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드] 이란과 미국의 전면전으로 중동 정세가 급격히 악화한 가운데, 한국은행이 오는 10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연 2.50%)를 또다시 동결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다만 물가와 환율 불안이 예상보다 심화할 경우, 올해 하반기 1∼2차례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연합뉴스가 5일 거시경제·금융 전문가 6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임기 만료(20일) 전 마지막으로 열리는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는 동결될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였다. 이 경우 지난해 7·8·10·11월과 올해 1·2월에 이어 7차례 연속 동결이다.
전문가들은 이란 전쟁 여파로 물가와 원·달러 환율의 상방 압력이 커진 반면 성장률 전망은 하향 조정되고 있어, 한은이 금리를 어느 한쪽으로도 쉽게 움직이기 어려운 ‘갇힌 구도’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조영무 NH금융연구소장은 현재 상황을 “인상과 인하를 생각할 수 없고 동결만 가능한 갇힌 상태”라고 표현했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중동 사태로 유가와 환율이 뛰는 동시에 경제 성장률은 하향 조정된다고 하니, 금리를 당장 아래위 어디로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3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2.2% 올랐다. 미국-이란 전쟁으로 석유류 가격이 9.9% 급등해 전체 물가를 0.39%포인트 끌어올렸다. 환율도 2일 기준 원·달러 환율이 1,519.7원까지 치솟으며 1,500원을 훌쩍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물가·환율 환경과 함께, 이미 편성된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추경)과 부동산 시장 불안 요인이 금리 인하를 가로막고 있다고 분석했다.
조 소장은 “환율이 1,500원을 훌쩍 넘었고, 미국이 기준금리를 먼저 낮춰 금리 역전 폭이 줄어든 것도 아니다”라며 “이란 전쟁으로 물가 우려는 2∼3개월 전보다 커진 만큼 한은이 금리를 내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집값 우려도 확실히 해소됐다면 다주택자 대출 연장 불허 등 추가 부동산 대책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유가 급등에도 불구하고 국내 유동성 환경이 여전히 양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은 연간 10억 배럴가량 원유를 수입하기 때문에 유가 상승은 과거 무역수지 적자의 주범이었다”며 “그러나 올해는 반도체 가격 상승이 유가 상승을 압도하면서 고유가에 따른 대외 충격을 상쇄하고도 남는 상태”라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유가 상승에도 금리 인하 필요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안재균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도 “반도체 수출 확대로 당장의 금리 인하 명분은 약해진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정부의 재정정책과의 충돌 우려도 금리 인하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지난달 말 26조2천억원 규모의 추경예산안을 의결하며 경기 방어에 나선 상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추경 규모가 꽤 큰데, 여기에 금리까지 내리면 물가 불안을 부추길 수 있어 인하는 불가능하다”며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사이클은 끝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추경이 올해 성장률을 약 0.2%포인트 끌어올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경기 둔화가 금리 인하를 정당화할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반대로 금리 인상 가능성에 대해서도 당장은 시기상조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유가 급등이 물가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아직 가늠하기 어렵고, 추경 등 정부의 재정지출과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반도체 이외 부문이 여전히 미약한 회복세를 보이는 만큼 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 상승이 일시적 현상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에는 소비와 노동시장이 모두 뜨거워 공급 충격이 수요 견인형 인플레이션으로 확산했지만, 이번에는 수요가 미약하다”며 “한은이 금리 인상으로 대응하기보다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 제어 차원에서 매파적 동결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가 흐름도 ‘급등’ 국면과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 주 실장은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2%였고, 4월과 5월도 2% 중반대에서 멈출 것 같다”며 “이 정도 오름폭이면 금리를 급하게 올릴 이유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조 소장은 “정부가 추경 등으로 경기 충격에 대응하고 있는데, 한은이 금리를 올려 시중 자금을 거둬들일 경우 정부의 재정 지출 효과가 반감될 것”이라며 “(인상은) 한은이 지금 선택할 수 없는 정책”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럼에도 2월 금통위 직전 조사 때와 비교하면, ‘연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점치는 전문가들은 뚜렷이 늘었다. 당시에는 6명 중 2명만이 “경기 부진·지정학적 위험이 커지면 연 1회 올릴 수도 있다”고 답했지만, 이번에는 4명이 연말까지 1∼2회 인상을 예상했다.
장 선임연구위원은 “5∼6월 물가가 상당 폭 오르면 새 한은 총재가 의결문 등에서 금리 인하 신호를 없애고 긴축 신호를 시장에 보낼 것”이라며 “물가 상승세에 따라 하반기 중 금리를 한 두차례 올려 연말 기준금리가 3.00%에 이를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전망했다.
조 소장도 “1년 이상 전쟁이 지속되면 물가 걱정에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최근 전쟁 양상이 압축적으로 빠른 전개를 보이는 것 같다”며 “따라서 연내 한은이 금리 인상에 나설 수도 있다. 다만 5월이나 7월 등 이른 시점의 인상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주 실장은 “인상이 임박했다는 시각은 너무 앞서 나간 것”이라면서도 “물가 상황에 따라 한은이 연내 1회 정도 기준금리를 높일 수는 있다. 하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 이내로 유지되면 연내 동결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 전망도 일부 조정되고 있다. 안 연구위원은 “이란 사태 후 올해 국제 유가 가정치를 배럴당 평균 85달러로 높이면서 기준금리 예상 경로도 연내 동결에서 4분기 1회 인상으로 수정했다”고 밝혔다.
다만 모든 전문가가 연내 인상을 점치는 것은 아니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연중 동결 기조를, 안예하 키움증권 선임연구원은 내년 하반기께 금리 인상 전환을 예상했다. 이란 전쟁의 전개 양상과 국제 유가, 국내 물가 흐름이 향후 한은의 선택지를 가를 최대 변수로 부상한 가운데, 새 총재 체제에서 통화정책의 방향 전환 시점과 속도를 둘러싼 시장의 눈치싸움도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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