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로봇은 ‘걷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빠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미국 RAI 인스티튜트가 공개한 ‘로드러너(Roadrunner)’는 기존 이족보행 로봇의 개념을 뒤집는 존재다. 발 대신 바퀴를 달았지만, 필요할 때는 두 다리로 걷고 장애물을 넘는다. 말 그대로 ‘걷는 로봇’과 ‘바퀴형 이동체’의 경계를 허문 형태다.
이 로봇의 핵심은 ‘멀티모달 이동’이다. 평지에서는 바퀴를 나란히 배치해 빠르게 주행하고, 좁은 공간이나 장애물 구간에서는 인라인 형태로 바퀴를 정렬하거나 보행 모드로 전환한다. 상황에 따라 이동 방식을 스스로 바꾸는 구조다.
특히 눈에 띄는 건 관절이다. 양쪽 다리가 완전히 대칭으로 설계돼 무릎이 앞뒤 양방향으로 꺾인다. 이는 단순한 기괴함이 아니라, 장애물 회피와 자세 제어를 위한 기능적 설계다.
시연 영상에서는 계단을 오르내리고, 경사로를 질주한 뒤 다시 내려오는 모습이 확인된다. 심지어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린 채 ‘한 바퀴’로 균형을 유지하는 장면까지 연출한다. 이 모든 동작이 별도 튜닝 없이 구현됐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 로봇의 진짜 핵심은 ‘몸’이 아니라 ‘두뇌’다. RAI 인스티튜트는 단 하나의 AI 제어 정책으로 주행, 보행, 균형까지 모두 처리하도록 설계했다. 이른바 ‘제로샷(Zero-shot)’ 방식으로, 시뮬레이션에서 학습한 동작을 실제 기체에서도 바로 구현한다.
이는 로봇 개발의 가장 큰 장벽 중 하나였던 ‘시뮬레이션과 현실의 간극’을 크게 줄인 기술로 평가된다.
로드러너는 무게 약 15kg 수준의 비교적 가벼운 프로토타입이다. 하지만 이 구조가 대형화될 경우 이야기는 달라진다.
바퀴 기반의 속도와 이족보행의 기동성을 동시에 갖춘 만큼, 단순한 실내 로봇을 넘어 물류, 점검, 구조, 심지어 군사 영역까지 확장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실제로 휠+다리 하이브리드 구조는 에너지 효율과 장애물 대응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현실적인 해법’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가 인간을 닮은 위압감으로 공포를 자극했다면, 로드러너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불안을 만든다. 인간을 닮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SF 영화 속 T-800처럼 특정 목표를 추적하는 장면을 지금 당장 현실로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기술적인 기반만 놓고 보면, 그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기도 어려워진 단계에 도달했다.
로봇은 이제 걷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움직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더드라이브 / 조윤주 기자 auto@thedri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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