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우의 도쿄포인트] 에너지 불안 속 한일 협력, 현실적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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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우의 도쿄포인트] 에너지 불안 속 한일 협력, 현실적 논의가 필요하다

포인트경제 2026-04-05 11:31:27 신고

3줄요약

호르무즈 해협 긴장 속 한일 모두 에너지 충격에 노출
원유·LNG·공급망 대응에서 제한적 협력 가능성 주목
정치적 거리와 별개로 현실적 공조 방안 모색 필요

[포인트경제] 중동 정세가 다시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길어지면서 국제 유가가 불안해졌고,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를 실어 나르는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도 커지고 있다. 이 해협은 세계 에너지 운송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이곳에서 문제가 생기면 한국과 일본처럼 에너지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들은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과 일본은 생각보다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두 나라 모두 석유와 가스를 해외에서 들여와야 하고, 특히 중동 지역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중동에서 원유 수송이 막히거나 국제 가격이 크게 오르면 두 나라 모두 산업과 물가에 큰 부담을 안게 된다. 자동차, 반도체, 철강, 석유화학 같은 주요 산업도 에너지 가격에 민감해 충격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태국 방콕 외곽 주유소에 급유 대기 차량이 몰려 있다 /사진=로이터 갈무리(포인트경제) 태국 방콕 외곽 주유소에 급유 대기 차량이 몰려 있다 /사진=로이터 갈무리(포인트경제)

이런 상황에서 한일 협력은 단순한 외교 문제가 아니라 생활과 경제를 지키는 문제로 봐야 한다. 물론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역사 문제가 있고, 그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에너지 위기까지 감정으로만 접근하면 결국 손해를 보는 쪽은 국민과 기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역사 문제는 역사 문제대로 다뤄야 하지만, 당장 닥친 에너지 위기에는 현실적인 대응도 필요하다.

한일이 손을 잡는다고 해서 곧바로 거대한 동맹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필요한 범위 안에서 제한적으로 협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낼 수 있다. 가장 먼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보 공유다. 어느 나라에서 공급이 흔들리고 있는지, 어느 항로가 불안한지, 어떤 원유나 LNG가 부족해질 가능성이 있는지를 서로 빠르게 공유하면 대응 속도도 빨라진다.

가격 불안을 줄이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위기 상황에서는 실제 물량 부족보다도 불안 심리 때문에 가격이 더 크게 오를 때가 많다. 이때 한국과 일본이 각자 따로 움직이며 같은 물량을 두고 경쟁하면 가격은 더 오를 수 있다. 반대로 서로 상황을 조율하면 시장의 혼란을 줄이고 불필요한 경쟁도 피할 수 있다.

산업 피해를 줄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은 둘 다 제조업 비중이 큰 나라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공장 운영비가 늘고, 제품 가격 경쟁력도 약해질 수 있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철강, 화학 산업은 에너지 가격 변화에 민감하다. 두 나라가 어떤 분야가 더 취약한지 함께 살피고 대응책을 나누면 위기 관리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규모의 힘이다. 한국과 일본의 원유 수입량을 단순히 합치면 하루 약 5백만 배럴 수준이 된다. 이는 세계적으로 봐도 매우 큰 규모다. 대략 세계 3위권 수준의 원유 구매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실제로 두 나라가 하나처럼 움직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숫자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필요한 범위에서 공동 대응을 한다면 산유국과의 협상, 운송선 확보, 비상 물량 조달 같은 부분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일 협력이 쉬운 일이라는 뜻은 아니다. 역사 문제와 정치 갈등은 언제든 협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그래서 더더욱 협력의 범위를 넓게 잡기보다 실질적인 분야에 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원유와 LNG 수급 정보 공유, 비상시 비축유 운용 협의, 해운과 보험 문제 대응, 수소와 암모니아 같은 미래 에너지 분야 협력부터 시작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일본 나라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모습 /사진=대한민국 대통령실(포인트경제) 일본 나라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모습 /사진=대한민국 대통령실(포인트경제)

결국 지금 한일 협력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 친하냐’가 아니다. ‘서로 필요한가’가 더 중요하다. 에너지 위기 앞에서는 감정보다 현실을 먼저 봐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같은 아시아의 산업국가로서 비슷한 약점을 가지고 있다. 누가 더 옳고 그르냐를 따지기 전에, 위기 상황에서 손해를 줄일 방법을 찾는 것이 더 시급할 수 있다.

한일 관계를 바라보는 감정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에너지 위기까지 외면할 수는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국민 생활과 산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협력이다. 역사 문제를 잊지 않으면서도 현실적인 협력을 준비하는 것, 그것이 지금 한국이 더 냉정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포인트경제 도쿄 특파원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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