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강성곤의 '아름다운 우리말'…'어제오늘'과 '하루 이틀'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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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강성곤의 '아름다운 우리말'…'어제오늘'과 '하루 이틀' 外

연합뉴스 2026-04-03 14:00: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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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강성곤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강성곤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본인 제공]

◇'여'의 발음

'50여 명'의 발음을 어떻게 할까. 많은 이가 '50'을 '쉰'으로 읽으면서, [쉰여명/쉬녀명]으로 발음해 자주 틀린다.

'여'(餘)는 그 수를 넘는다는 접미사다. 한자(漢字)라는 게 힌트다.

따라서 앞의 숫자도 한자식(오십)으로 읽어야 맞는다.

토박이말 사랑은 아무 때나 하는 게 아니다. 고유어식(쉰) 수 읽기 적용 대상이 아니기에 [오시벼명]으로 해야 한다.

간혹 [오심녀명]을 보게 되는데 이건 'ㄴ 첨가' 대상이 아니다.

그냥 연음이다.

'50여 명'은 [오시벼명]이 맞다.

◇뵈/봬, 안/않

"다음에 봬요"

"다음에 뵈요"

'뵈/봬'가 헛갈린다는 분이 의외로 많다.

요령은 '뵈=보이'로 푸는 것이다. 이대로 무리가 없고 말이 되면 '뵈'요, 안 그러면 '봬'다. '그렇게 안 뵈는데요'는 '보이'를 넣으면 충분하다.

그러나 '또 뵈요'는 뭔가 부족하다. 바로 '어'다. 그래서 '또 봬요'가 맞는다. '뵈어요'가 줄어든 것이다.

어쩐지 '봬'는 뜨악해 보여 언어 현장에서 '봬'를써야할 곳에 '뵈'로 써서 틀리는 경우가 압도적이다.

'안/않'도 같은 맥락이다. '안'은 '아니'의 축약이고 '않'은 '아니ㅎ/하'가 줄어든 것이다.

'아니'로 딱 풀리면 '안'이요, 모자라면 '않'이다.

'그렇게는 안 돼'는 '아니'로 충분하니 '안'이다. '그리되지 않도록'은 '안'만 쓰면 '아니도록'이 되어 부족하고 말이 안 되니 '않'이다

◇ '넘어'의 올바른 표현

모 신문의 광고 내용이다.

'환멸의 시대를 넘어'라는 표현을 읽다가 '넘어'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는 '넘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넘어'는 다음 단계로의 이행/도약, 혹은 '그 이상'이지 '전환/반전'이 아니다. 예컨대 '변화를 넘어 혁신으로' 같은 거다. 그래서 이 표현은 아래와 같이 고쳐야 한다.

→ 환멸의 시대를 지나/부수고/뒤로 하고

◇'어제오늘'과 '하루 이틀'

모 신문에서 정치인과 유튜버의 공생관계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표현을 봤다.

'어제 오늘'이 눈에 들어왔다. 틀린 표현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이 일상에서 가끔 헛갈리는 표현이다.' 어제오늘'은 한 단어다. 붙여 써야 한다.

'아주 최근이나 요 며칠 사이'를 뜻한다.

보통 뒤에 부정어가 붙어 꽤 시간이 경과한 걸 의미할 때 쓴다. 예시문을 써봤다.

"둘의 안 좋은 관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루 이틀'은 한 단어가 아니어서 띄어 쓴다.

'하루나 이틀 정도의 짧은 기간'이 그 뜻이다. 예시문을 또 써봤다.

"결과는 하루 이틀 사이에 안 나올 거다."

여기서는 '어제오늘'이 적절하다. 정치인과 유튜버의 공생관계가 최근 일이 아니라는 의미여서 그렇다.

◇ '깜빡'과 '깜짝'

모 신문의 칼럼이다.

"지행합일, 언행일치를 마땅히 지향해야 할 덕목으로 꼽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개석상에서 공인의 자격으로 했던 본인의 발언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동을 하면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정신승리 사례들을 넘치도록 접하다 보면…(후략)"

여기서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정신승리'라는 단락이 눈에 들어왔다. 이 표현이 아주 틀렸다고 하긴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올바른 표현은 '태도나 기색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평소와 다름없이 굴다'를 뜻하는 관용 표현은 '눈 하나 깜짝 안 하다'가 맞다.

즉, '깜빡'이 아니라 '깜짝'이다.

또 그 정도가 높아 아주 태연할 때는 '눈썹도 까딱하지 않다'를 쓴다.

이 칼럼에선 '정신승리'라는 단어 선택도 문제다.

문맥으로 보아 칼럼에 등장하는 사례 속 주인공은 그저 뻔뻔하거나 파렴치한 것이지 정신승리 단계까지는 오르지 못했다.

정신승리는 자신의 수모·굴욕·패배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합리화·정당화 기제를 동원해 자신이 승리하고 있다고 여기는 위안을 말한다.

◇ 얼렁뚱땅, 건성건성

이 또한 모 신문의 내용이다.

"그런 문제를 의원들끼리 밀실에서 비공개로 우물쭈물하겠다는 거다"

여기서 왜 '우물쭈물'이 나왔을까?

앞뒤 문맥으로 보아 '얼렁뚱땅/건성건성/어영부영하다'가 맞아 보인다.

그럼 왜 '우물쭈물'을 썼을까?

평소에 이 사람은 '주물럭거리다'는 말을 많이 썼을 것 같다. "자기들끼리 대충 주물럭거리겠지" 이렇게 말이다.

글을 쓰다 일종의 착종(錯綜)을 일으켰을 개연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주물럭'과 '우물쭈물'의 친연성을 제 딴에 간파해 오발(誤發)했을 개연성이 농후하다.

◇ '죽어라고'와 '죽으라고'

역시 모 신문의 내용이다.

"아버지의 회사에 부도가 나고 어머니가 사이비 종교에 빠져 집을 나간 뒤에도 죽으라고 공부해 3등급까지 올린 청년이 있다.(후략)"

여기선 '죽어라고/죽어라 하고'가 맞는다.

있는 힘을 다한다는 뜻이다.

"창호는 죽어라 하고 도망쳤다"

"미혜는 죽어라고 용서를 빌었다"

'죽으라고'는 아래와 같은 상황에 쓰인다.

"명주는 용수에게 차라리 죽으라고 울부짖었다".

◇ '빗대다' 바로 쓰기

'빗대다'라는 표현도 잘못 쓰기 쉽다.

'빗대다'는'곧바로 말하지 아니하고 빙 둘러서 말하다'의 뜻이다. 예시문을 살펴보자.

"그들은 구두쇠로 몰린 삼촌을 놀부로 빗댔다."

-> "너무 인색한 그를 빗대어 사람들은 자린고비라 불렀다." 이런 게 바른 용례다.

'빗대다'는 어디까지나 비교 대상이 그 특성/개성/자질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또한 반어/역설/모순의 기법도 어감을 대개는 부정적인 것으로 써야 걸맞다.

"국민들은 역설적으로 그를 '미남'으로 불렀는데 고매한 인격을 높이 산 것이다"

-> "별명이 놀랍게도 '미남'인 까닭은 그의 높은 정신세계에 대한 반어적 칭송이었다."

이렇게 바루어야 옳은 표현이다.

◇ '와중' 유감

모 신문의 내용이다.

"세계 최고의 디바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가 상대역을 맡은 테너가 노래하고 있는 와중에 그에게 항의하러 무대로 올라온 것이다.(후략)"

'와중'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쓰는 방식이 일상에서 자주 틀리는 표현이다.

와중은 한자로 '渦中', '소용돌이 가운데'라는 말이다.

일이나 사건 따위가 시끄럽고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전쟁의 와중에 가족을 잃었다', '몸이 아픈 와중에 부도가 났다' 등 주로 부정적인 상황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바쁘신 와중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는 그래서 부적절하다.

'바쁘신 가운데', 또는 '바쁘신 중에'가 자연스럽다.

따라서 이 경우는 상대가 '노래하는 도중에/노래하는 중에/노래하고 있는데도'가 어울린다.

일이 계속되고 있는 과정이나 일의 중간을 뜻하는 게 도중(途中)이다.

와중에'를 쓰고 싶을 때, '도중에'가 맞는 것 아닌가 떠올려 볼 일이다.

◇ 뉴스 앵커가 '지켜본다'?

"잘 지켜보겠습니다."

지켜본다고? 뉴스진행자/시사 프로그램 MC들이 인터뷰 말미 때, 언제부턴가 즐겨 쓰는 말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다'로 별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말이란 상대적이며 특유의 분위기와 뉘앙스가 있다. 거기다 방송이라는 공간은 언어예절이 비교적 엄격히 작동되는 곳이다. 시청자가 보고 배우고 따라 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네가 앞으로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마."

학생 때, 선생님께서 많이 해주시던 말이다. 대개 뭔가를 잘못한 후 용서하시며 쓰셨다. 그게 관용적인 쓰임이고 제대로 된 경우다.

지켜보겠다는 건,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써야 어울린다. 잘못이 없는 당당한 사람이 일견 어수룩하고 모자란 사람을 대하며 사용해야 대체로 걸맞다. 우리 언어 정서가 그렇다.

뉴스진행자들이 매사에 그렇게 당당한 사람들인가? 고위 공무원이나 기업 관계자들이 죄인인가? '지켜보겠다'는 건 덧붙여 문제가 또 있다. 실제로 잘 지켜보지 않는다. 그렇게 잘 지켜봤으면 같은 실책/사고가 계속 일어날 리 만무하다.

그냥 허언(虛言)에 가깝다. 물경 오만(傲慢)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이게 혹여 보통 사람의 관계에서도 맺음말로 자리 잡지나 않을까 저어한다.

대안은 어떻게 써야 할까. '자기' 대신 '국민'이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걸 잊지 마시고 잘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민들께서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강성곤 현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 전 KBS 아나운서 ▲ 정부언론공동외래어심의위원회 위원 역임 ▲ 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 위원 ▲ 전 건국대·숙명여대·중앙대·한양대 겸임교수 ▲ 현 가천대 특임교수

* 더 자세한 내용은 강성곤 위원의 저서 '정확한 말, 세련된 말, 배려의 말', '한국어 발음 실용 소사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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