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대첩 승리의 기억을 걷다
(고양=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칠전칠승 신호지세(七戰七勝 晨虎之勢, 굶주린 새벽 호랑이 기세로 일곱 번 싸워 일곱 번 이기다).
행주대첩 때 맹수 같았던 조선 군의 기상을 표현한 말이다.
행주산성 안팎에는 도보 여행 길이 잘 만들어져 있다. 승리의 기억을 걷는다.
◇ 도시와 자연이 어우러진 고양누리길
청계천과 중랑천이 만나 한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놓인 살곶이 돌다리는 언제 봐도 정겹다.
살곶이 다리에서 출발해 마포와 행주산성을 지나 창릉천을 따라 북한산성 입구에 이르는 길은 한강과 북한산의 아름다움을 한꺼번에 누릴 수 있는 여정이다.
걷기에는 하루 이상 걸릴지 모르지만, 자전거를 타면 4시간 정도면 지날 수 있다.
이 길을 가면 대한민국의 심장부가 산, 강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인다.
자연과 도시가 어우러지며 내는 감성은 복잡하고 거대한 수도권이 그래도 숨 쉴 만한 공간이라는 안도감을 자아낸다.
인구가 100만 명을 넘어, 자치권이 확대되는 특례시로 지정된 고양은 서울과 생활권을 같이 하지만 서울보다 훨씬 자연 친화적이다.
고양의 역사와 자연, 목가적 정취를 느끼고 싶다면 고양누리길을 걸어도 좋다.
이 길은 모두 14개 코스이다. 이중 북한산누리길(1코스)과 한북누리길(2코스)에서는 북한산 절경을 품고, 행주누리길(4코스)과 행주산성역사누리길(5코스)에서는 행주대첩 승리를 추억할 수 있다.
행주산성과 북한산성입구를 잇는 바람누리길(14코스)은 15.5㎞로, 고양누리길 중 가장 길다.
행주누리길은 원당역∼성라공원(국사봉)∼배다골테마파크∼성사천∼강매동(봉대산)∼강매석교∼행주산성을 연결한다.
중간에 성라산, 지렁산, 봉대산, 강고산 등 4개의 야트막한 산을 넘어야 하고, 거리가 12㎞로 꽤 길어 약간 힘들 수 있다.
이 코스에는 고양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강매석교가 있다.
행주산성역사누리길은 행주산성 안에 조성된 산책길이다.
산성 정문인 대첩문에서 출발해 충장사, 충의정, 대첩비, 진강정, 팔각초소전망대를 거쳐 다시 대첩문으로 돌아오는 순환 코스이다. 약 4㎞이다.
행주누리길, 행주산성역사누리길, 바람누리길은 행주산성 부근에서 만나거나 겹친다.
행주산성을 중심으로 펼쳐진 산책로들을 이 글에서는 행주산성 둘레길로 통칭하고자 한다.
행주산성 아래 있는 행주산성역사문화공원에서 출발해 행주산성수변누리길, 옛 고양행주수위관측소를 지나 강매석교까지 걸은 뒤, 행주산성 안 산책로로 올라갔다.
◇ 고양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강매석교
강매석교는 조선 시대 지어진 가장 오래된 석교인 살곶이 다리를 떠올린다.
'살곶이 축소판'이라고나 할까.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함흥에서 서울로 돌아올 때 아들인 태종 이방원을 향해 화살을 쏘았으나 맞히지 못했고, 그 화살이 땅에 떨어져 꽂힌 곳이 살곶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국가 유산 보물로 지정된 살곶이 다리는 길이 76m, 돌기둥으로 된 교각이 64개이다.
돌기둥은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마름모꼴로 제작됐다.
강매석교는 길이 14.8m, 돌기둥 18개이다. 돌기둥은 살곶이 다리와 마찬가지로 마름모꼴이다.
강매석교 중간쯤에 '강매리교 경신신조'라는 글자가 음각돼 있어 1920년대 신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1755년 영조 시대에 강매석교의 전신에 해당하는 다리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구체적이지는 않다.
강고산 아랫마을에, 창릉천 위로 걸쳐진 이 다리는 고양의 일산, 지도, 송포 등 한강 연안 서부 지역 주민들이 서울로 오갈 때 사용한 교통로였다.
이 다리를 건너 농산물과 땔감을 수색, 모래내를 거쳐 서울로 내다 팔았다.
한강 변과 창릉천 변을 잇는 자전거 도로를 북한산을 바라보며 달리는 라이더들이 강매석교에서도 보였다.
봄이 이미 왔건만 개화를 시샘하는 마지막 몸부림인 양 간밤에 춘설이 내렸다.
잔설을 곱게 이고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북한산 능선이 청신한 기분을 안겼다.
◇ 철거된 가시 철책선과 수변 길
행주산성역사공원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방화대교, 오른쪽으로 행주대교가 가깝게 다가온다.
이 공원 앞 한강은 예부터 '행호'(杏湖)라고 불렸다.
행주산성 인근으로 창릉천이 유입되면서 강폭이 넓어지고 물살이 약해져 한강이 마치 호수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은 1741년 양천 현감으로 있으면서 '행호관어도'를 그렸다.
행주나루 인근에서 작은 배를 타고 고기 잡는 풍광을 묘사한 걸작이다. 행호 맞은편에는 서울 강서구 개화산, 인천 계양산이 우람하게 버티고 있다.
한강 하구 강변에는 오래전부터 적의 침입에 대비한 가시 철책선이 설치돼 있었다.
지금 고양시 구간 한강 변에는 일부 지뢰 위험 구역을 제외하고는 철책이 모두 철거됐다.
고양시는 군 당국과 협약을 체결한 뒤 2012년 수도권에서 처음으로 한강 변 철책 철거를 시작했다.
가시철망 제거가 처음 단행된 곳이 이 공원이다. 철책 제거에는 평화통일특별시를 선언한 고양 시민들의 평화 염원이 담겼다.
역사공원에서 시작해 강매석교 방향으로 난 행주산성수변누리길은 행주대첩의 역사적인 현장을 누비면서 아름다운 한강 풍경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무장애 보행로이다.
나무 데크로 평탄하게 만들어져, 노약자와 장애인도 다닐 수 있다.
◇ 행주치마 이름이 행주산성에서 유래했나 vs 행주산성 이름이 행주치마에서 유래했나
행주대첩은 한산도 대첩, 진주 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불린다.
1593년 음력 2월12일, 남쪽에는 한강이 흐르고 동쪽으로 한양이 보이는 행주산성에는 새벽부터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권율 장군은 정예군 2천300여 명을 이끌고 이곳에 집결해 있었다.
일본 군이 점령한 한양을 탈환하기 위해서였다.
어둠 속에서 일본 군 3만여 명이 쳐들어왔고 조선의 관군, 의병, 승병, 부녀자들은 10배에 달하는 병력 차를 극복하고 일곱 번 싸워 일곱 번 이기는 대승을 거두었다.
이날 승리는 조선 군이 한양을 수복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됐다.
행주산성 안의 여성들이 앞치마로 돌을 날라 병사들에게 공급한 공로를 기려 앞치마를 행주치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반대로 행주치마의 이름을 따 이 산성 이름을 행주산성이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다. 어느 쪽이 맞을까.
현대 학설은 두 가지 설이 모두 틀렸다고 본다.
산성의 이름인 한자어 '행주'(幸州)와 앞치마를 가리키는 순우리말인 '행주치마'는 행주대첩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것이다.
사실 큰 전투의 승리 요인으로 앞치마를 꼽거나 기억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러면 행주대첩 승리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윤영주 고양시 문화관광해설사는 전투를 지휘했던 권율 장군의 리더십, 의병은 물론이고 승려와 여성까지 참여해 벌인 거국적인 항전, 우수했던 조선의 무기를 꼽았다.
행주대첩 기념관에는 변이중 화차, 비격진천뢰, 천자총통, 신기전 등 행주대첩 때 위력을 발휘했던 무기들이 전시돼 있었다.
임진왜란 때 조선 군이 순식간에 한양을 내주고 막대한 피해를 본 것은 일본 군이 가졌던 조총 때문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조선 군의 패퇴가 조총 때문이었다는 풀이는 주로 육지의 평지 싸움에 해당하며, 성을 지키는 싸움이나 해전에서는 조선의 무기도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위협적이었다는 연구 결과가 적지 않다.
해전에서 일본 배보다 훨씬 효과적인 전투력을 입증한 거북선과 판옥선이 대표 사례다.
변이중 선생이 제작한 화차는 개인 휴대 화기의 일종인 승자총통 40문을 장착해 대규모 사격이 가능했다.
이 화차는 4개 면에 방호벽을 둘러 조총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행주대첩에서 가장 큰 위력을 보여준 무기이다.
변이중 화차는 300대가 제작됐고, 이 중 40대가 행주산성 전투에 투입됐다.
비격진천뢰는 무기 제조 기술자 이장손이 발명한 한국 최초의 시한폭탄이다.
폭발되면 무쇠 탄환이 두세 조각으로 깨지며 내부에 있는 쇳조각이 사방으로 날아가 살상력을 낸다. 조선판 수류탄인 셈이다.
천자총통은 큰 화포로, 대형 무쇠 화살을 발사한다.
한자 '행주'의 '행'을 '살구나무 행(杏)' 자로 쓰기도 한다.
산성이 자리 잡은 덕양산(해발 124.9m)에 오래전부터 살구나무가 많이 자랐기 때문이다.
3월 중순에서 4월 초면 예쁜 살구꽃을 행주산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행주대첩비 옆에는 지금도 살구나무 고목이 한강을 굽어보고 있다.
적이 침입하지나 않는지 감시하려는 듯 말이다.
덕양산은 북한산, 관악산, 아차산과 함께 서울을 외곽에서 감싸는 4개의 산, 즉 외사산 중 하나다.
정상에서는 서울 남산, 안산, 인왕산, 관악산, 한강을 조망할 수 있고, 남쪽과 서쪽으로 김포, 파주가 조망권에 들어온다.
행주산성은 산 능선을 따라 흙으로 쌓은 토성이다.
전체 둘레는 약 1㎞로, 지금은 토성 벽의 400m가량이 복원돼 있다.
삼국 시대와 남북국(통일신라) 시대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석성이 발굴돼 성의 연원은 고대까지 올라간다.
산성을 내려오면 자전거 라이더들이 즐겨 찾는 국수 거리 등 행주산성 먹거리촌이 길손의 허기를 달래준다.
이곳 국수는 푸짐하기로 유명하다. 행주산성을 둘러싼 풍경은 옛 격전을 잊은 듯 평화롭다.
질주하는 라이더, 수변을 말없이 걷는 뚜벅이들, 맛집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
수백 년 전 이곳을 지켜낸 용기와 희생이 이 평화의 수호자일 테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4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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