 곧 자신의 혼을 잃는 것과 같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학생이 AI에 추론을 맡기는 것 역시 자신의 목소리를 기계에 저당 잡히는 일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AI가 우리 삶의 ‘대리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서로의 눈을 맞추며 ‘정답 없는 질문’에 대해 투박하지만 진실한 자신의 언어로 부딪혀야 한다는 제언이다. 바둑판의 기풍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이 무미건조한 승부의 결과뿐이듯, 사유가 사라진 캠퍼스에 남는 것은 알고리즘이 뱉어낸 공허한 메아리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Copyright ⓒ AI포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