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서 인공지능(AI) 시대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기업의 인재상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디지털 기기 활용에 익숙해 업무처리 속도 측면에서 효율성을 발휘했던 기존 20·30세대 대신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 자발적인 판단 능력을 갖춘 50·60세대를 선호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전자의 경우 충분히 AI로 대체 가능한 반면 후자는 오로지 사람만의 영역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20·30세대가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사고력과 판단력, 그리고 책임정신 함양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입을 모았다.
청년 고용률은 하락, 실업률 상승…채용문 좁아진 기업의 공통점은 "AI 대체 가능"
청년세대의 경제 활동 문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6년 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 고용률은 전년 동기 대비 1.0%p 하락한 43.3%을 기록했다. 코로나19 펜데믹 시절인 2021년 2월 이후 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같은 달 고용률과 반비례 관계인 청년 실업률은 0.7%p 상승한 7.7%를 나타냈다. 마찬가지로 2021년 2월 이후 최고치다. 청년 실업자 중에는 비자발적 퇴직자도 상당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기준 1년 이내에 실직한 20·30세대 실직자 중 비자발적 실직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38.2%에 달했다. 10년 전인 2015년 26.9%에 비해 11.3%p 상승한 수치다.
청년세대의 경제 활동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결정적 이유로는 AI 기술 발달로 인한 기업의 인재상 변화가 꼽히고 있다.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단순·반복 작업이나 일정한 패턴을 지닌 연산 작업 등이 전부 AI로 대체 가능해지면서 이들 업무에 인력을 투입하는 게 불필요한 일이 됐기 때문이다. AI 플랫폼 '클로드'를 개발한 앤트로픽이 800개 직종 업무에 AI가 얼마나 사용되고 있는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해당 일자리를 AI가 대체할 위험도가 어느 정도인지 나타내는 '관측 노출도' 순위는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74.5%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고객서비스(CS) 담당자 ▲데이터 입력자 ▲의료기록 전문가 ▲시장 조사 분석가·마케팅 전문가 ▲기술 과학 제품을 제외한 도매·제조·영업 부문 ▲재무 및 투자 분석가 ▲소프트웨어 품질 담당자 ▲정보 보안 분석가 ▲컴퓨터 사용자 지원 전문가 등의 순이었다. 반면 ▲요리사와 오토바이 정비사 ▲안전요원 ▲바텐더 ▲설거지 담당자 ▲탈의실 안내원 등 현장·육체노동 직종의 관측 노출도는 0%에 불과했다. AI 대체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는 의미다.
이러한 분석 결과는 실제 통계 결과와도 상당히 부합하는 모습이다. 지난 2월 기준 모든 연령대에서 전문직·IT 분야 취업자는 전년 동기 대비 15만명 가까이 감소했는데 그 중 20·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90%에 육박했다. 20·30세대 취업자가 감소했다는 의미는 그만큼 신규 채용이 둔화됐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또 과학·기술 서비스업, 정보통신업 등의 업종에 취업한 20·30세대 규모는 1년 전 대비 무려 13만명 넘게 줄었다. 전부 AI가 대체할 위험도 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직군들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IT기업 인사담당자는 "사실 조직 규모가 클수록 주니어 연차에선 반복·단순 작업을 최대한 빨리 많이 쳐내는 게 중요하고 시니어 연차가 될수록 굵직한 결정을 내리는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생성형 AI가 나오면서 반복·단순 업무를 할 사람이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지다 보니 신규 채용은커녕 기존에 인력마저 재배치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이어 "아마 재배치가 끝나고 나면 저연차 직원까지 포함해서 희망퇴직을 실시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AI시대가 낳은 기업 인재상의 변화 "손 빠른 주니어 보단 경험 많은 시니어 우대"
반면 풍부한 노하우와 경험을 토대로 굵직한 판단이나 결정 능력을 지닌 50·60세대 선호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디지털 기기 활용에 능숙하고 단순·반복 작업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데 탁월한 20·30세대를 선호했던 과거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결국 나이에 관계없이 AI로 대체 가능한 업무 역량을 가진 이들은 소외되고 AI로 대체 불가능한 역량을 가진 이들은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년제도를 운영하는 사업장 38만9349곳 가운데 재채용 제도를 도입한 곳은 2024년 말 기준 14만7402곳(37.9%)에 달했다. 4년 대비 13.8%p 증가한 수준이다. 재채용 된 이들은 고도의 판단력과 경험이 필요한 곳에 주로 배치된다. 은행이 대표적이다. 지난 2021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시중은행에 재취업 한 퇴직 직원은 5000명을 넘어섰다. 특히 AI 활용이 본격화 된 지난해의 경우 10월까지 재채용 된 인원이 946명에 달했다. 직전해 수준(876명)을 훌쩍 뛰어넘은 수준이다. 시중은행에 재취업 한 이들은 주로 준법감시, 자금세탁방지, 집단대출지원, 금융사기 피해구제, 비대면 대출심사 등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업무에 투입되고 있다.
50·60세대의 고용 지표 역시 20·30세대와는 전혀 딴판이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50대와 60대 이상 고용률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0.6%p, 0.5%p 상승한 77.5%, 44.8% 등을 기록했다. 50대 이상 고용률은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감소세를 보였지만 2분기를 기점으로 상승세로 전환했다. 특히 정년 퇴직자들이 몰려 있는 60대 이상의 고용률이 크게 개선됐다. 퇴직 후 재취업 사례가 늘어난 결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세대 간에 고용률 지표가 뚜렷한 대비를 보이는 현 상황에 대해 기업들이 요구하는 인재상의 변화에 기인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경험이나 노하우, 커뮤니케이션 능력, 판단력 등 AI로 대체하기 힘든 인간 본연의 능력이 더욱 높게 평가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달 13일 열린 '에이전틱 인공지능 시대 소프트웨어 산업 및 인재양성 대응방안 간담회'에 참석한 김정아 이파피루스 부사장은 "개발자 채용에서 국어와 영어능력 중요하게 생각하고 특히 다른 스펙이 아무리 좋아도 국어시험에서 떨어지면 채용하지 않는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디지털 전환기가 기술 숙련도를 가진 젊은 층에 유리했다면 생성형 AI가 보편화된 현재는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한 판단력과 책임성을 갖춘 인재들이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며 "단순 업무의 속도보다는 수많은 변수 속에서 최선의 답을 찾을 수 있는 시니어 세대가 가진 경험의 자산이 AI 시대의 불확실성을 보완하는 요소로 재평가받는 모습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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