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 오른쪽 앞주머니 안쪽을 보면 동전도 겨우 들어갈 만한 작은 주머니가 하나 더 붙어 있다. 뭘 넣어도 불편하고 꺼내기도 애매한 이 공간, 도대체 왜 만들어진 걸까. 청바지를 평생 입으면서도 이 주머니의 정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오늘은 청바지에 달린 이 작은 주머니의 정체에 대해 알아본다.
워치 포켓, 말 그대로 시계 주머니였다
이 주머니 이름은 워치 포켓(Watch Pocket)이다. 19세기 미국에서 광부, 철도 노동자, 목수들이 회중시계를 안전하게 넣고 다니려고 만든 공간이다.
당시 회중시계는 지금의 스마트폰처럼 없으면 안 되는 물건이었다. 기차 시각을 맞추고 작업 시간을 확인하는 데 꼭 필요했는데, 하루 종일 몸을 쓰는 작업 환경에서 시계가 너무 쉽게 망가진다는 게 문제였다. 일반 주머니에 넣으면 흔들리다 떨어지고, 충격에 유리가 깨지는 일이 반복됐다. 워치 포켓은 그 해결책으로 나왔다. 주머니 깊숙이 파묻힌 구조라 시계가 쉽게 튀어나오지 않았고, 크기도 회중시계 하나가 딱 들어가도록 맞춰졌다. 너비 약 5cm, 깊이 5~7cm. 리바이스가 보유한 1879년산 청바지에도 이미 이 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당시엔 청바지라는 이름 대신 웨이스트 오버롤즈(waist overalls)라고 불렀는데, 그때부터 워치 포켓은 이미 기본 구성이었다. 1890년대부터 대량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청바지의 표준 구성 요소로 자리를 잡았다.
주머니 옆에 박힌 쇠징의 정체는 리벳
워치 포켓 주변을 보면 둥근 금속 징이 박혀 있다. 리벳(rivet)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원래 금속판을 이어 붙이는 산업용 부품이다.
1872년 재단사 제이콥 데이비스는 노동자들의 주머니 솔기가 자꾸 터지는 문제를 보고 금속 리벳으로 주머니 모서리를 고정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당시 청바지 제조업체를 운영하던 리바이 스트라우스, 지금의 리바이스(Levi's) 창업자와 함께 이 기술로 특허를 냈고, 이듬해 리벳을 박은 청바지 특허가 정식 출원됐다. 우리가 매일 입는 청바지에 리벳이 박혀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서 시작됐다. 가장 미국적인 옷의 상징을 만든 두 사람이 독일계 유대인 이민자와 러시아계 귀화 미국인이었다는 점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1차 세계대전이 회중시계를 사라지게 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손목시계가 빠르게 보급되면서 회중시계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참호 속에서 싸우던 병사들에게 주머니에서 꺼내야 하는 회중시계는 불편했고, 충격에 유리가 깨지기도 쉬웠다. 손목에 직접 차는 시계가 군인들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했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 습관은 이어졌다. 1920년대 이후 회중시계는 급격히 줄었고, 워치 포켓도 본래 기능을 잃었다. 그런데도 이 주머니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청바지의 일부로 자리 잡아온 디자인이라 기능이 사라진 뒤에도 그대로 남았다.
2005년 스티브 잡스가 아이팟 나노를 처음 공개하던 자리에서 청바지 워치 포켓에서 기기를 꺼내 보이며 "전 이 주머니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항상 궁금했습니다. 자, 이제 알게 됐군요"라고 말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얇은 MP3 플레이어가 이 주머니에 딱 맞아 들어갔고, 그 장면을 본 뒤로 워치 포켓을 MP3 보관함으로 쓰는 사람들이 생겨났을 정도다. 해외 커뮤니티에서도 이 주머니를 두고 "행운의 동전을 넣는 곳이다", "라이터 보관용이다" 등 저마다 다른 활용법을 공유하며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청바지 워치 포켓, 요즘은 이런 용도로 쓰인다
스마트폰은 당연히 안 들어가고 카드를 넣으면 꺼내기 불편하다. 그래도 줄이어폰을 돌돌 말아 넣으면 걸을 때 흘러내리지 않고 고정된다. 등산이나 가벼운 트레킹을 할 때 밴드나 소형 상처 치료제를 접어 넣어두기도 좋다. 카드 한 장만 따로 보관할 때는 세로로 접지 않고 눕혀서 넣으면 꺼낼 때 수월하다.
혈당을 관리하는 사람이라면 포도당 사탕 한두 알을 넣어두기 좋다. 저혈당이 갑자기 올 때 손이 바로 닿는 자리라 큰 주머니에 다른 물건과 섞일 걱정 없이 바로 꺼낼 수 있다. 심장 질환이나 고혈압으로 응급 약을 항상 지니고 다녀야 하는 사람들도 워치 포켓에 따로 보관하는 방식을 쓰기도 한다. 소형 만보계를 넣어두는 사람도 있는데, 딱 맞는 크기라 걸을 때 흔들리지 않는다. 손목에 장치를 착용하기 어려운 작업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특히 이 방법을 선호한다.
지금도 대부분의 청바지에 워치 포켓이 달려 있다. 회중시계를 쓰는 사람은 없지만 주머니는 그대로다. 처음 만들어진 이유는 오래전에 사라졌고, 쓸모도 사람마다 달라졌다. 쓸모가 달라져도 살아남는 것들이 있다. 청바지 오른쪽 앞주머니 안쪽, 그 작은 공간이 딱 그렇다. 그렇게 150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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