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이란 전쟁과 관련해 협상론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군사 압박과 정권 교체를 병행해야 한다는 강경 해법을 제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1기 당시 외교·안보 정책을 주도했던 핵심 참모였던 그는 현재 트럼프와 결별한 상태로, 공화당 내 대표적인 ‘네오콘(신보수주의)’ 인사로 꼽힌다. 군사력과 억지력을 통해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전통적 매파 시각을 다시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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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턴은 4일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이번 전쟁을 “단순히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여는 문제가 아니라 중동의 지정학적 질서 자체가 걸린 싸움”으로 규정했다. 최근 협상 진전을 이유로 해협 재개 시한을 연장한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에 대해서도 “현실과 동떨어진 승리 선언은 미국의 신뢰도는 산산조각 날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해상 교통 일부가 재개되는 수준에서 전쟁을 마무리하는 것은 전략적 실패라는 판단이다.
그는 협상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론을 드러냈다. 트럼프 행정부가 과거 예멘 후티 반군을 상대로 군사작전을 벌이다가 오만의 중재로 휴전에 들어갔던 사례를 언급하며 “그 결과는 결코 지속되지 않았고, 후티는 다시 공격을 재개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란과 그 대리세력은 필요할 때만 휴전을 유지한다”며 “협상은 지속 가능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볼턴은 이에 따라 미국이 취해야 할 전략으로 군사 압박과 정권 교체를 동시에 추진하는 ‘투트랙 접근’을 제시했다. 그는 “이란이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은 물론 홍해와 바브엘만데브 해협까지 영향력을 확대할 능력을 제거해야 한다”며 군사 작전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핵 및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을 포함한 이슬람 혁명수비대(IRGC)를 계속해서 파괴해야한다”고 덧붙였다.
호르무즈 해협 전략에 대해서도 기존과 다른 접근을 내놨다. 그는 “해협을 점령할 필요는 없다”며 대신 봉쇄 전략을 강조했다. 이란산 원유의 수출을 차단하는 동시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다른 걸프 국가들의 원유는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란의 석유 수출은 전쟁 자금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이를 차단하는 것이 압박의 핵심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핵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강경한 입장을 분명히 했다. 볼턴은 “최근 아라크 중수로와 일부 시설이 타격을 받았지만 여전히 핵과 탄도미사일 관련 인프라가 상당 부분 남아 있다”며 “이란의 핵무기 개발 능력을 완전히 제거할 때까지 군사 작전을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기간에 ‘결정적 타격’을 가하고 철수하는 방식이 아니라, 목표를 계속 확대해 나가는 장기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외교 전략 역시 전면 수정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협상의 대상이 이란이 아니라 중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은 이란 원유의 최대 수요국으로, 호르무즈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국가”라는 점에서 중국을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는 논리다. 볼턴은 시진핑 국가주석을 향해 압박을 강화해 이란이 해협에서 물러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가 이란에 제공하는 군사·경제적 지원을 차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번 전쟁을 지역 분쟁이 아닌 글로벌 에너지 안보 문제로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등 걸프 산유국의 입장을 유럽과 아시아 주요 원유 수입국들(한국, 일본, 인도 등)에 직접 전달함으로써 국제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전쟁의 성격을 ‘지역 충돌’에서 ‘글로벌 공급망 위기’로 재정의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볼턴은 더 나아가 정권 교체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지속적인 군사 공격이 이어질수록 이란 정권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질 것”이라며 “이는 내부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특히 여성 인권 시위, 청년층의 불만, 쿠르드·발루치 등 소수민족 갈등을 언급하며 이란 체제의 내부 취약성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반체제 세력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봤다. 볼턴은 “미국이 특정 정치 세력을 선택할 필요는 없지만, 자금과 조직, 외교적 지원을 통해 이란 국민이 스스로 미래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과거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반군을 지원했던 사례를 언급하며, 이란 반체제 세력을 지원할 특사 임명도 하나의 방안으로 제시했다.
볼턴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유엔 주재 미국대사를 지낸 대표적인 강경 외교·안보 인사다. 트럼프 1기에서는 2018년부터 2019년까지 국가안보보좌관을 맡았지만, 북한·이란 문제를 둘러싼 협상 접근법에서 트럼프와 충돌하며 약 1년 만에 물러났다. 이후 회고록과 공개 발언을 통해 트럼프의 외교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며 사실상 결별한 상태다.
이번 기고에서도 이러한 갈등의 연장선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과 군사 압박을 병행하며 단기 종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과 달리, 볼턴은 “스스로 설정한 시한에 얽매이지 말고 장기적인 전략을 유지해야 한다”며 협상 중심 접근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특히 “현실과 다른 승리 선언은 미국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지적하며 조기 종전론에 경고를 보냈다.
볼턴은 “미국의 힘과 레버리지는 지금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며 “경제적·정치적 압박에 흔들리지 말고 전략적 목표를 끝까지 밀어붙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트럼프는 이 전쟁을 시작했다”며 “이제는 끝까지 완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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