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됐을 때 식물학자들이 뒤집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식물’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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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됐을 때 식물학자들이 뒤집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식물’ 수준

위키트리 2026-04-03 11:26: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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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퀼라 / 'Sobrevivência e Aventura' 유튜브

식물은 그저 자라고 시들 뿐이라고 생각했다면, 이 이야기는 그 생각을 꽤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칠레 남부 온대우림 어딘가, 덩굴 하나가 다른 나무를 타고 오른다. 그런데 이 덩굴에서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줄기의 왼쪽에 달린 잎과 오른쪽에 달린 잎이 전혀 다른 모양이다. 왼쪽 잎은 크고 넓적하고 끝에 가시가 달렸고, 오른쪽 잎은 작고 둥글며 부드럽다. 같은 식물이라고 믿기 어렵다. 알고 보니 왼쪽은 가시 달린 나무를 휘감고 있고, 오른쪽은 부드러운 잎을 가진 나무에 닿아 있다. 이 덩굴은 자신이 감고 오른 나무의 잎을 그대로 흉내 내고 있었다.

이 식물의 이름은 보퀼라(Boquila trifoliolata). 칠레 온대우림에 자생하는 목본성 덩굴식물이다. 눈도 없고 뇌도 없는 이 식물이 이웃 식물의 잎 모양과 색깔, 잎맥 패턴, 심지어 잎 끝의 가시 유무까지 따라 변형한다는 사실이 처음 학계에 보고된 것은 2014년이었다. 당시 라 세레나 대학교(University of La Serena)의 식물 생태학자 에르네스토 지아놀리가 숲을 걷다가 이 광경을 목격하고 연구를 시작했다. 그가 11개 잎의 형태적 특성을 비교 분석한 결과, 보퀼라는 잎의 크기와 면적, 잎자루 길이, 색상, 잎맥의 두드러짐 등 11가지 특성 가운데 9가지를 숙주 식물과 유사하게 바꿀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보퀼라가 흉내 낸 것으로 확인된 식물 종은 20종이 넘는다. 하나의 덩굴이 서로 다른 두 나무를 동시에 타고 오를 경우, 각각의 나무 쪽에서 다른 모양의 잎을 낸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보퀼라 / 'Sobrevivência e Aventura' 유튜브

왜 이런 일을 하는 걸까. 현재 가장 유력한 설명은 '베이츠 의태(Batesian mimicry)'다. 포식자인 초식동물들이 특정 식물의 잎을 꺼린다면, 그 잎처럼 보이도록 변장해 피해를 줄인다는 것이다. 즉 생존 전략이다. 실제로 보퀼라의 의태는 근처에서 관찰되는 초식 동물의 종류와 연관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런데 학자들의 진짜 관심은 '왜'가 아니라 '어떻게'다. 눈과 뇌가 없는 식물이 어떻게 이웃 식물의 잎 모양을 인식하고, 자신의 잎을 그에 맞춰 바꾼단 말인가.

초기에 제시된 가설은 두 가지였다. 첫째, 숙주 식물이 공기 중으로 방출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보키야가 감지해 잎 모양을 바꾼다는 것. 둘째, 공기 중 미생물이 숙주 식물의 유전 정보를 보키야에게 전달하는 수평 유전자 이동이 일어난다는 것. 그럴듯한 가설이었다. 그런데 2021년, 이 두 가설을 한꺼번에 뒤집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제이컵 화이트와 펠리페 야마시타 연구팀이 보퀼라를 살아 있는 식물이 아닌 플라스틱 조화(造花) 옆에서 키워봤다. 플라스틱에서는 화학물질도 나오지 않고 유전자 정보도 없다. 논리적으로는 아무것도 따라 할 수 없어야 했다. 그런데 보키야는 플라스틱 잎의 형태를 따라 변형됐다. 4그루의 보키야 모두가 플라스틱 잎 쪽으로 뻗어 오르면서 잎의 면적, 둘레, 길이, 너비가 달라졌고 잎맥 패턴에서도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났다.

화학 신호도 아니고 유전자 교환도 아니라면 뭐가 남나. 연구팀이 내놓은 가설이 바로 '식물 시각'이다. 식물의 잎 표면 세포가 렌즈 같은 구조(ocelli)를 형성해 빛의 패턴을 처리하는 일종의 원시적 시각 기능을 가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식물이 빛 자체를 인지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광합성을 하려면 빛의 방향과 파장을 감지해야 하니까. 그런데 보키야의 경우 그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이웃 식물의 잎 형태 정보를 시각적으로 처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물론 아직 가설이다. 이 현상이 처음 보고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독립적인 연구팀이 야외 관찰 결과를 검증하지 못했고, 의태 메커니즘도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보퀼라 / 'Sobrevivência e Aventura' 유튜브

식물의 '인지 능력'을 둘러싼 논쟁에서 보키야와 함께 자주 등장하는 사례가 미모사다. 건드리면 잎을 오므리는 그 식물이다. 2014년 서호주대학의 진화 생태학자 모니카 갈리아노는 미모사를 이용해 충격적인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56그루의 미모사를 특수 제작한 장치에 올려놓고 약 15cm 높이에서 부드러운 쿠션 위로 반복해서 떨어뜨렸다. 처음에는 충격을 받을 때마다 잎을 오므렸다. 하지만 하루에 7회에 걸쳐 회당 60번씩 같은 낙하를 반복하자 미모사는 점차 반응을 멈췄다. 떨어지는 게 해롭지 않다는 것을 '학습'한 것처럼 보였다. 갈리아노는 이것이 단순히 에너지 고갈로 반응하지 못하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추가 실험을 했다. 추락 자극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 미모사를 가로로 흔들었더니, 이번에는 즉각 잎을 오므렸다. 에너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추락이라는 자극을 선택적으로 무시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더 놀라운 건 그다음이었다. 갈리아노가 한 달 뒤 같은 실험을 반복했을 때, 미모사는 여전히 추락에 반응하지 않았다. 뇌도 신경계도 없는 식물이 한 달 넘게 경험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 결과는 2014년 학술지 '오에콜로기아(Oecologia)'에 실렸다.

보키야의 의태와 미모사의 기억, 이 두 사례는 식물학계에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학습과 기억, 그리고 시각 정보의 처리가 반드시 뇌와 신경계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인지. 갈리아노는 "뇌와 신경계는 기억을 위한 한 가지 방식일 뿐, 유일한 방식은 아닐 수 있다"고 했다. 많은 식물학자들이 이 주장에 여전히 회의적이지만, 보키야가 플라스틱 잎을 따라 변형된다는 사실 앞에서 기존의 답은 흔들리고 있다. 눈도 뇌도 없는 식물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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