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장기화로 인해 물류비가 급등하고 공급망 병목 현상이 심화되자 정부가 총력 대응에 나섰다. 지난달 수출이 사상 처음 월간 800억 달러를 돌파하는 호조를 보였음에도, 소비심리 둔화와 하향 안정세를 보이던 물가가 다시 상방 압력을 받고 있다는 위기의식에 따른 조치다. 정부는 수입 물품 운임 상승분을 관세 과세가격에서 전격 제외하고, 국민 생활과 직결된 주요 필수 품목에 대해서는 파격적인 한시적 규제 유예를 단행한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3일 오전 8시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본부 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이 같은 내용의 공급망 병목해소 규제 개선방안과 기업현장 공공기관 숨은 규제 합리화 방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구윤철 부총리는 이날 모두발언을 통해 "거친 풍랑 속에서 키를 잡은 조타수의 심정으로 위기 극복을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고 역설하며, "전쟁 영향이 큰 공급망 품목과 물가 품목은 담당자를 지정해 매일 점검하고, 관계부처 장관들이 참여하는 핫라인을 통해 상황을 실시간 공유하며 과감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가장 시급한 과제인 물류비 부담 완화를 위해 파격적인 관세 특례를 도입한다. 지난달 기준 중동에서 중국으로 가는 유조선 운임지수(WS)가 전년 대비 608%나 폭등함에 따라, 정부는 이달 둘째 주 관세법 시행령을 개정해 호르무즈 우회항로 등 대체 운송수단을 이용하는 수입 기업의 운송비 상승분을 관세 과세가격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운임 급등이 관세 증가와 국내 물가 인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더불어 중동 지역으로 수출하려다 부득이하게 회항한 '유턴화물'에 대해서도 수입 기업의 짐을 던다. 통관유형 정정에 따른 과태료 부과를 최소화하고, 수출신고 이후 정정이나 취하가 발생해도 벌점을 한시적으로 면제해 행정적 불이익을 막는다. 수입 에너지와 주요 원료는 입항 전 통관을 완료해 즉시 반입되도록 하고, 페인트 등 화학물질은 유해성 시험자료를 '시험계획서'로 대체해 수입 소요 기간을 대폭 줄인다.
원유에서 비롯된 나프타 수급 불안이 '기초유분→화학제품→가공산업(포장재 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생산·유통 규제 특례도 즉각 가동된다. 정부는 지난달 27일부터 나프타 수출통제 등 긴급수급조정조치를 시행 중이다.
이같은 조치의 일환으로, 정부는 식품·위생용품 대체 포장재를 허용하기로 했다. 의무 표시사항을 포장재에 직접 인쇄(잉크·각인)해야 하는 까다로운 규제를 유예해, 스티커 부착만으로도 대처할 수 있도록 유권해석을 즉시 적용한다.
의료·의약품 심사에도 패스트트랙이 도입된다. 수액제, 생리대 제조사 등이 포장재 공급선 다변화를 위해 제조소를 추가할 경우, 약 1~2개월 소요되던 현장 GMP 심사를 서류 검토로 대체하고 품목허가 변경을 최우선 심사한다.
또한, 종량제 봉투 조달 절차가 간소화된다. 수요 폭증 등 수급 차질에 대비해 기초지방정부가 조달청 나라장터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는 1억원 한도를 임시 해제했다. 품질검수 기간도 기존 10일에서 1일 이내로 줄이고, 광역 내·광역 간 지방정부 협의회를 통해 재고를 유연하게 재배분하는 메커니즘도 구축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109개 공공기관이 내부 규정이나 지침으로 기업에 부담을 지워 온 이른바 '숨은 규제' 251건을 발굴해 합리화하는 방안도 큰 비중으로 다뤄졌다. 정부는 △진입규제 합리화 △기술개발 부담 경감 △조달방식 합리화 △업무처리절차 간소화 등 4대 중점 과제를 설정했다.
주요 개선 사례를 보면, 한국가스안전공사는 액화수소 방출 가스가 기체임에도 과도하게 엄격했던 충전시설 거리 기준과 방출구 위치 제한을 일반 기체수소 시설과 동일하게 완화했다. 조달 및 입찰 장벽도 낮아진다. 한국남부발전 등 6개 기관은 발전 기자재 공급자 자격 심사 시 '부도/화의' 감점 조항을 삭제해 기업의 재기 기회를 열어주었으며, 한국가스공사 등은 물품 제조·구매 하자보수보증금률을 기존 5%에서 조달청 기준과 같은 3%로 전격 인하했다.
중소기업 지원도 확대된다. 한국환경공단은 물 산업 시험·검사 수수료 감면 대상을 클러스터 입주기업에서 전체 중소·중견기업으로 넓혔고, 인천국제공항공사 등은 상생협력기금을 활용해 중소기업의 인공지능(AI) 전환 비용을 지원한다. 또한 공영홈쇼핑은 입점 기업의 대금 수취일을 정산 마감 후 10일에서 2일 이후로 대폭 앞당겨 자금 유동성을 돕고, 부산항만공사는 항만배후단지 입주기업의 출자지분 변경 사전승인 요건을 5% 이상에서 10% 이상으로 완화했다.
정부는 이러한 규제 개선을 지속하기 위해 공공기관별 소통 창구인 '기업성장응답센터'를 현행 144개에서 153개로 확대하고, 본부 중심에서 지역 단위까지 촘촘히 운영할 계획이다.
단기적 공급망 해소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인 국가 첨단전략산업 투자 촉진을 위한 제도 개선도 병행된다. 국가첨단전략산업법 개정을 통해, 지방 투자에 한해 일반 지주회사의 증손회사 의무지분율 규제를 현행 100%에서 50%로 완화(공정위 심사·승인 전제)한다. 또한, 첨단전략기술 보유 기업이 신속히 공장을 건설할 수 있도록 산업단지 내 공장 설립 전에도 토지를 제3자에게 임대하거나 처분할 수 있게 지원을 확대한다.
차량용 요소와 비료용 요소 등 주요 원자재 수급도 정부 차원에서 밀착 관리한다. 산업부와 조달청은 전체 재고는 여유가 있으나 기업 간 불균형이 있는 차량용 요소에 대해 재고 부족 기업과 여유 기업 간의 거래를 적극 중개하고 있으며, 농식품부는 예상 수요를 바탕으로 농협의 비료 공급 물량을 선제적으로 조절하고 있다. 아울러 가격이 급등한 아스팔트는 시급성이 낮은 국도 등 보수 공사 일정을 연기하도록 지도해 수요를 분산시킨다.
재경부 관계자는 "비상상황에 따른 각종 규제 유예 조치는 상황 종료 시 즉각 원상 복구하되, 규제 완화의 실효성을 평가해 향후 영구적인 규제 개혁에도 참고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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