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실크로드, 지구 반바퀴] 타슈켄트의 ‘고려인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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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실크로드, 지구 반바퀴] 타슈켄트의 ‘고려인 마을’

경기일보 2026-04-02 19:11:5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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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선 심산기념사업회장·前 관세청장

우즈베키스탄 국경에서 타슈켄트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빡빡하다. 수도 타슈켄트까지 420㎞를 서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우즈베키스탄 국경에서 타슈켄트로 가는 곳은 유명한 중앙아시아 곡창지대다. 이 일대는 고대 유럽인들이 ‘황금의 땅’ 또는 ‘중앙아시아의 보석’이라고 불렀던 트랜스옥시아나 지방이다.

 

건조한 스텝 지대인 우즈베키스탄은 두 개의 큰 강이 흐른다. 톈산산맥에서서 발원하는 시르다리야강과 파미르고원에서 발원하는 아무다리야강이다. 두 강 사이가 풍요로운 곡창지대로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침략 당시부터 유명한 지역이다. 시르다리야강 상류인 페르가나 계곡은 한나라 시대부터 ‘한혈마(汗血馬)’ 생산지로 유명했다. 2천200년 전 한나라 사마천은 그의 저서 사기(史記)에서 “대원국은 흉노의 서남쪽 방향에 있다. 좋은 말이 많은데 말은 피와 같은 땀을 흘리고 그 말의 조상은 천마(天馬)의 새끼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인구는 3천500만명으로 중앙아시아에서 카자흐스탄과 함께 지역 패권을 다투는 국가다. 타슈켄트로 가는 중간에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 안디잔이 있다. 안디잔 지역을 통과하는 도로에서 안디잔 TV 방송국 차량이 뒤따라오며 우리 차를 세운다. 차량 옆에 부착된 여행지도를 반대편 차선에서 보고 유턴해 뒤따라온 것이다. 도로 옆에 잠시 차를 세우고 유라시아 횡단 여행에 대해 즉석 인터뷰를 했다. 안디잔 TV 방송국 PD가 인터뷰 끝에 우즈베키스탄어로 시청자를 위해 “안디잔 안녕, 우즈베키스탄 안녕”이라고 인사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차량 옆의 지도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여러 경험을 한다.

 

안디잔 지역의 도로 휴게실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 우즈베키스탄 남성 한 명이 한국어로 “한국에서 오셨어요”라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30대 중반의 그는 진주에서 5년간 일했다며 자녀가 세 명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기회가 되면 한국에 일하러 가고 싶은데 비자가 안 나온다고 한다. 중앙아시아 시골에서도 선진국 한국의 위상을 피부로 느낀다.

 

키르기스스탄부터 히잡을 착용한 여성들 복장에서 이곳이 이슬람교 지역임을 알 수 있다. 머리만 살짝 가리는 히잡을 쓴 여성이 많다. 과거 소련에서 수십년간 여성 평등을 위해 할례 폐지, 히잡 착용 금지, 남녀 평등 등 추진해 왔는데 종교로 인해 보수적 이슬람문화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

 

페르가나 지역의 도로 양옆은 목화밭이 매우 많다.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목화가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1865년 미국의 남북전쟁 때문이다. 유럽 면직 산업의 원료인 목화는 당시 미국 남부지방에서 수입했다. 미국 북군이 남부군의 자금줄을 끊기 위해 남부지방 항구를 봉쇄하자 목화의 유럽 수출이 어려워졌다. 공급이 줄자 러시아는 중앙아시아 곡창지대인 페르가나 지역에 목화를 심었다. 당시 목화를 ‘하얀 황금’이라 불렀다. 현재 석유를 ‘검은 황금’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당시 목화는 돈이 되는 작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화 재배로 인한 부작용이 20세기 후반 들어 나타나고 있다. 목화는 성장기에 물을 많이 흡수하는 작물이다. 햇볕이 뜨겁고 건조하기 때문에 물을 흠뻑 줘야 한다.

 

강 상류에 댐과 운하를 만들어 상류의 강물을 목화 재배에 전부 사용함에 따라 하류에 있는 아랄해로 강물이 흘러가지 못한다. 현재 아랄해 해수면 면적은 1960년 대비 5%만 남았다. 환경 파괴의 대표적 사례다. 현재 환경단체, 국제기구들이 아랄해 살리기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가끔 TV 뉴스에서 방치된 어선들이 사막화된 바다 바닥에 휑하니 남아 있는 영상을 보여준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국제적인 ‘아랄해 살리기’를 위해 목화 재배 농가에 재배면적을 2분의 1로 줄이고 그 대신 다른 작물을 재배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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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띠딸리 지방의 고려인 마을. 작가 제공
 

 

다음 날 오전 고려인 집단농장이 있던 고려인 마을을 방문하러 갔다. 중앙아시아 고려인은 약 50만명이다. 1937년 17만명이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한 후손 들이다. 우즈베키스탄 인구의 약 2%가 고려인이라고 한다.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은 아이가 태어나면 호적에 출신 종족을 표기하도록 하고 있어 고려인 숫자를 알 수 있다. 타슈켄트에서 한 시간 거리인 ‘뿌띠딸리’ 지역에 고려인 집단농장이 있다.

 

현재 고려인은 카자흐스탄,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순으로 많이 산다. 우즈베키스탄의 경제가 안 좋아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의 상당수가 일자리를 찾아 카자흐스탄, 러시아로 이주했다고 한다. 오전 10시경 고려인 마을에 도착하니 거리에 사람이 거의 없다. 고려인 기념관 정문은 열쇠로 잠겨 있어 들어갈 수 없다. 동네 주민이 기념관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줬다. 10여분 후 도착한 기념관 직원은 평소 방문하는 사람이 없어 문을 잠가 놓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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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금 선생 기념관에서 직원과 함께. 작가 제공

 

옛소련 시절 집단농장 영웅으로 뽑힌 ‘황만금’씨 기념관이다. 방명록에 “한국에서 온 윤영선, 송익순 부부 다녀갑니다. 고려인 여러분 고생했습니다”라고 기록했다. 황만금씨는 1950년대 이곳 집단농장으로 와 옥수수 품종 개량, 비닐하우스 도입 등으로 1950, 60년대 집단농장의 ‘인민 영웅’ 칭호를 받은 사람이라고 한다. 황만금씨 덕분에 소련 정부에서 특별보조금을 줘 주민들 주택을 개량하고 도로 개설 등 복지가 좋아졌다고 한다. 마을의 단층짜리 규격화된 주택은 정부 보조금으로 지은 것 같다.

 

‘고려’ 칭호를 사용한 연유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이다. 올림픽 중계방송을 보고 이 지역 사람들이 남한의 발전상을 처음 알았다고 한다. 이곳 고려인의 조상은 대체로 두만강 인근 함경도 사람들이라 북한 정부에 가까웠다. 과거는 ‘조선’이라는 칭호를 썼다. 88올림픽 이후 고려극장, 고려신문, 고려인학교 등 조선을 떼어내고 중립적인 ‘고려’ 단어로 명칭을 바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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