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이재명 정부가 전국 농지 전수조사 계획을 내놓자, 이번 조사가 1949년 농지개혁 이후 가장 큰 폭의 농지정책 전환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다만 투기 방지에 초점이 맞춰진 만큼 남의 땅을 빌려 농사짓는 임차농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3일 취재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이재명 정부의 전국 농지 전수조사와 투기 방지 정책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행정 중심 조사에서 벗어나 지역 단위 참여와 범정부 차원의 후속 관리 체계를 함께 갖춰야 한다고 봤다. 반면 농업계는 이번 정책의 성패가 실제 경작자인 임차농 보호에 달려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앞서 이재명 정부는 오는 5월부터 2년에 걸쳐 전국 농지를 대상으로 전수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정부는 올해 1단계로 1996년 농지법 시행 이후 취득한 농지를 중심으로 조사하고 내년에는 그 이전 취득 농지까지 범위를 확대해 전국 농지의 소유·이용 실태를 전면 점검할 방침이다.
이번 조사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승만 정권의 1949년 농지개혁 이후 가장 큰 농지정책 전환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이 헌법상 경자유전(耕者有田·농사짓는 이들만 땅을 소유한다) 원칙의 회복을 강조하면서 사실상 농지개혁이 던졌던 문제의식을 다시 공론장으로 불러냈다는 해석이다.
물론 이번 전수조사가 1949년 농지개혁처럼 지주 소유 농지를 농민에게 재분배하는 방식의 소유구조 개편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농지개혁 이후 처음으로 전국 단위에서 농지의 소유·이용 실태를 다시 점검하고 그 과정에서 경자유전 원칙이 현실에서 얼마나 훼손돼 있는지 조사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현대적 농지개혁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조사 대상은 약 195만㏊ 규모로 농림축산식품부를 중심으로 국토교통부·지방자치단체 등이 참여한다. 이를 위해 추경 예산 588억원이 투입되며 드론·항공사진·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해 의심 농지를 선별한 뒤 8월부터 ‘10대 투기 위험군’(▲토지거래허가구역 내 농지 ▲수도권 소재 농지 ▲경매·공매를 통해 취득한 농지 ▲농업법인 및 외국인 소유 농지 등)을 중심으로 현장 점검에 나설 예정이다.
이 같은 조사가 이뤄지는 목적은 농지를 실제 농업 생산을 위한 토지로 되돌리고 소유와 이용이 분리된 현실을 바로잡는 데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 농지의 약 47%는 임차 농지다. 절반 가까운 농업인이 자기 땅이 아닌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농지 소유와 실제 경작이 상당 부분 분리돼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땅값 문제까지 겹친다. 지난해 기준 농지 실거래가를 보면 경기지역 농지는 평당 60만7000원 수준으로 전남의 7.4배에 달한다. 지역에 따라 농지가 생산수단을 넘어 사실상 부동산 자산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농지가 투기 목적, 또는 최소한 농사와 무관한 자산 보유 수단으로 활용되는 문제가 본격적인 규제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문재인 정부 이후라는 평가가 많다. 그 이전 정부들 역시 농지법상 소유 제한과 처분명령 등 기본 규제 장치를 두고 있었지만 농지 거래와 유동화를 정면으로 억제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오히려 외환위기 이후 경기 활성화와 규제 완화 기조 속에서 농지 이용과 거래를 일정 부분 풀어준 김대중 정부, 농지은행 도입 등을 통해 농지 유동화와 구조조정에 무게를 실었던 노무현 정부 시기의 정책은 농지의 자산적 성격을 강화하는 데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같은 문제는 이미 여러 차례 사회적 논란을 낳으며 제도 개혁 필요성을 키워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1년 불거진 LH 농지 투기 사건이다. 공공기관 직원들이 개발 정보를 활용해 농지를 사들인 사실이 확인되면서 농지가 생산수단을 넘어 투기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후 정부는 농지 투기 차단을 위한 제도 보완에 나섰다. 2021년 LH 사태를 계기로 문재인 정부는 농지관리 개선방안을 통해 주말·체험영농 목적의 농업진흥지역 내 취득 제한, 불법 임대차 중개·광고 금지, 농지취득자격증명 심사 강화, 농지위원회 설치, 농지원부를 농지대장으로 개편, 농지이용실태조사의 법적 근거 마련, 벌칙 및 이행강제금 상향 등을 추진했다.
다만 이러한 장치들은 대체로 부분적이고 사후적인 관리에 머물렀고 한편으로는 규제 완화 기조와 병존하면서 실효성이 제한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석열 정부 역시 이행강제금 강화와 조사 권한 확대 등 집행력을 보완하는 조치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 같은 보완책에도 불구하고 농지 투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조사 자체보다 정부가 농지 제도를 어떤 방향으로 개편할지에 대한 큰 그림과 농지관리 기본방침이 먼저 제시돼야 하며 행정 인력 중심이 아닌 지역 주민·농업단체·전문기관이 함께하는 조사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회입법조사처 산업자원농수산팀 김규호 입법조사관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정부가 발표한 이번 전수조사 계획이 아직 구체성과 범위가 충분히 명확하지 않다고 봤다.
그는 “정부가 ‘전수조사’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올해 행정정보와 드론·항공사진·AI로 의심 농지를 먼저 선별한 뒤 8월부터 투기 위험군을 집중 점검하는 방식이어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현장을 전부 확인하는 전수조사’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며 “특히 행정정보로 걸러지지 않은 농지가 사실상 사각지대로 남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사 방식과 관련해서는 행정 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며 “5000명 규모 조사 인력을 투입하는 것 자체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농지 문제는 현장 사정을 모르면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마을 단위 주민, 지역 농업단체, 농지위원회 등 현장을 잘 아는 주체들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김 조사관은 이어 “정부가 아직 내놓지 않은 농지관리 기본방침이 먼저 마련되고 그 안에 전수조사의 목적과 방법이 담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농지 제도를 어떤 방향으로 가져갈지에 대한 정책 로드맵이 먼저 있어야 하고 그 위에서 조사 범위와 방법이 정해지는 것이 순서상 더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농업계는 이번 농지 전수조사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투기 적발과 처분 위주로 정책이 추진될 경우 실제 농사를 짓는 임차농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실경작자 보호 장치와 공공농지 확대, 임대차 양성화 제도 개편이 전수조사와 병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살림연합 김진아 정책기획1팀장은 본보에 “실경작자 보호 장치가 선제적으로 마련돼야 전수조사 과정에서 임차 농민이 피해를 보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하며 매각 명령이 내려진 농지를 국가가 매입해 공공농지로 전환하고 임차농이 경작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공적 관리 체계’ 구축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위장 자경(자기가 직접 농사를 짓는 것)과 불법 임대차를 유발하는 현행 ‘8년 자경 양도세 감면’ 위주의 농지 조세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농지를 농업 용도로 지속 활용하는 농민에게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임대차 양성화를 유도하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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