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업 거래행위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부당한 측면을 누구나가 형사사건으로 고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개편안을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무분별한 고소·고발에 따른 기업 활동 위축은 물론 불필요한 인력 투입에 따른 행정력 낭비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특히 한국의 기업 규제가 OECD 선진국에 비해 많다는 점은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고발 신청 1234건, 실제 고발 건수는 30건…"솜방망이 아닌 고발 내용의 부실함 원인"
다수의 전문가들은 전문성을 가진 공정위가 고발 사건을 필터링하지 않으면 기업 거래행위 자체가 '올스톱'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수사 과정에서 기업장부나 내부 시스템을 통해 거래를 살펴보는 조사가 반드시 수반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앞서 공정위가 고발 최소 기준을 '국민 300명 이상 또는 사업자 30곳 이상'을 설정한다고 밝히긴 했지만 기업이 입는 피해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준길 길버트 컴플라이언스 파운더 겸 고문은 "공정위에서 심판관리관으로 근무하던 2000년대 초에도 피해자들이 기업을 고발해달라고 6000명씩 모여 신청했다"며 "20년이 지난 지금은 인터넷 때문에 훨씬 더 쉽게 사람들이 모일 텐데 300명으로 불필요한 고발을 거르는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고 우려했다.
그는 "법이 규정하는 불공정 거래행위 유형만 29개이고 사업을 하는 사람들조차 어떤 거래행위가 부당한지 모른 채 그동안의 관행대로 회사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며 "전문성을 가진 공정위는 고발이 들어온 사안을 두고 형사처벌로 갈 일인지 경고로 끝낼 일인지 교통정리를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 마구잡이로 고발을 진행하면 기업은 물론 경찰도 엄청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공정위가 지난해 발표한 '2024년도 통계연보'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접수된 기업 고발 신청은 1234건이다. 이 중 실제 공정위가 고발한 사안은 30건에 불과하다. 공정위가 집계를 시작한 1981년부터 43년간 고발신청 대비 실제 고발 건수의 평균 비율은 1.2% 수준을 보였다. 그만큼 불필요한 고발이 많았다는 의미다. 이 고문은 "기업에 대한 공정위 칼끝이 너무 무디다는 평가가 있긴 하지만 판단 자체는 객관적이었을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애매해지는 불공정거래행위 기준, 해외 선진국들도 '무조건 고발' 대신 신중한 태도 견지
한국의 기업 규제 강도가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이미 높다는 사실은 전속고발권 폐지 우려를 부채질하고 있다. OECD 회원국 중 기업의 거래행위 관련 형사제재를 규정한 국가는 13곳에 불과하다. 이 중에서도 한국은 유독 많은 형벌 규정을 두고 있다. 구체적으로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기업결합 ▲부당공동행위 ▲불공정거래행위 ▲사업자 단체 금지행위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2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또 ▲재판매가격 유지행위 ▲상호출자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반면 한국의 공정거래법과 공정위 전속고발권의 모델이 된 일본 독점금지법(AMA, Anti-Monopoly Act)은 우리나라에 비해 규제 정도가 훨씬 덜하다. 우선 우리나라와 달리 불공정거래행위는 형사 처벌하지 않으며 경쟁 당국(JFTC)의 전속고발권 행사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토다 쇼고 일본 공정위원장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일본 공정위가 형사 기소한 건은 가격 담합 1건, 시장 점유율 담합 1건, 입찰 담합 4건 등 총 10건에 불과하다.
미국은 경쟁법 체제 자체가 한국이나 일본과는 다르긴 하지만 기업 활동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세우고 있다. 미국의 경쟁법 집행 당국은 법무부(DOJ) 산하 독점금지국(Antitrust Division)과 연방거래위원회(FTC)로 이분화돼 있다. 시장지배적 남용행위나 담합과 같이 형사처벌이 뒤따르는 사안은 법무부 독점금지국이, 행정제재 등 민사사건으로 처리될 사안은 FTC가 각각 다룬다. 미국 독점금지국은 세계적으로 전문적인 인력과 경험을 갖춘 집행기관으로, 특히 공공부패나 경제 범죄에 대해서는 FBI와 함께 수사할 정도로 강력한 수사권을 자랑한다.
국제사회 분위기도 공정거래행위 위반에 대한 법 집행을 최대한 자제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OECD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경쟁동향 보고서(A Decade of OECD Competition Trends, Data and Insights)에 따르면 2015년부터 10년간 세계 각국에서 반공정거래행위에 대한 법 집행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과 미주 지역에서는 특히 시장지배력 남용 사례가 크게 감소했고 유럽에서는 법 위반 조사 건수 자체가 크게 감소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도 경쟁 당국의 법 집행 건수가 감소세를 보였다. 집행 사건의 복잡성 증가, 법 집행보다 우선하는 수단의 활용 증가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Copyright ⓒ 르데스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