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이 감당 못할 상속세 부담에 치여 위험한 선택지로 내몰리고 있다. 적게는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에 달하는 세금을 감당하기 위해 정부나 해외 자본을 대주주로 받아들이지만 되레 경영 악화에 빠지거나 끝내 법인 청산을 하는 사례가 반복되는 모습이다.
2일 정부와 재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재정경제부가 상속세를 현금 대신 기업 지분으로 받아 보유 중인 국유증권 총 누적 건수는 313건이다. 상속세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 상속인이 피상속인에게 물려받은 지분 일부를 물납 형태로 정부에 건네는 것이다.
2007년 안마의자 사업을 시작한 휴테크산업의 경우 재경부가 지분 30.34%를 가진 2대 주주다. 창업주 유익수 전 대표가 2016년 갑작스럽게 별세하자 배우자인 주성진 대표가 주식으로 상속세를 물납하며 만들어진 구조다. 상속 한 번에 기업이 국유화됐다.
국내 교과서·참고서 대명사로 통했던 교학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국세청이 2012년 지분 11.74%(16만4235주)를 물납으로 받으면서 10년 넘게 2대 주주 지위를 유지 중이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최소 200억원에 이른다.
문제는 정부가 현금화를 위해 해당 지분 매각을 지속적으로 시도한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해외 경쟁 기업 등이 입찰에 뛰어들며 국내 시장을 위협한다. 2023년 중국 게임 기업 텐센트의 넥슨 인수설이 대표적이다. 재경부가 고(故) 김정주 넥슨 창업주 유족이 상속세로 물납한 NXC 주식 85만1968주 매각을 추진할 당시 텐센트는 유력 후보군 중 한 곳이었다. 실제 텐센트는 크래프톤(13.71%), 넷마블(17.52%), 시프트업(34.76%), 카카오게임즈(3.89%)의 주요 주주이기도 하다.
끝내 매각은 불발됐다. 정부가 세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시장 가격에 프리미엄까지 더해 지분 거래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고려해운, 지산리조트 등 역시 수년째 원매자를 찾지 못하면서 경영 불확실성도 덩달아 장기화하고 있다.
경영권 불안정은 멀쩡한 기업을 폐업으로 내몰기도 한다. 지난해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 재경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에 상속세 주식을 물납한 기업 중 103곳은 청산됐다. 휴업·폐업한 기업도 29곳이나 됐다. 대부분 상속세를 낸 후 수년 안에 문을 닫았고 심지어 세 달 만에 파산한 사례도 있다.
또 다른 선택지는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외국계 사모펀드(PEF) 등에 경영권을 넘기는 것이다. 가구 기업 한샘은 지난 2021년 상속세 부담과 승계 문제 등 이중고를 해결하기 위해 가업 승계를 포기했다. 창업주 조창걸 명예회장이 사후 상속 부담을 덜기 위해 자신과 특수관계인 지분 전량을 사모펀드 IMM프라이빗에쿼티(IMM PE)에 약 1조4500억원을 받고 매도하면서다. 하지만 이후 실적 악화가 맞물리며 기업 가치는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유가족 간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경영 분쟁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다. 한미약품은 창업주 임성기 회장의 타계로 발생한 약 5400억원 상속세를 해결하기 위해 외부 자본과의 결합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유가족인 임 회장 부인과 딸, 임 회장 형제 간에 입장 차가 심화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가족 싸움으로 치달았다.
지인엽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에 지분 희석이나 경영권 포기까지 종용하면서 받아낸 엄청난 규모의 상속세가 국가 경제에 선순환을 일으키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며 "상속세가 본연의 타당성을 가지려면 기업의 경제활동으로 창출된 소득을 징수하는 수준에서 운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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