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탁영준이 아트선재센터에 걸어둔 두 마리의 북어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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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탁영준이 아트선재센터에 걸어둔 두 마리의 북어에 관하여

에스콰이어 2026-04-03 14:57:2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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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영준 작가. PHOTO 전경민.

탁영준 작가. PHOTO 전경민.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대규모 퀴어 미술 기관 전시다. 2014년 홍콩에서 설립된 선프라이드재단과의 협력으로 기획된 이 전시는 타이베이, 방콕, 홍콩을 거쳐 서울에 도착한 네 번째 에디션으로, 국내외 74명(팀)의 미술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길버트 & 조지, 로버트 라우센버그, 데릭 저먼 같은 현대미술사를 안내하는 이름들과 한국의 동시대 작가들이 한 공간에 나란히 놓인다. 이 전시가 시작되는 입구에 탁영준의 작품이 있다. 자신과 임경업 장군의 얼굴을 한 명태 두 마리가 새끼줄에 꼬여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탁영준의 이 도자 조각 '우리의 열림 안에 그들의 두려움'(2026)은 전시장에 들어서려는 액을 막아준다. 아트인컬처 에디터를 그만두고 베를린으로 거쳐를 옮긴 탁영준은 이후 조각과 영상을 넘나들며 기독교 도상과 한국의 민간 신앙, 퀴어 정체성이 교차하는 지점을 탐구해왔다. 전시 개막을 앞두고 아트선재센터의 한 방에서 그를 만났다.

탁영준, '우리의 열림 안에 그들의 두려움', 2026, 린덴 목재, 밀랍, 명주 실타래, 가변 크기, 사진_ 엘마 페스트너.

탁영준, '우리의 열림 안에 그들의 두려움', 2026, 린덴 목재, 밀랍, 명주 실타래, 가변 크기, 사진_ 엘마 페스트너.

좀 지루한 질문일 수 있는데요, 잡지 작업과 미술 작업 사이에 어떤 연결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잡지를 만드는 건 미술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랑 별반 다른 게 없었던 것 같아요. 아이디어를 내고, 재료를 수집하고 그걸로 뭔가를 만들었죠. 다만 그 재료가 텍스트와 이미지였다는 차이 뿐이에요. 당시 저희는 에디터들이 디자인까지 꽤나 깊게 관여했고 나중에 인쇄소에까지 가서 감리까지 전부 봤거든요. '책'이라는 오브제를 만들었던 셈이죠. 사실 거의 열정 페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업무량이었지만, 매달 인쇄가 끝난 책을 받아들고 그 물성을 느끼고 나면, 그런 게 참아 지더라고요. 그런 물성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조각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작업에서 촉각성이나 수공의 불완전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동아시아라는 환경과 관계가 있을까요?

그런 가치들이 여기서는 더 핍박받는 것 같기도 해요. 우리는 계속 새로운 걸 생산하며 살아남아야 하는 곳에 살고 있으니까요. 전 주로 제 작품들을 수공예 장인들과 함께 만들거든요. 인간이 하는 반복은 디지털 복제와 달리 매 순간 조금씩 달라요. 같은 행위를 열 번을 반복했을 때 세 번의 최고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 행위는 일곱 번이라는 불완전한 마진을 갖는 거죠. 그런데 그 완벽한 세 번에 도달하지 못하는 나머지는 정말 실패인 건가? 수공이 가지는 불완전성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그 마진을 품기 시작한 게 베를린으로 옮긴 이후였어요. 베를린은 독일이라는 나라 안에서도 섬 같은 곳이에요. 가을 겨울엔 계속 구름만 껴있고 해가 거의 안 나요. 해가 났다 싶으면 모두가 하던 일을 내려놓고 공원에 나가서 드러누워 있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요. 일주일에 이틀을 일하든 사흘을 일하든 그냥 유유자적하게 살아도 되는 환경이었어요. 처음엔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어서 불편했는데, 그 리듬에 익숙해지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나 자신에게 시간을 준다는 개념 자체를 내가 몰랐었구나, 하고요. 그러면서 작업을 시작하는 과도기에 발생하는 실수들도, 그 마진들도 조금씩 포용할 수 있게 됐어요. 지금은 11년째 살고 있는데, 이제는 이 마진들에 대해서 다시 짜증이 나는 시점에 도달했어요. 뭘 함께 하면, 세월아, 네월아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요.(웃음) 인간은 어디에 있든 그곳에 안주하기 시작하면 다 배부른 소리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 개인전을 보면서 뭔지 모를 성심을 느끼곤 했어요. 그게 꼭 종교적인 콘텍스트를 차용해서 그렇다기 보다 무언가에 하나같이 정성스러운 마음들이 보였달까요?

개인전을 할 때마다 공간을 일종의 지성소처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작품에 기독교적 상상을 많이 활용하다 보니 교회 건축을 많이 참조하는데, 이유가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교회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어요. 그 구조를 우리 몸이 기억하지요. 교회는 수백 년에 걸쳐 정형화된 건축 스타일이고 누구나 직접이든 간접이든 그 공간을 체험해봤거든요. 입구에 들어서면 수가 어디 있고 회랑이 어떤 나 있는지 사람들이 몸으로 아는 거죠. 갤러리나 미술관의 화이트 큐브는 아무런 맥락이 없는 공간이지만, 어떤 기능을 하는 오브제 몇 개만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그 공간이 통째로 교회로 전환돼요. 저는 어머니 쪽은 기독교, 아버지 쪽은 불교인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은 결혼하시면서 '우리 가족은 종교가 없다'고 선언하셨고, 그런 환경에서 자랐어요. 그런데, 한국에서 자라다 보면 개신교와 어떤 식으로든 마주하게 되더라고요. 특히 남성 동성애자로서는 개신교를 마주하지 않을 수가 없었죠. 개신교와 마주친 경험이 첫 작품으로 이어지기도 했고요.

'Salvation', 2016, Resin, paper, glue, lacquer 176.5 x 65 x 65cm. Courtesy of the artist Photo by Elmar Vestner.

'Salvation', 2016, Resin, paper, glue, lacquer 176.5 x 65 x 65cm. Courtesy of the artist Photo by Elmar Vestner.

성상의 형태를 한 '구원'(Salvation)이라는 작품이죠?

맞아요. 2014년에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처음 갔을 때예요. 그때는 축제가 신촌에서 열렸는데, 저는 완전히 커밍아웃한 상태는 아니었고, 지인들한테 부분적으로 알린 상태였어요. 신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상태로 축제에 갔는데, 공교롭게도 그해 처음으로 반동성애 기독교 단체가 현장에 나타난 거예요. 행진하는 길목을 막고 팔짱을 끼고 인간 바리케이드를 쳐서 막고는 퍼레이드 앞에 드러누워 찬송가를 부르고 울고 불고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저희를 보면서 "이 사람들이 우리 미래를 다 망쳐버릴 거다"라면서요. 그들의 존재야 미디어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눈앞에서 본 건 처음이었어요. 그냥 보기엔 정말 너무도 평범해서 더 놀랐어요. 대학교 때 친구들 같은 젊은 사람들, 그 친구들의 부모님 같은 사람들이, 심지어 너무 어린 사람들이 그렇게 막아서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더라고요. 완전 아비규환이었죠 뭐. 그 단체가 그때 전단지를 뿌렸어요. 모든 게 엉망이 된 상태에서 전단지를 하나 집어 들었더니 '동성애가 한국의 미래를 망치는 이유'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더라고요. 혐오 구호와 전환치료를 권유하는 내용의 전단지들을 수집해서 그것들로 성모마리아 조각상의 표면을 뒤덮은 작품을 만들게 된 이유예요.

이후에 기독교 단체들을 직접 찾아다니시기도 했지요.

그 대치 상황이 너댓 시간 정도 됐을 거예요. 집시법 때문에 6시에 대치가 풀렸는데, 그때는 경찰도 저희를 도와주지 않았어요. 해가 지고 나서 그 자리에서 돌아 나오면서, 베를린으로 이사 가면 이 동성애 혐오 기독교 단체에 대한 연구를 해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는 아직 글 쓰는 사람이었으니까 연구를 해볼 생각이었던 거죠. 그래서 기독교 총연맹 같은 단체들을 찾아갔어요. 처음에는 너무 겁이 났어요. 적진에 들어가는 느낌이어서, 처음엔 그냥 연구 중이라고만 밝혔다가 한두 번 가고 나서는 마음을 다잡고 제일 큰 연맹에 얘기를 했죠. 저는 남성 동성애자 미술 작가이고, 개신교의 동성애 혐오에 대해 연구 중이라고요.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갔는데, 간사 분이 제 손을 꽉 잡으면서 '잘 오셨다'고 하더라고요. 그 동안 남성 동성애자들을 자신이 올바른 길로 안내해 준 경험이 많다면서요. 그 순간 돋은 소름을 아직도 믿을 수가 없어요. 이 사람들의 경지가 제 상상을 초월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죠. 탈동성애 운동을 하시는 분들, 동성애 문제를 연구하시는 분들, 뭐 그런 분들을 다 만나고, 그분들이 주시는 전단지와 인쇄물을 다 모아서 베를린으로 가져가 글을 쓰려했는데, 그게 첫 조각 작품이 됐어요.

'My Projection', 2024, Lime wood, brass, beeswax 25.3 x 11 x 10.8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Capsule Venice Photo by Riccardo Banfi.

'My Projection', 2024, Lime wood, brass, beeswax 25.3 x 11 x 10.8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Capsule Venice Photo by Riccardo Banfi.

이번에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에는 임경업 장군과 탁영준 작가 본인의 얼굴을 북어의 몸통에 붙인 조각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북어를 소재로 삼은 이유가 궁금해요.

제가 해온 작품 중에 신성한 것과 가장 세속적인 욕구들이 맞물리는 연작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성인의 얼굴이 아스파라거스나 소시지에 달려 있거나 빵이나 소스와 함께 놓여 있는 식의 시리즈죠. 이번 북어는 그 연장선상에 있어요. 저희 어머니는 늘 음식을 하셨어요. 지금은 유치원 식당에서 일하시죠. 저도 그 영향으로 먹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됐고요. 제게 북어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에요. 제사상에도 올라가다보니 조기와 더불어 사람들의 절을 받는 흔치 않은 물고기죠. 액막이 북어는 악귀를 물리치는 역할도 하고요. 우리의 식재료에도 신성이 곁들여진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연구를 하다 알게 됐어요. 그러다가 풍어의 신인 임경업 장군의 설화에 대해 알게 됐을 때, 불현듯 어머니가 언젠가 했던 말이 떠올랐어요. "우리가 임경업 장군의 후손이다"라고 하셨거든요. 외삼촌이랑 그 얘기를 했던 기억도 났고요. '나는 물고기구나'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시작하면서 이 모든 것들이 폭발하기 시작했어요. 지금 아트선재센터에 매달려 있는 그 작품은 좀 더 큰 이야기의 일부예요. 그 이야기들이 최종적으로 다 풀리는 건 영상 연작의 마지막 편에서일 것이고, 그 조각은 연작의 시작점이죠.

임경업 장군이라는 역사적 인물에서 특별히 끌린 부분이 있나요?

사실 임경업 장군 자체에 깊이 매료됐다기보다는, 어떤 매개체였던 것 같아요. 작가로서 어떤 모티프에 뛰어들 때는 그런 개인적인 연결고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더 중심적인 건 아까 얘기한 것처럼, 가장 세속적인 쾌락과 가장 신성한 것이 맞물리는 부분이에요.

성인의 얼굴 이미지를 조각에 담을 때 어떤 표정을 의도하나요?

성인들이 순교를 당할 때, 인간으로서 고통을 받아 죽는 거잖아요. 고통의 최고치에 있지만 동시에 자신이 믿는 신에 가까워지는 순간이기도 하죠. 황홀경에 가까운 순간이기도 하죠. 그 순간을 표현한 성화들을 보면 표정이 에로틱하게 그려진 경우들이 많아요. 영어로 'agony and ecstasy', 고뇌와 황홀이라고 하는 그 표정을 이 작품들에 담아보려고 했어요. 북어가 그 맥락에서 딱 맞아떨어졌어요. 명태는 눈이 정말 크거든요. 사천왕상을 보면 눈을 부릅뜨고 입을 크게 벌리고 있잖아요. 안과 밖을 내통하게 한다는 의미가 입을 벌린 그 형상에 담겨 있는 것인데요, 그게 기독교 성상 속 순교자들의 표정과 공교롭게 맞아떨어졌지요.

작가님의 작업 중엔 신체를 분절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다는 특징도 있어요.

작업하면서 신체를 가까이 들여다보게 되면, 같은 카테고리 안에 있어도 사람들이 너무나 다르다는 게 느껴져요. 피부과 가서 피부만 들여다봐도 그렇잖아요. 어떤 유사한 카테고리 안에 있다 해도 그 안에서 너무 다르다는 게 느껴지지요. 그러면서도 또 어느 지점에서는 비슷하기도 해요. 여성적인 남성의 손과 남성적인 여성의 손을 그것만 놓고 봤을 때 어느 쪽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요. 우리가 얼마나 서로 다르고, 또 그래서 같이 있을 수 있는지, 앞뒤가 맞지 않는 그 모순성, 그게 우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자기 모순성이 제 작업의 핵심적인 것 같아요.

이번 전시는 한국 최초의 대규모 퀴어 기관 전시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어요. 이번 작품의 맥락과도 연관이 있을까요?

퀴어성이라는 것 자체가 참 애매모호한 것 같아요. 제가 만드는 작품에는 어느 정도 그런 게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이 작품에서 굳이 퀴어성을 찾아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이번에 제 얼굴을 처음으로 작품에 썼다는 것, 그 정도가 개인적으로 새로운 지점이에요. 20분짜리 영상 작품에서도 댄서들이 퀴어다, 라고 밝히는 순간은 전혀 없거든요.

그러면 너무 이상하겠지요.

다 다른 사람들이 어쨌든 뒤엉켜서 살고 있는데, 그걸 굳이 이렇게 카테고리를 지어야 하나 싶기도 하죠.

이번 전시에 '최초의 대규모 퀴어 기관 전지'라는 레이블을 붙인 것에 대해서도 그냥 쿨하게 전시만 해도 다들 알았을 것이라는 의견과 한국에선 널리 알리기 위해 선언이 필요했다는 의견이 존재 하지요.

쿨하게 그런 레이블 없이 하는 게 멋있어 보일 수 있지만, 한국은 아직 그 쿨함에 도달하기 전에 거쳐야 할 과정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서구는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 현대적인 형태로 촉발되고, 그게 법제화되는 전 과정을 거쳐서 어느 정도 구축이 되어가고 있어요. 위태롭긴 하지만요. 한국은 좀 다르죠. 여론조사를 보면 젊은 층은 동성혼 합법화에 과반이 찬성하지만, 진보적인 정당만 봐도 법제화에 선뜻 나서지는 않아요. 한국의 공립 미술 기관들에서는 퀴어 전시는 물론이고, 정체성 이슈에 대해 언급하거나 다룬 적이 거의 없었지요. 그런 의미에서 아트선재센터 같은 '기관'이 이걸 공표하고 다루는 것 자체는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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