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전효재 기자】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 시행으로 원하청 교섭 책임을 둘러싼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하청 노동자의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첫 판정이 나오며 원청 사업자의 교섭 책임이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산업계 전반의 파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노사 화합 문화를 이어온 동국제강그룹이 주목받고 있다.
3일 동국제강에 따르면, 최근 주요 철강사 중 가장 빠르게 올해 임금 협상을 마무리했다. 동국제강은 지난달 26일 인천공장에서, 동국씨엠은 27일 부산공장에서 각각 ‘2026년 임금 및 단체협약 조인식’을 갖고 대표이사와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교섭위원 20여 명이 참석해 합의서에 서명했다.
동국제강·동국씨엠 노사는 글로벌 경기 침체와 철강업계를 둘러싼 불확실성 확대 등 어려운 환경에 공감하고 함께 극복하기 위해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노사 관계가 첨예해지는 산업계 흐름과 대비되는 행보다.
실제로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산업계에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충남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2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연구원을 비롯한 4개 공공기관을 상대로 제기된 ‘교섭요구 사실 공고 시정 신청’ 심판회의에서 4건 모두를 인용했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하도급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된 첫 사례다.
노사 간 교섭 절차를 둘러싼 진통은 계속될 전망이다. 당장 이날(3일)도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포스코하청지회가 신청한 교섭단위 분리 결정에 대한 판정이 예정돼 있었지만, 심문회의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한 주 뒤인 8일로 연기됐다.
노란봉투법 시행 초기 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동국제강은 노사 무분규 32년의 금자탑을 쌓아 올리고 있다. 동국제강·동국씨엠은 1994년 산업계 최초로 ‘항구적 무파업’을 선언한 이후 상생의 노사문화를 이어왔다.
동국제강은 노사 간 신뢰와 협력을 회사의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노조는 회사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협력하고, 회사는 근로 조건 개선과 복지 향상으로 화답하며 매년 임금 협상을 평화롭게 마무리하고 있다.
동국제강의 노사관계가 마냥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1980년에는 파업으로 부산 공장이 5일간 가동 중단되고 일부 설비가 손실될 정도로 노사분규가 극에 달했다. 당시 사장이었던 고(故) 장상태 선대회장은 눈물을 흘리며 파업 현장을 바라봤던 것으로 전해진다.
장 선대회장은 대립 대신 상생의 길을 택했다. 1991년 10일간의 준법 파업이 벌어졌을 때도 맞서기보다 조합원의 마음을 돌리는 데 주력했다. 동국제강 역사에서 두 번째이자 마지막 파업이었다. 생산 차질은 남았지만 동국제강의 노사관계는 오히려 굳건해졌다. 동국제강 노조는 1994년 ‘항구적 무파업’을 선언했다.
이후 동국제강은 노조와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힘썼다. 장 선대회장은 무파업 선언으로 힘을 보탠 구성원에게 사원아파트를 건립해 입주시키는 등 복지로 화답했다. 매월 진행하는 임원 회의인 ‘책임경영회의’에도 노조 측 인사가 참석할 수 있도록 했다. 경영상황을 투명히 공개해 신뢰를 쌓고, 경영진이 찾지 못하는 실수를 노조가 찾아낼 수 있으리란 기대에서다.
1990년대 중후반 IMF 외환위기도 동국제강 노사의 신뢰를 깨트리지 못했다. 당시 동국제강은 대규모 사업 구조조정을 벌였지만 인적 구조조정은 진행하지 않았다. 노조는 자발적인 임금동결과 증산운동 등으로 힘을 보탰다.
노사관계를 ‘인간관계’로 바라보는 장 선대회장의 경영 이념은 장세주 회장과 장세욱 부회장이 계승했다. 동국홀딩 관계자는 “장 회장, 장 부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사업장을 방문하면 무조건 노조 사무실을 가장 먼저 찾아 애로사항 등을 청취한다”며 “노조와의 협의가 일종의 루틴으로 자리잡혀 있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동국제강은 2024년 1월 사내하도급 근로자 900여 명을 자회사 설립 없이 직접 고용했다. 추가적인 인건비 부담이 있었지만 노사 신뢰를 지키는 쪽을 택했다. 하도급 근로자 직접고용은 장세주 회장이 강하게 추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동국홀딩스 관계자는 “동국제강의 가장 큰 경쟁력은 노사화합”이라며 “하청 직원을 직접 고용하며 당장은 비용이 더 들겠지만, 생산성과 업무 능력이 오르면서 장기적으로는 회사 실적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노사 갈등의 불확실성을 걷어낸 동국제강은 올해 중장기 성장 전략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동국제강 최삼영 사장은 올해 주주총회에서 수출 판매 비중을 11%에서 15%로 높여 안정적 수익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동국홀딩스 관계자는 “중동 정세에 따라 원자재나 에너지 가격 등 변수가 많은 상황”이라면서 “수출에 무게 중심을 두고 전담 조직과 영업망을 확충하는 등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한 노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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