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주 더봄] 문어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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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주 더봄] 문어가 온다

여성경제신문 2026-04-05 13:00:00 신고

‘선택할 수 없어. 죽음, 그거 참 곤란하군.’

-양선주

1

 ‘거대한 여덟 개의 다리가 온몸을 꽉 움켜쥐는구나! 이것이 기쁨일까? 슬픔일까? 머리맡에는 큰아들, 왼쪽 어깨 꼭 쥔 며느리, 오른쪽 종아리 붙잡은 것은 큰손주? 그놈은 군에 있는데, 그럼 작은손주? 현우는 고3이라 학원에 있을 텐데. 지금 밤인가? 왜 이리 눈부시지? 안방 불빛은 어둡고 침침한데, 여긴 무척 환하군. 그렇다면 혹시, 병원? 맞군. 마지막으로 정신을 놓은 곳이야. 감기 때문에 큰딸하고 와서, 이대로 주저앉은 모양이야. 약간 어지러웠을 뿐인데, 기억이 혼미해. 그렇다면 이것이 바로 그 문어, 그 죽음의 문어에게 잡힌 것인가? 이대로 가는 건가? 아! 억울하군! 억울해!’

 ‘지금 발목 꽉 잡고 흐느끼는 놈은 누구지? 몹시 시끄럽군. 막 졸음이 몰려오는데, 좀 조용히 하면 편안히 잠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무릎까지 꽉 움켜쥐고 왜 이리 울어대지! 요놈 둘째손녀가 맞군. 여자애가 뭔 힘이 그리 센지, 지방 어디 체대에 다닌다고 했는데, 지난 추석에는 운동한답시고 올라오지도 않던 놈이··· .’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제미나이 나노바나나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제미나이 나노바나나

 ‘웬일로 다 모였네. 무슨 말을 한 놈씩 하는 건가? 잘 들리지 않네. 보청기, 분명 병원 올 때 끼고 온 거 같은데 어디로 간 거지? 가만있자, 저 흰 가운, 의사. 한 군데 좀 서 있지. 어딜 정신없이 돌아다녀. 저 간호사, 누굴 자꾸 불러대지? 어디 정신없어 문어에게 제대로 끌려가겠어!’ 

 ‘진짜 이상한데, 정말 죽을 모양이야. 모두들 정신없이 들락거리고 전부 내 몸뚱이에 들러붙어 훌쩍거리고 난리네. 이제 또 뭐가 필요한가? 아님 이대로 두 눈을 감아야 하나? 죽음이 처음이라 영 갈피를 못 잡겠네. 어라! 아프진 않은데, 굵은 다리가 사지를 점점 휘감는 느낌이야. 근육과 심장이 조여 오네. 무엇이 목까지 치밀어 오르는데, 거대한 줄기가 온몸을 휘감아 버리는 거 같고.’

 ‘이게 바로 인생 마지막에 온다는 그 문어? 여덟 개의 다리로 온몸을 휘감아 어디로 끌고 간다는 그놈, 문어가 오는 것인가? 이상하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은 아니고, 불투명한 안개 같은 것이 자욱이 밀려오는 것 같네. 누군가 나를 향해 두 팔을 쳐들고 커다랗게 휘젓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구지? 저 하얀 무명 치마저고리를 걸친 물체는?’

2        

 ‘맞군, 어머니. 살짝 돌아선 옆모습 어머니와 똑같군. 나를 부르는 거 같은데, 지금 이렇게 누워 있으니···. 게다가 자식 놈들이 문어처럼 온몸을 꽉 붙들고 놓질 않으니 어머니에게 갈 수도 없고. 곧 어머니는 가실 것 같은데, 어머니와 함께 가야 하는데, 이놈들이 놓지를 않네. 내 몸을 꽉 붙들고.’

 ‘이 방법이 맞나? 죽음의 길. 이대로 어머니를 보면서 두 눈을 감아야 하나? 아님 문어에게 잡힌 채, 두 눈만 감으면 어머니에게 가는 건가? 내 생애에 죽음은 처음이라 도통 알 수가 없군. 선택할 수 없어. 죽음, 그거 참 곤란하군.’

 ‘이렇게 짧은 절정이 죽음인가. 삶과는 다르군. 죽음의 길이는 매우 짧아. 문어처럼 몸을 붙잡는 식구들 얼굴 한 번씩 보는 것으로 끝이 나는군. 가족 얼굴 하나씩 호명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하다니. 역시 죽음은 꽃이야. 잠깐 화려하게 피다 재빨리 지는 꽃, 짧은 열정.’

 ‘이제 가슴팍 두 심방 사이, 검은 노을이 쭉 밀려오는구나. 묵직한 줄기가 사지를 휘감는구나. 이것이 바로 죽음, 그 문어가 오는 것. 온몸, 여덟 개의 다리로 휘감아버리는 그 문어가 온다. 나는 이 순간 무엇을 해야 하지? 큰아들에게 한 마디 남겨야 하나. 그냥 이대로 가야 하나. 그들도 나처럼 나의 죽음을 받아들일까?’

 ‘허리 밑으로 힘이 쭉 빠지는구나. 참 기막히네.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힘이 쭉 빠지지. 이놈 검은 문어, 목 바로 밑 쇄골까지 올라와 있네. 양 어깨가 힘이 들어가는군. 이대로 문어를 쭉 마셔야 하나. 아님 이놈이 날 삼키려나. 그렇군! 나는 이대로 두 눈만 감으면 되는군. 어! 어! 입이 자꾸 벌어지네. 이놈, 이제 네가 나에게 들어오는구나.’

3

‘지금 이 기분은 뭐지? 기쁜 건가? 슬픈 건가? 이대로 가는 모양일세. 문어에게 온몸 휘감긴 채. 이제 곧 몸이 문어로 덮이겠지. 여덟 개의 다리로 온몸 휘감아 여길 떠나겠지. 이왕이면 눈 오는 샤갈의 마을로 날아가면 좋으련만, 화가의 그림처럼 말이지.’

 ‘마지막 선택도 내 몫이 아니군. 모든 걸 맡기고 심장의 불이 꺼질 때를 기다려야지. 문어가 입을 닫는 마지막 순간을. 마지막 작별은 누구에게 하나? 큰아들? 손주? 마누라? 나에게 아내가 있었던가? 까마득한 일이군. 먼저 간 마누라 나를 기다리고 있으려나. 기다린다고 했던 것도 같고.’

 ‘아! 정신마저 가물거리는구나. 드디어 나의 영혼도 문어에게 잡히는구나. 이제 나는 온전한 문어가 되는구나.’

 ‘죽음! 이것이 기쁨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지만 오라면 가야지. 문어가 왔으니 가야지. 이대로 문어가 되어 안개처럼 풀어질 것인지. 아님 문어의 기분에 따라 버려질 것인지. 이왕이면 깨끗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지워지면 좋으련만.’

 ‘이제 마지막으로 문어의 검은 입, 석양의 문이 닫히는구나. 마지막, 마음마저 검게 변하는구나. 온전한 무로, 문어가 되는구나. 문어야 가자.'

여성경제신문 양선주 시인·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원
zoo-mouse@hanmail.net


☞미니픽션=아주 짧은 분량 속에 완결된 서사를 담아낸 초소형 소설을 말한다. '한 뼘 소설', '손바닥 소설(掌篇小說)', '플래시 픽션(Flash Fiction)' 등으로도 불리며 주로 설명은 생략하고 상징이나 묘사를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끝맺는다. 짧은 틀 안에 소설적 재미와 철학을 압축해 놓은 '문학의 에스프레소'라고 할 수 있다.  

양선주 시인·작가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대산창작기금을 수혜하며 문단에 데뷔해 시집 <사팔뜨기> 를 출간했다. 건강 문제로 인한 긴 공백기 끝에 2025년 시집 <열렬한 심혈관> , 산문집 <시는 내 곁으로 와 눕고> (공저)를 펴내며 다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재개했다. <소설미학> 에서 동화, <월간문학> 에서 동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장르를 넘나드는 문학적 역량을 펼치고 있으며, 동화책과 동시집 발간을 앞두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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